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오리엔탈리즘 -Edward W.Said 지음 /교보문고

권남희 후정 2007. 6. 29. 13:58

 

 

 

권남희수필가 정리 ( 유럽지성인을 지배했던 동양인에대한 편견을 파헤친 좋은 책 ) 누구보다 우월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월하고싶을 할 뿐이다. -권남희 어록  


     오리엔탈리즘 - Edward W.said 지음

              교보문고 (박홍규 옮김 )


에드워드 사이드 ( 1935년 영국이 위임통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출생. 당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입국한 유태인들로 혼란이 일어 1948년 이집트로 이주, 카이로 빅토리아 대학에서 수학, 1950년 대 말 미국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  현재 칼럽지아 대학에서 비교문학 ,영문학 교수.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 평론가로 활동, 대표저작으로 ‘오리엔탈리즘’ ‘ 지식인의 표창’ ‘ 문화와 제국주의’  1999년 자서전 ‘ out of place'


차례 

제 1부 오리엔탈리즘의 범위

제 1장 동양인에 대한 인식   / 제 2장 상상의 지리와 그 표상  - 동양의 동양화

제 3장 사업 제 4장 위기 

제 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1장 재설정된 겅계선, 재정의 된 문제, 세속화 된 종교

제 2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  / 합리주위적 인류학과 문헌학의 실험실

제 3장 동양 체류와 동양에 관한  학문  - 어휘서술과 상상력이 필요로 하는 것

제 4장 순례자와 순례, 영국인과 프랑스인

제 3부 오늘의 오리엔탈리즘

제 1장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과 명백한 오리엔탈리즘

제 2장 양식, 전문지식, 비전  - 오리엔탈리즘의 세속성

제 3장 현대 영국-프랑스의 그 극성기

제 4장 최근의 전개

 * 1995년 판 후기  / 옮기면서  / 원주 / 찾아보기


옮기면서 -610쪽 부터 676쪽 (옥스포드에서 박홍규)

123생략 

4. 원서의 이름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나 적절한 번역어가 없어서 외국어임에도 구대로 역서명으로 삼았다. 굳이 번역하자면 ’동양주의‘라든가 ’동양학‘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사이드가 그러한 용어를 쓴 것은 그러한 번역어와는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컨데, 최근에 유행하는 동양학이란 말을 검토해보자. 학문을 동.서양의 것으로 나누어 서양학, 동양학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역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과거에 일본(제국주의시대)에서 그것이 애용된 적이 있었으나 1945년 이후 그들은 그것이 동양 침략의 음모였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중국학이나 인도학이니 또는 아예 지역 연구라는 이름 아래 박사학위를 외국인에게 남발하고 친일인사를 양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동양학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경향은 역시 서양, 특히 미국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왜 한국에서는 그 말이 살아있고 유행되는가? 서양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없어졌는데  왜 이 땅에는 살아있는가? 굳이 동양학이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동양과 서양을 구분한다. 


613쪽

이러한 동양학 또는 동양적 취미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여 사이드의 그것은 ‘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지배방식’ 이다. 곧 오리엔탈리즘으로 총칭되는 ,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인식, 표현의 본질을 규명함과 동시에 그것이 기본적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직결된 것임을 밝혀 앎과 힘- 지성과 권력의 관계를 식민지적 상황에서 인식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가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우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오늘날 한국 또는 어제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동양학이란 사실 동일하다.  왜냐하면 조작된 신비적 이미지의 그것은 사실상 사양이 날조한 것이고 , 우리의 동양학이란 것도 바로 오리엔탈리즘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은 낭만적인 취향의 이국 취미로 장식한 야릇한 신비적 현상을 동양적인 것이라고 조작했다. 그것이 상업주의로부터 값싼 문예나 회화, 음악의 어떤 조류라고 한다면 도사니 귀신이니 뭐니 하는 동양학, 동양종교, 동양 사상의 학문적인 장식에 이르기까지도 그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사이드는 ‘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라고 처음으로 학문적인 명확성을 부여했고 객관화시켰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는 그 사고양식의 구조와 기능을 명확히 해명한 점과 이울러 그러한 사이비 지성에 대한 -그것은 서양 근대의 지성사이다- 엄격하고도 치열한 비판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사이드는 그러한 지성의 형태가 갖는 기능- 곧 앎과 힘이 결합되어 오리엔탈리즘이 지배의 양식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에 놓여 있는 것은 , 동양과 서양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분 즉 흑백논리임을 밝힌다. -생략-

 한편 그것은 열등한 동양에 대한 우등한 서양,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웨스터니즘( westernism) 내지 옥시덴탈리즘 (oxidentalism) 을 형성한다. 이것은 사이드의 분석 밖에 있는 것이나 사실 오리엔타리즘을 형성하는 서양의 정신 구조가 그대로 동양에 이식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생략

619쪽  중간  / ‘ 한국의 독자로서 우리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일본의 한국지배에 기본이 되었음을 우리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이 책에서 취급되는 <현대 이집트> 란 책 (1911년 ) 서문에서 대일본 문명협회 회장은 “ 이집트의 경영은 우리 한국에서 보호정치에 참고가 되어야 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되며 ” 그 책을 한국의 이등박문에게 보낸다고 했다. 따라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은 일본이 배운 서양의 식민사상에 대한 비판이므로 일제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생략-

631쪽 중간 - /서양이 조작한 오리엔탈리즘은 우리에게도 완전한 중독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철저히 상업화 된 동양학일 것이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 따위의 상표로 포장된 그것은 한국의 동양학을 made in USA로 과대선전하여  골목의 구멍가게에서까지 팔고 있다. 미국에서 동양의 메카라고 하는 하버드의 엔칭 연구소란 소위 동양적인 것- 중국적. 일본적인 것의 수집처이다. (한국적인 것도 약간 있으나 그 대종은 족보이다 ) 그곳에서 우리의 법이나 경제 또는 정치를 제대로 연구하기는 힘들다. 동양적이라는 수식은 막연히 낭만적, 감상적인 색깔을 띠어왔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에 우리 동양인 자신도 세뇌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자신을 신비화시키는 것은 정신병자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 무당의 경우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