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09 11월호 한국수필

권남희 후정 2009. 11. 3. 17:01

 

 

 

발행인 정목일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사무국장 서원순 .기획실장 이철희.

편집차장 김의배 .사진기자김혜숙(주경)정기구독 신청 532-8702-3

신인응모 원고 이메일 kessay1971@hanmail.net

지난 호의 월평(2009. 10월호)

가치 있는 깨달음

고동주 수석 부이사장

생활하면서 접하게 되는 어떤 사건이나 체험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마음을 스칠 때가 있다. 그것을 붙들고 깊은 사색에 잠길 때 가치 있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 등을 조화롭게 가미하여 형상화하면 비로소 수필의 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그 마당의 격을 좀 더 높이려면 작가의 진실한 고백적 요소가 충분히 묻어 있어야 하고,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신선감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델이 요구되는데, 상황에 따라 그 핵심에 서서 날카로운 비판의 일면도 지녀야 한다.

그런 맛이 없으면 작가와 독자가 차츰 멀어져가는 소통의 길을 트기도 어렵거니와 수필의 매력을 회복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수필」10월호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 이런 염려에 대한 해답의 길을 열어준 작품을 만나본다.

박동석의 「놓치고 있는 기적」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게 되지만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을 겪기란 여간 어려워서 평생에 한 번도 힘들다. 어쩌면 바다가운데 떨어진 동전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아주 희귀한 일만을 기적이라고 해야 하는가는 차분하게 음미해볼 일이다. 어쩌면 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생활이 바로 기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놓치고 있는 기적」일부

작가는 우연히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기적」이라는 영화의 주제곡「푸른 옷소매를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를 기억 속에서 더듬어 본다.

그 영화는 영국과 스페인이 전쟁 중, 한 수녀가 영국군 장교를 사랑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연이 소재가 되었다.

여자 주인공인 수녀는 진료소에서 부상당한 장교를 간호하다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치료가 끝난 장교가 전투지역으로 복귀하자 그대로 견딜 수 없었던 수녀는 수녀원을 떠나는 파계를 감행한다. 그러자 갑자기 성당안의 마리아 상이 사라지고 심한 가뭄이 시작된다.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장교를 찾아 헤매었으나 만나지 못한 채 다시 예전의 수녀원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돌아오자 성모마리상이 다시 제자리에 서게 되고 가물었던 마을에 비가 내려 경작지가 해갈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잠깐 기억 속을 스쳐가는 영화 장면으로 하여금 「기적」이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작가는 드디어 기적에 대한 발상의 전환에 이른다. 보기 어려운 희귀한 일만 기적이 아니고 일상적인 현상도 기적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독자의 시각을 유도하고 있다. 병석에 누워 생사의 기로를 헤매면서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는 기적만을 간절히 바라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비교하면 그 건강이 이미 기적 속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기적 속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축복이냐는 결론에 이른다.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는 발상으로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이 독자들을 낯설게 하면서 은근히 긍정적인 사고로 유도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

이제 수필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참 인간답기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만들기에 주력할 때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그 몫의 일부를 감당한 셈이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부에 영화 내용의 소개가 너무 길어서 주제를 향한 분위기가 약간 산만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오덕열의 「오색 금줄 자르기」

‘말과 정신은 어떤 관계일까. 언어를 빼앗기면 허우대만 남고, 정신은 없게 된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집 속에 인간은 산다고 했지 않는가.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말을 지키고 다듬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시인의 근원적 사명을 모국어를 영생시키는 일과 지상의 존재를 노래로 지켜주고 찬양해 주는 일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어디 시인뿐이겠는가. 우리 문학인 모두가 해야 할 일이지 않는가. ’

- 「오색 금줄 자르기」일부

크게 잘 못 되어가는 풍토를 규탄하는 메시지이다.

작가가 지적한 대로 이미 생활 속에 익숙해 진 우리말까지 영어로 바꾸고 있으니 앞으로 세월이 더 흘러가면 순수한 우리말은 얼마나 남게 될까 걱정스럽다.

