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초월한 세계적 리더의 공간에서 현대인에게 ‘불구하고 사랑을 준다’ 를 전도하는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만나다. 단아한 외모와 흔들리지않는 침착함 속에 깊은 사고력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하는 눈빛에서 앞으로 또 한 사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못지않은 세계적 지도자가 나오지않을까 생각했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이철호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권두대담
날짜 : 2007년 7월 18일 오후 2시 30분
장소 : 대한적십자가 건물 5층 총재실
대담진행 : 이숙 사무처장
대담정리 : 권남희 수필가 (한국수필 편집주간)
이철호 :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대학총장을 역임하시고 그 후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 교육인적부 장관 등 큰일을 많이 하시고 계십니다. 해외출장도 많이 다니시는 편인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노하우가 있겠지요? 제가 아무래도 의료인으로 활동하다보니 건강부터 살펴보게 됩니다.
한완상 : 아침마다 15분씩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동작을 하는데 15년간 해오고 있지요. 주로 요가 뒤풀이에 역점을 두는데 몸을 정상적인 위치에서 비틀고 이탈시키는 이유는 내 자신의 잘못된 것을 털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내속에 있는 독선과 탐욕을 다스리고 이겨내기 위한 운동으로 요가를 하며 또한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철호 : 네, 그 많은 해외출장을 어떻게 감당하시는지요.
한완상 : 우리 대한적십자사는 세계 18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적십자사연맹의 관리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녀야할 해외출장이 아주 많은데 모두 다니기는 역부족이고 부총재나 사무총장과 나누어 조절합니다. 나눔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장수하려면 약속을 어겨라’ 그런 말도 있는데 남을 구속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약속은 꼭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중요한 약속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지만 독선에 의한 약속은 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호 : 네, 좋은 말씀입니다. 동양에서는 흔히 사주팔자에 집착하는데 인생은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가 가능하겠지요. 관상이 좋아야하지만 먼저 심성을 더 위로 치고 심성을 곱게 가지면 그것이 좋은 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면 이것이 심성에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서울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셨는데 혹시 문학청년시절이 있지는 않으셨는지요.
한완상 :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휴전 직후였습니다. 수복되었지만 서울은 파괴되어 가난하고 질병이 번져 힘든 시기를 격고 있었습니다. 심신의 치료가 절실한 사회를 보며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 때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심취되곤 했지요. 까뮈의 ‘이방인’ 등을 읽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잡지, 문학예술잡지도 읽곤 했습니다. 문학인이 되기에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평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작품과 시대상황에 따라 창조적인 번뜩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철호 : 너무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총재님은 학자였을 때부터 70년-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반골이십니다.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두 번이나 해직당하는 일을(유신체제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겪으면서도 의연한, 그러한 정신의 배경이나 계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한완상 :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자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데 어머님은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고 아버님께서는 의사를, 형은 정치학과를 가라고 했습니다. 어린 생각에도 저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좋지만 그보다 사회가 병들었을 때 사회를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서울대 사회학과를 가라. 그러면 되고 싶은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하셨고, 그 말씀을 따라 서울대학 사회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6.25를 겪으면서 전쟁 중에 인간의 고통과 질병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의 참상을 직접 보기도 했지요.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 학보병으로 최일선에서 근무했지요. 50년대 군생활이란게 늘 배고픔 속에서 견디는 것이었는데, 가난과 부패가 심한 사회에서 그 빈곤과 부패를 고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 국가와 사회, 조직이 닫힌 체제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때 역시 인간의 기본권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경험을 강렬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민주화, 인권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지요.
60년 대 초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를 공부할 때 미국은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민권운동(흑인중심), 히피운동, 반전운동 등 미국 전역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변혁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사논문을 쓰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더욱 그리워하게 된 것이지요.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모교의 부름을 받고 서울대에 왔는데 70년대 당시 캠퍼스는 전투장이었습니다. 상아탑이 아니라 전투장에 왔구나, 자유롭게 가르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경험, 군생활, 그리고 유학생활로 이어진 이 3단계 경험이 민주, 인권운동으로 연결되었죠.
이철호: 대한적십자사 총재일을 하시면서 역점을 둔 사업이 “경제 논리보다 정신에 의해 진행되는 인도주의적 사업이다”라고 하셨는데 문화나 예술과 접목시키는 형태인가요?
