인터뷰 내용

황영조 마라토너 / 감독 만난 사월에

권남희 후정 2007. 4. 20. 15:14
 

 

권남희수필가 

황영조 마라토너를 만난 사월 !

                     2007년 4월 25일 오후 1시 방이동 일식집


1년만이다. 

2006년 ‘발’ 특집 주제를 정했을 때 가장 먼저 황영조 선수가 떠올랐다.

김진돈 한의사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흔쾌히 만난 황영조 선수는 그 때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많이 표현했다.  고생과 희생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위해 달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시 만났다.

권 :  1년 만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 아이구, 그렇게 되었나요 .   그동안 바빴어요. 도하 아시안 게임 다녀 온 뒤로 케냐, 평양은 두 번 갔다 왔습니다

마라톤 대회에 어느 나라들이 참석했나요 ? 

케냐, 에디오피아. 중국 , 러시아  등등 인데 초청 선수들이라 Top선수들은 아니구요 .

케냐는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유치 홍보를 위해 다녀온 것입니다 .

신동파 농구선수.감독은 반지를 목숨처럼 아끼면서 꼭 끼고 다니던데,  수호신같은 장신구가 뭐 있나요

특별한 것은 없지만 목걸이 정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가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 것입니다. 가운데 표시는 십자가인가요

아니 , 방향키입니다

운동 하는 분들은 특별히 보양식이 있나요  - 개고기 빼고는 다 잘 먹습니다. 생식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사시미, 생고기. 옛날에는 사슴 생고기를 먹었고, 요즘은 과일도 잘 먹지요 .

도하 갔다오자 마자 전주에 갔고 제주도를 갔습니다 . 제주도는 어머니 고향이기도 하여 좋습니다 .

 낚시도 하시지요.

그럼요, 낚시해서 바로 회를 떠 먹고 그러지요. 마라톤 연습도 해안도로에서 합니다.

-국내에는 마라톤 대회가 5개 있어요 -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북한 만경대상 마라톤대회는 우리가 신청을 해서 4.15 축전의 일환으로 참가를 햇는데 일본에서 활동하는 김연자 가수가 다녀간 후 우리가 두 번째 인데다가 북한 최초로 우리선수단을 초청했기에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체육인 교류도 통일 사업에 일조를 하는 것이지요 . -그런 일에 우리 작가들도 같이 동참하도록 추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홈페이지 들어오시면 묘향산, 보현사. 그리고 주몽 -동명왕릉 / 단군릉 등 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역마살이 있어서 전 세계를 다닌 것이지요? ( 이 질문에서 무엇이든 긍정적이고 의미부여가 생산적이던 황영조 선수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

-역마살이라... 역마살이라면 갑자기... 훈련 도중  적응을 못하고 튀쳐나갔다 돌아왔던 김완기선수거 떠오르지요?  그 때 김완기가 돌아오니까 감독님이 ‘역마살이 끼었다’며 야단을 쳤거든요 .  그 이후로ㅡ ‘역마살’ 단어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않은 쪽으로 굳어졌습니다 - 아 그렇다면 언어사용에 대해 죄송하다고 해야겠네요. 작가들은 보통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팔자라는 의미로 서로에게 부담없이 역마살 도졌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 아, 그런가요 ?

*신동파 농구선수를  만나보니까 선수시절 거의 사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더라구요, 결혼 식 직후에도 태릉 선수촌에 입소하고 담배도 못피우는 등 ....

그렇지요. 지금은 조금 자유로웠졌지만 그래도  사생활을 포기해야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 특히 마라톤은 먼 길을 달려야하는 자기와의 싸움인데  , 뛰기 위해 그만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몇 년 전부터 마라톤이 우리사회에 붐이 일어난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회적 현상인데 대한민국이 그만큼 경제성장을 했다는  뜻이지요 . 국가의 어떤 경제좌표로  달리기 인구가 얼마냐를 이야기 할 정도이니까요.  우리 어렸을 때는 온 동네가 다 하루 밥 세끼를 다 먹고 살기가 어려운  , 그런 사회였고 생활 자체가 운동이지 않았습니까, 보통 한시간씩 걸어서 학교가고 시장가고 노동하고 ...내 몸을 움직여야 했지만 지금은 바로 앞에 갈 때도 차를 끌고 나가니 돈을 들이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요 . 살기위해 뛰고 주깆않으려 뛰어야 하는 사회 ... 달리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갑자기  인터뷰 목적을 잊지 않으려는 듯 ‘자살시도’ 행적에 대해  물어본다

자살?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아! 있다. 유명한 일화  있잖아요 -들어보면 알것 같아요 (푼수처럼 신나게 거든다)

선수시절 올림픽 준비하면서 기록은 안 나오고  훈련의 극심한 고통을 벗어나고싶은 마음에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죽으려했던 일... 자살하는 사람들의 어느 순간을 이해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해야 영광을 얻을 수 있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죽는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도 없지요.   생과 사는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준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과정을 무시하고 영광을 평가하는 게 싫기도 하지요 .


          술에 대한 자유 토크 

* 술을 낮에는 못 드신다고 했지만 작년에 만났을 때도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고 들었거든요. 오늘도 뵈니 전날 양주를 많이 마신 것 같아요

그랬나요? 어제 저녁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하고 마셨지요 . 소주는 못마시고 양주를 보통 마시는데 개인에 따라 술마시는 일도 스타일이 있다고 봅니다. 