한국통신이면 되는데 왜 KT라 해야 되며, 농협은 NH로, 담배인삼공사는 KT&G로 왜들 명칭까지 경쟁적으로 바꾼단 말인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 분명한데 한국 분위기와 상관없는 월드메르디앙, 메가시티, 리젠시빌 등 워싱턴 뒷골목에서 주워온 명칭들인가.

어쩌면 우리말 없애기 경진대회를 벌이는 꼴이다.

앞으로 어떤 개통식이나 준공식에서 오색 금줄을 자를 때 외래어 남발 풍토 자르기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구성이나 주제가 단순 한 아쉬움은 있으나, 사회 풍토의 잘못된 흐름을 지적하는 건전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홍정자의 「나중에란 말의 유혹」

‘우리는 ‘나중에’란 말을 쉽게 쓴다.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보다 무의식적으로 남발한다.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시간이 없을 때, 거리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 언제 차 한 잔 하자고 가볍게 공약(空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으로 미루었던 그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어쩌면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중에란 말의 유혹」일부

작가는 ‘나중에’ 라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여러 번 체험하게 된다.

고향 어머니에게 한 편지약속, 은사님 찾아뵙겠다는 약속, 소꿉친구와 만남약속,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 사주겠다는 약속, 큰 사돈과 만남 약속 등 모두 ‘나중에’ 라는 부도수표를 던진 인생 경험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때늦은 후회를 다음과 같은 마무리로 대신한다.

이란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버릴 일들을 뒤척이며 돌아봄은 쓸쓸한 일이다. 최선의 삶이란 주어진 여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적조했던 친구들을 찾아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털어내고 얄팍한 주머니에 맞는 된장뚝배기의 정을 향기처럼 풀어 나누고 싶다. 삶의 여정에 길벗 만나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 있으랴.’

-「나중에란 말의 유혹」마무리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계도에 있다. 그러나 계도적인 냄새가 진하게 나면 수필이 아닌 계도 문에 불과 할 것이다. 마침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체험으로 계도적인 분위기를 은근히 숨겨 보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좀 얕은 느낌이다. 은근해 지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절실해야 하며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런 과제가 농밀하게 내재되어 있을수록 가치를 더하게 되고, 독자는 계도라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결국 계도 당하게 된다.

그런 글일수록 사회나 인간을 밝게 하는 빛이어야 하고,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 그것은 앞으로 문학이 담당할 과제가 아닐까. 문인 중에서도 특히「한국수필」필진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무표정

윤 자 숙

12월의 한겨울 저녁이다. 바람의 소리가 유령의 소리처럼 윙윙 거린다. 오빠와 나는 양쪽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조그만 간판이 걸려 있는 찐빵 가게로 들어선다. 어머니는 무작정 집을 나와 발길 닿는대로 걸어 다니다가 잠시 쉴 곳을 발견하였으리라. 결혼의 위기가 엄습한 시간이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안으로 들어서면 테이블 2개가 시멘트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테이블 맞은 편에는 커다랗고 까만 무쇠 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뚜껑을 열자마자 주먹만한 크기의 속이 꽉 찬 탱글탱글한 하얀 찐빵이 가득 들어 있다. 한 입 깨물면 달콤하고 까만 팥고물이 옆으로 새어 나온다.

오빠와 나는 추위와 허기를 달래느라 쉴 새 없이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옆에서 쓸쓸한 그림자가 비친다. 찐빵을 손에 대지도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묵묵히 앉아 계신다. 결국 찐빵을 하나도 드시지 않으신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에서 굳은 입매와 힘없는 눈동자로 빵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 모습을 넋놓고 보고 계신다. 표정없는 시간이 잠시 지나고 정신을 차리면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에도 어머니는 힘이 들 때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물곤 하셨지만 유난히 빛나는 안광을 보며 세파에 단련된 강인한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찍힌 그 그림자 하나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의 앨범에 남아 있다. 먹고 살기에 힘든 70년 대 시절이어서 무표정 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정없는 표정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다. 안으로 고통을 삭히면서도 가족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이 되어 주리라는 결의의 표정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 외유내강의 정신적 가치를 심어준 스승인 셈이다.

