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권남희
천경자 화가는 배추밭 풍경을 보면 ‘ 나는 살고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녀는 배추색을 ‘ 생명을 확인하는 색’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미감에서 나는 공감대를 갖는다. 개구리를 보거나 개구리를 생각하면 목숨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윤기나는 배추색을 몸에 두른 채 튀어오르는 개구리를 이제는 봄이 지나도록 만나기가 쉽지않다. 서울을 벗어난 들녘에서도 제대로 볼 수 없다. 겨울이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살짝 얼어버리는 동상 피해를 겪곤 했던 어린 시절 얼어버린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팔다리가 멀쩡한 채 튀어나오는 개구리는 신기했다. 트고 갈라진 내 손등에 개구리를 잡아올리면 미끌미끌한 빛깔과 튀어나온 눈으로 껌뻑이다가 폴짝 뛰어 나갔다. 밤이면 개구리 울음 소리로 사방이 꽉 찰만큼 개구리들이 흔했던 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경동 시장에서 개구리 뒷다리를 한 묶음 산 적이 있다. 몸이 약한 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자책을 해대며 무언가를 끓이고 먹지않는 콩이나 시금치 따위를 다른 음식 속에 넣어 만들어보며 늘 아이 몰래 음모를 꾸몄다. ‘아이는 일곱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 는 말도 있지만 아이가 시들한 기색으로 숟가락을 놓을 때마다 정성이 부족한 것일까 , 마음을 졸였다. 일상이 아이를 생각하는 부담으로 짓눌려 시장을 가도 희귀한 먹거리에 눈이 갔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들른 시장에서 개구리 다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단숨에 집어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집으로 달리다시피 돌아갔다. 서둘러 개구리 다리를 솥에 넣고 푹 고아 뽀얀 국물을 냈는데 아들녀석은 개구리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징그럽다며 달아나버렸다. 먹을 것도 많은데 하필 개구리냐며 혐오하는 아이에게 차마 엄마도 개구리를 먹고 튼튼해졌다는 말로 상처를 줄 수 없었다. 며칠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다고 울던 마음의 아이였다. 녀석의 가느다란 팔다리를 생각하면 한시가 급하고 무엇이든 어미가 주는 먹거리를 삼켜주어 명줄을 잡았으면... 하는데 아이는 음식에 대한 거부가 많았다. ‘아이에게 공을 들여야 제대로 큰다’는 스님의 말에 덜미가 잡혀 아무도 모르게 절을 찾아가 공양을 올리며 차라리 나의 목숨을 좀 줄여달라고 애를 태운 날들이었다.
식욕을 잃고 제대로 자라지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늘 개구리를 고아주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폐렴을 앓다 죽는 아이들이 많던 그 때 나는 두돌을 지나면서 폐렴을 앓다가 겨우 살아 났다. 그 후로 나는 늘 잔기침에 시달렸다. 쇠고기는 한 달에 한번 강물에 배 띄우듯 국으로 끓여먹던 살림에 마땅한 먹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내 기침소리는 겨우내 아버지의 가슴을 까맣게 태웠을 것 같다. 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는 밭두렁에 작은 솥을 걸어두고 개구리를 잡아 고아주곤했다. 논 둑이나 밭고랑 옆 개골창에서는 개구리들이 폴짝거렸다. 개구리 목숨을 담보로 딸을 구완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리는 없었지만 국물을 잘 마셨던 것같다. 이웃 마을에 결핵을 앓던 가족이 차례로 아버지부터 아들, 딸까지 죽어나가자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까이 다가왔고 병원도 흔하지 않던 때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앓게되면 살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버지를 헤어나지 못하게 했을 지 모른다.
이리저리 튀는 개구리를 왼쪽다리는 허벅지까지 의족을 끼고 살았던 아버지가 어떻게 잡으러 다녔을까 봄이 되면 한번씩 생각을 한다. -월간 에세이 04-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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