나름대로 ‘얼마냐 ’ 이게 아니고 다른 남자들에 비해 주량은 적지만 맥주 두잔만 마셔도 취하고 얼굴이 빨개질 때도 있고 몸의 컨디션에 따라 ,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느끼거든요. 싫은 사람과는 마시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는 편입니다. 대화도 나누어야 하니까. 이번에 평양가서도 매일 마셨는데 산송이술 . 들죽술. 이런 술이었어요. 북한 분들하고 술 한 잔 먹는게 인간 대 인간으로 가까워 질 수 있고 또 강한 사람도 없는 게 술 마시다보면 나사가 반쯤 풀려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잖아요. 맨 정신으로 못하는 것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요.

술 마시고 실수 한 적은 없으세요?

 실수라기 보다 술먹고 취하면 잠을 자요. 필름이 끊어진다는 경험을 두 번 정도 했는데, 분명히 집에 들어왔는데 아침에 깨보니까 옷을 입은 그대로 침대에 있는 그런 일...

모든 일이 힘들고 지치면  절에 가서 스님하고 곡차를 마시지요 . 곡차는 취하면 술이지만 분명 음식이니까, 스님이 알아서 곡차를 꺼내 오면 , 앉아서 인생이야기를 나누어요. 그분들도 인연을 끊고 들어갔지만 , 분야가 다양한 사람들이다보니 생각들이 평범하지는 않다는 인식이 들고, 그들 생각에 귀기울이면서 정화를 시키고는 하지요 .

왜 ‘정상은 정상끼리 통한다’ 그런 말있지 않습니까 . 각 분야의 다른 사람들은 만나서 배우고 듣고 경험하는데서 도움을 얻어요. 자기 나름대로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다 보니까  만남 자체가 의미있고 보람된 것이지요.


죽음에 대한 슬쩍 토크 (한국수필 7월호에 정리예정 )

자신의  죽음을 미리 계획해 본 적은 없으세요?

죽음에 대한 계획보다 돌아가신 분 장례식장을 가보면 ‘아 어떻게 살았구나 . 나도 어떻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요.

사람은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요. 자기의 삶 속에서 자기의 죽음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친지들 속에서 ...

다 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평생 기회는 있고  개인의 역사로 만들지만 다산처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책을 남기고 죽는 게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 한이 맺혀서 가는 것보다 무언가 어떤 세상에 나와서 누군가를 위하든지, 의미있는  삶, 돌아보았을 때 의미가 있었다.. .  이런 삶이 중요하지요.

손기정 선수의 죽음에서 저는 그분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구나.. 그런 해답을 얻었습니다. 대전 국립묘지에 묻혔는데 아 멋있다 ! 나도 이렇게 영원히 살아야겠구나 . 스스로 교훈을 찾았습니다. 죽어서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  죽음은 비록 그 분의 실체는 볼 수 없지만 영원히 살고싶으면 평소에 노력해서 열심히 살다간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 나쁜 목표를 가지고 가면 나쁘지만 자신을 위하고 무언가 생각을 크게 가지면 좋은 것이지요. 평양에 간 것도 그런 쪽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 우리 쪽에서 3월에 초청해달라 했던 것도 스포츠 교류를 떠나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 시도를 해서 물꼬를  트는 일이 보람이고 기쁨이  된다고 봅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강하세요

런 셈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교됴소에 간다 해도 화를 안내고 죽을 것을 이렇게 모면해서 살게 되었구나 . 이게 긍정의 힘이지요.


어머님이야기 

* 어머님 잘 계시지요?  어버이날에 찾아가 돈을 드렸다던 황영조 선수의 2006년도 6월 초 말이 기억나 그의 어머님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검진 결과 나오는 날입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받았습니다 . 자식으로서 최대한 마음 써주고 작더라도 성의를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 에 한 번 종합검진을 받도록 해드리는데 동생에게 부탁해서 예약하도록 하고 보통 120만원에서 250만원 정도의 검진 코스가 있어요. 암은 초기에 잡아야 하니까  1년  한 번 꼭 해드립니다.그러면서 보살핌이 이제는 거꾸로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주기가  내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희생하고 고생하고 그 결과 내가 금메달도  따고 했는데 ,

이제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드시니까 이제는 뭐랄까,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을 하십니다. 삐지기도 하시고 엄마로서가 아니고 여자로서  개인의 삶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제는 분위기를 보고 어머니를 헤아려주는 아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났으니까, 일찍 떠났고 어머니랑 산 것은 얼마 안되지만  어쨌든 어머니를 먼저 보내야 하잖아요.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한다...주변에서 부모를 잃고 후회를 하면서 못해드린 것만 걸려서 괴로워하는 선배들을 보면 자식으로서  잘해드리는데 시골분이라 소박해서 씀씀이도 없고 용돈을 드리면 모았다가 손자나 동생에게 주는 게 고작입니다.

서울에 오셔도 갑갑하다고 집으로 가지요. 서울에 계실 때는 동생과 누나들 모두 가까이 살아서 가끔 모여서 술자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재미를 만들어드리지요.

그 때 내가 어머니를 도와서 밭일을 같이하고 어머니가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해도    남아서 같이 집으로 돌아간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다 잊었다고 하면서 놀라워합니다. 동생은 어리고 누나들은 숙제있다, 공부해야 한다 하면서 어머니를 안따라갔지만 저는 어머니를 따라가 밭일하고 나무 베고 일을 많이 했지요.

형제들마다 그 때 상황을 받아들이는 점이 모두 다른 것도 재미있어요. 똑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음식식을 먹고 자랐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어머니하고 그 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자식에게 어머니가 고생을 뿌렸으니까 보답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노력도 안하고 어떻게 자식한테 받습니까.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자식에게 노력해야 갈등이 없지 ‘ 부모가 못하면 애틋하고 그런 것도 없지요.

황영조 선수의 이야기는 과장됨이 없고 자연스럽고 나름대로  삶을 관통하는 자기 철학을 세우고 있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에게서 오늘도 한 수 배운다.

삶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