빠듯한 살림에 1남3녀의 자식들 대학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수성이 예민한 남편을 극진하게 섬기면서 시골의 집안친척들 건사하기까지 바쁘고 고된 일상이다. 집안친척들에게 사고가 생기면 고민을 해결하는 해결사 담당은 어머니의 몫이다. 친척들은 심지가 곧은 어머니를 의지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잡음 속에 휘말려 있었다. 사업을 하는 친척에게는 보증을 서 주다가 거리에 나 앉을 뻔 한 일도 있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고독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답답해서 싫었다. 그래서 나는 반동적으로 응석 부리고 살아야 겠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다.

찐빵을 먹던 그 아이를 닮은 아이가 내 옆에 서 있다. 나는 밤공기가 차갑도록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시내를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집에 가고 싶니?”

“엄마, 추워. 빨리 집에 가자.”

일과 회식 때문에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과 한 바탕 크게 싸우고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 12시가 되어 인적이 사라지자 무섭고 피곤하다. 허전하고 답답하던 공간이 다시 그립고 아쉬워진다. 숨죽은 배춧잎처럼 싸울 때의 등등하던 기세는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무표정했다. 기억 속에 찍힌 낯익은 어머니의 표정 없는 얼굴과 닮아있다. 척박한 삶을 성실과 인내로 일구어 오신 어머니를 존경하고 감사를 드리지만 표정 없이 살지 않겠다고 하던 다짐이 무너지고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 일에 자신을 돌 볼 겨를이 없다. 심하게 요동치는 부동산 폭등과 폭락의 소식은 우울하다. 발 빠르게 맞추어 나가지 못하는 소시민의 살림살이가 피곤하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낀다. 욕심만 가득한 정신적 척박함에 찌들리고 있다. 훗날 나의 아이가 엄마를 기억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두렵다. 더 이상 물질이든 정신이든 찌들린 무표정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나의 혈육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무표정이나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기 위한 무표정으로 각인되고 싶다.

고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40점이 넘는 그의 자화상에서 보게 되는 인상은 단호하게 입을 다물고 번쩍이는 안광이 날카로운 표정이 없는 얼굴이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상을 꿈꾸는 모습이다. 그의 무표정에서 친숙함을 느낀다.

남편의 모습도 결혼 초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언제나 미소로 화답하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변했다. 취미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라서 집안일 이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함께 지내온 20년 동안 줄곧 공유하는 것이 썰렁한 표정 없는 얼굴이다. 부부는 닮아 간다고 하는데 표정을 닮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표정에 익숙하다. 이제는 말이 없어도 편안하다. 무표정이라 할지라도 행복하다.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찮은 무표정이라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한적한 곳에 찐빵 가게가 있다. 찐빵을 꼭 먹어야 한다는 성화에 못 이겨 남편은 투덜거리며 차를 세운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며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는다고 빈정거린다. 40년 동안이나 변함없는 찐빵의 맛은 달콤하고 따뜻하다. 옛날의 맛 그대로이다. 찐빵을 먹고 있노라니 7살 때 내가 처음 느꼈던 어머니의 무표정이 그립다.

 

무표정

윤 자 숙

12월의 한겨울 저녁이다. 바람의 소리가 유령의 소리처럼 윙윙 거린다. 오빠와 나는 양쪽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조그만 간판이 걸려 있는 찐빵 가게로 들어선다. 어머니는 무작정 집을 나와 발길 닿는대로 걸어 다니다가 잠시 쉴 곳을 발견하였으리라. 결혼의 위기가 엄습한 시간이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안으로 들어서면 테이블 2개가 시멘트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테이블 맞은 편에는 커다랗고 까만 무쇠 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뚜껑을 열자마자 주먹만한 크기의 속이 꽉 찬 탱글탱글한 하얀 찐빵이 가득 들어 있다. 한 입 깨물면 달콤하고 까만 팥고물이 옆으로 새어 나온다.