한완상 : 문학작품이 감동을 주려면 작품 속 주인공이 ‘때문에’ 논리에 묶여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불구하고’ 논리가 감동을 주기 때문이지요. 상대가 내 눈을 때림에도 ‘불구하고’ 그를 안아주는 인물이 대체로, 위대한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기를 비우고 남을 채워주는 것, 원수를 사랑하는 논리이기도 하죠. 흔히 보복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데 이같은 보복적 처단으로는 사람도, 구조도 모두 바꿀 수 없습니다. 보복은 악순환을 강화시키고 활성화시킵니다. 이 고리를 끊어주어야 합니다. 승리했다고 패배자에게 한을 심어주면, 복수의 씨앗이 상대 안에서 자라나 다시 공격하게 되지요. 탐욕과 독선을 비워야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이철호 : 이산가족 상봉과 면회가 재개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고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대상 범위를 분류하는게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문인들 안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한완상: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산가족은 약 9만4천명에 이릅니다. 그 가운데 1년에 가족끼리 면대면으로 상봉하는 인원은 기백 명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사사로운 점이 개입되면 안되는 일이지요. 상봉가족선정은 철저히 추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총재라고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이 고령자이거나 직계가족일 경우 가산점을 줍니다.
이철호 : 2006년 금강산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평화문학예술축전이 150여명의 작가들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총재님도 평화메세지를 낭독하셨는데 이러한 시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한완상: 한 사회가 어두울 때는 밝게 해 주고, 부패했을 때는 정화를 시키고 질식할 만큼 답답할 때는 자유롭게 하는 힘은 여러 곳에서 솟아납니다. 문학인과 지식인들은 시대의 빛이요 소금이죠. 게오르규(‘25시’ 저자)는 잠수함안의 토끼가 눈을 감고 졸고 있으면 잠수함안의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위험에 대처한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작가나 지식인들은 닥쳐 올 위기를 미리 경고해주는 토끼같은 존재입니다. 문학, 예술인들이 앞장서 가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랑스러운 일이죠. 어릴 때부터 문학작품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이미 자라서 교육받는 것과 다르고 또 그 영향도 훨씬 크지 않겠습니까.
이철호: 문인들에게 오피니언 리더로서 말씀하신다면?
한완상 : 문인들은 어느 시대 상황이나 중심부에 있지 않고 앞 변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각자’는 외롭기 마련이지요. 정말 선각자 역할을 하느라 문인들은 외롭습니다. 일반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고 외롭지만 계속 빛을 던저야 합니다.
이철호: 정말 위로받고 감동을 주는 말씀입니다. 문학도 앞으로는 적십자사처럼 국적을 초월한 단체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국가적 단체의 대표로서 한 말씀해 주신다면 ?
한완상 : 적십자사는 국제기구로 국적, 인종, 종교, 계급 또는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서 ‘인도주의의 불구하고’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정보매체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축소되었지만 오히려 온갖 구조적 벽은 더욱 높아지고 더욱 두꺼워진 느낌입니다.
우리나라도 지역, 성, 계층 간의 벽이 있는데 이제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인도주의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한 달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십자활동을 직접 보았고, 두 적십자간의 협력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느낀 것은 종교 간의 벽이 가장 허물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선과 탐욕이 이같은 벽을 만들기에 그 벽을 초월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인도주의 힘이지요.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게 문학인들의 몫이고 사명이겠지요.
이숙 : 요즘 읽고 계신 책은 무엇입니까
한완상 : 저는 한 가지만 읽지 않고 여러 책을 한꺼번에 봅니다.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를 봅니다. 지금은 베리의 베스트셀러 소설 두 권을 읽고 있구요 댄 브라운의 소설들은 모두 읽었습니다. 종교서로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논쟁’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젊었을 때 소설을 더 많이 읽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철호 :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문학인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완상 약력 : 충남당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 美에모리대학원 사회학 박사. 現대한적십자사 총재 및 국제적십자사연맹 관리이사. 서울대 교수.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 부총리겸 교육인적부 장관, 상지대, 한성대 총장 역임.
저서 ‘ 지식인과 허위의식’ ‘ 한국현실과 한국사회학’ ‘ 아리랑 연구’ 외 다수
광주민주화 유공자 . 청조근정훈장. 제 4회 민족 화해상
월간 한국수필 8월호에 실렸습니다 (7월 27일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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