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월간 한국수필 5월호 피천득 탄생 100주년 인터뷰

권남희 후정 2010. 6. 11. 15:11

탄생 100주년 피천득 선생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떠난 수필가

경인년은 수필문학사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식민지 시대 조선 첫 세대 문인 중 한분으로 꼽히는 피천득 선생이 현대 한국수필문학에 독보적인 존재로 대중들에게 폭넓게 사랑을 받아온 영향과 문학성을 조명하여 수필문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를 삼았으면 한다.

 

 

 

대담

정목일 본 협회 이사장

김우종 문학 평론가

일시 : 2010년 4. 28일 (수) 오후 4시

장소 : 피천득 기념관 (잠실 롯데월드 3층 )

글.사진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 피천득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인연〉〈수필 〉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수필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선생의 삶과 문학을 조명해보는 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이러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수필문학에서는 독보적 존재로 후대가 영원히 기억해야할 수필가라는 사실을 말하고싶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정서에 끼쳤던 커다란 영향과 함께 반대급부까지도 터놓고 이야기를 하였으면 합니다. 순수하고 동심어린 선생은 구순의 동심으로 순진무구한 삶을 살다 갔지만 일제시대 지식인으로 시대와 역사의식의 부족, 사명감의 결여, 서민들의 삶과 채취의 부재를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김우종 :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거의 바이블이나 마찬가지 위치에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일찍부터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중등교육을 이수한 한국인이면 누구나 배울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고, 그 내용은 수필에 대한 정의와 창작 실기 지침서인 셈이고, 국정 국어교과서는 무조건적 권위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수필>작품은 비록 작자의 본의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다른 형태의 수필의 정의나 작법을 가르칠 기회를 거의 막아 버리고 제왕적인 위치에서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천득 외에는 누구도 이런 형태의 수필을 교과서에 실은 일이 없습니다. 피천득은 <수필>을 통해서 거의 절대적 배타적인 형태로 수필 창작 실기 지도를 온 국민에게 독점적으로 해 온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중등교육을 받은 국민들이 제약을 받을 만큼 수필쓰기에 한 가지 패턴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꿔서 생각하면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몇가지의 독창적인 문체의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선생의 진면목은 문장에 있습니다. 첫째는 시적인 경지의 간결함, 압축성, 상징, 비유, 리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점이고 둘째는 한국수필의 전통인, 서정수필의 본령을 지켰다는 점과 유미주의, 그리고 선생의 고결한 인품이 담긴 문장입니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물질은 풍부하지만 마음은 황폐하고 지식은 넘치지만 지혜가 부족한 경우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수필을 아끼고 애독하는 이유는 고결한 인품에서 얻는 인생의 감화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김: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의 형태도 작품세계와 일치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피천득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고 오직 서재 속의 청자 연적이나 난처럼 고고한 품위를 지켰고 학처럼 맑고 우아한 모습을 지켜 나갔는데 그렇게 권세나 부를 쫓지 않고 문단에서 굳이 명예직을 얻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결국 그의 작품을 통해서 수필가로서는 본의 아니게 거의 제왕적 자리를 지켜왔지 왔지 않습니까.

. 또 그가 주장하는 수필은 정적이고 은은하고 맑은 이미지가 전부여서 사회적 역사적 현실에 대해서는 문을 닫아 버리는 폐쇄성을 지녔습니다. 그의 수필대로라면 분노한 군중들이 몰려 나와 절규하는 광장이나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시장바닥이나 노동판이 아닙니다..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의 고요한 길, 한적한 주택가 등의 이미지를 지닌 것이 그의 수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수필은 격동적인 역사적 현장이나 이해가 상충하는 다수 집단의 사회적 갈등 현장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수필은 정열이나 심오한 사상을 필요로 하지 않고 불의에 대한 분노나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상성 따위는 지니지 않는 가벼운 문학입니다.

정 : 선생은 사실상 1960년대 절필했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서 더 자유롭지 못했다는 판단을 해봅니다. 1930년대에는 시를 썼고 1940년대에 〈수필〉작품을 내놓으면서 수필로 전향하여 20여년간 70여편을 썼으니 1년에 4편도 안되는 작품을 발표한 것입니다. 절필에 대한 결심이 확고하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지켜나갈 것임을 저에게도 서너차례 말한 바 있습니다.

“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돈, 명예가 필요해서다. 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에전 작품보다 더 잘 쓸 수 없기 때문” 이라 말했습니다. 선생의 지향점은 최고, 고결,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었기에 어떤 비난의 소리를 들었다해도 결코 변명의 토를 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김: 피천득의 마지막 작품 〈인연〉에 대해 말을 할까요 .

<수필>이 수필의 정의이고 창작 실기를 가르친 교과서 형태의 수필인 것과 달리 <인연>은 그렇게 제왕적 위치에서 수필을 가르친 수필가가 쓴 작품이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은 대표작이지 않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인연>은 한국수필 전체 속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 온 몇몇 작품들 중의 하나로 짐작되며 그만큼 우리 수필문학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온 국민에게 수필의 뜻과 작법을 가르친 교과서이며 바이블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인 <인연>은 그같은 창작실기의 모범 답안은 아닙니다. <인연>은 <수필>의 내용을 한쪽에서는 배반하고 있지요. 역으로 배반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작법은 전연 다르더라도 <인연>에 담겨진 수필의 성격은 <수필>에서 말한 것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피천득은 스스로 이 작법을 배반하고 매우 기교적인 작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무기교론을 주장한 <수필>마저도 매우 기교적이었습니다. <인연>은 그런 기교적 창작 기법을 의식한 대표적인 작품고 이것은 모두 의도적인 기교적 작법에 해당됩니다. 상상의 세계를 창출해 나가는 이같은 기법은 수필의 문학성 제고를 위한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기법이 문학성 예술성 살리기에 좋은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아닌 허구의 냄새가 도처에서 드러나는 것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 ‘수필은 중년 고개를 넘어 선 35세 이상의 글’이라는 피천득 선생의 정의나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등의 수필론으로 수필창작의 다양성을 어렵게 하고 젊은층 수용이 되지않는 점은 수필문학의 과제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피천득의 수필은 창작실기 따위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지금도 거의 온 국민이 국정국어교과서를 통해서 이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피천득의 <수필>을 통해서 전통적인 수필의 개념과 작법을 가장 잘 정리해 나간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 공로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수필에 대한 정리로서 족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수필 교육은 여전히 교과서를 통해서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만일 대다수의 수필가들이 이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한국수필은 결코 발전하지 못하고 다른 장르에 비해서 문학성은 계속 의심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 :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 좋은 말씀을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한된 지면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경지를 꽃피워 준 피천득 선생의 문학세계를 거론하기는 어렵겠지요. 선생의 순수성은 청정지역으로 문학사에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선생의 군더더기없는 문장과 짧고 세련된 표현력 등 긍정적 요소는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마칠까 합니다.

피천득(皮千得)약력 (1901-2007)

서정소곡 (1930년)으로 등단.

경력

1937년 서울 중앙고등학원 교원

1945년 경성대학교 교수

1946년-197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수

196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주임교수 등

- 저서

생명 (1997, 샘터) 내가 사랑하는 시 (2002, 샘터)

꽃씨와 도둑 (1997, 샘터) 노인예찬 (2001, 평민사)

효 (외) (2001, 범우사) 한국의 명수필 (2001, 을유문화사)

찰스 램 수필선 (2001, 범우사)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