오빠와 나는 추위와 허기를 달래느라 쉴 새 없이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옆에서 쓸쓸한 그림자가 비친다. 찐빵을 손에 대지도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묵묵히 앉아 계신다. 결국 찐빵을 하나도 드시지 않으신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에서 굳은 입매와 힘없는 눈동자로 빵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 모습을 넋놓고 보고 계신다. 표정없는 시간이 잠시 지나고 정신을 차리면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에도 어머니는 힘이 들 때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물곤 하셨지만 유난히 빛나는 안광을 보며 세파에 단련된 강인한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찍힌 그 그림자 하나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의 앨범에 남아 있다. 먹고 살기에 힘든 70년 대 시절이어서 무표정 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정없는 표정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다. 안으로 고통을 삭히면서도 가족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이 되어 주리라는 결의의 표정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 외유내강의 정신적 가치를 심어준 스승인 셈이다.

빠듯한 살림에 1남3녀의 자식들 대학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수성이 예민한 남편을 극진하게 섬기면서 시골의 집안친척들 건사하기까지 바쁘고 고된 일상이다. 집안친척들에게 사고가 생기면 고민을 해결하는 해결사 담당은 어머니의 몫이다. 친척들은 심지가 곧은 어머니를 의지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잡음 속에 휘말려 있었다. 사업을 하는 친척에게는 보증을 서 주다가 거리에 나 앉을 뻔 한 일도 있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고독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답답해서 싫었다. 그래서 나는 반동적으로 응석 부리고 살아야 겠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다.

찐빵을 먹던 그 아이를 닮은 아이가 내 옆에 서 있다. 나는 밤공기가 차갑도록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시내를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집에 가고 싶니?”

“엄마, 추워. 빨리 집에 가자.”

일과 회식 때문에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과 한 바탕 크게 싸우고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 12시가 되어 인적이 사라지자 무섭고 피곤하다. 허전하고 답답하던 공간이 다시 그립고 아쉬워진다. 숨죽은 배춧잎처럼 싸울 때의 등등하던 기세는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무표정했다. 기억 속에 찍힌 낯익은 어머니의 표정 없는 얼굴과 닮아있다. 척박한 삶을 성실과 인내로 일구어 오신 어머니를 존경하고 감사를 드리지만 표정 없이 살지 않겠다고 하던 다짐이 무너지고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 일에 자신을 돌 볼 겨를이 없다. 심하게 요동치는 부동산 폭등과 폭락의 소식은 우울하다. 발 빠르게 맞추어 나가지 못하는 소시민의 살림살이가 피곤하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낀다. 욕심만 가득한 정신적 척박함에 찌들리고 있다. 훗날 나의 아이가 엄마를 기억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두렵다. 더 이상 물질이든 정신이든 찌들린 무표정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나의 혈육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무표정이나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기 위한 무표정으로 각인되고 싶다.

고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40점이 넘는 그의 자화상에서 보게 되는 인상은 단호하게 입을 다물고 번쩍이는 안광이 날카로운 표정이 없는 얼굴이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상을 꿈꾸는 모습이다. 그의 무표정에서 친숙함을 느낀다.

남편의 모습도 결혼 초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언제나 미소로 화답하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변했다. 취미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라서 집안일 이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함께 지내온 20년 동안 줄곧 공유하는 것이 썰렁한 표정 없는 얼굴이다. 부부는 닮아 간다고 하는데 표정을 닮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표정에 익숙하다. 이제는 말이 없어도 편안하다. 무표정이라 할지라도 행복하다.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찮은 무표정이라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한적한 곳에 찐빵 가게가 있다. 찐빵을 꼭 먹어야 한다는 성화에 못 이겨 남편은 투덜거리며 차를 세운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며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는다고 빈정거린다. 40년 동안이나 변함없는 찐빵의 맛은 달콤하고 따뜻하다. 옛날의 맛 그대로이다. 찐빵을 먹고 있노라니 7살 때 내가 처음 느꼈던 어머니의 무표정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