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5월호 권두대담
문학으로 행복과 풍요로움을 깨우쳐주는 이상보 수필가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3. 4.10. 수 오후 4 시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편집국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산책하고 영화도 보시면서 하루를 짜임새있게 보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입니다. 몇 년 전 기행수필집《인도차이나》를 좁쌀책(가로세로 10센티미터 크기 )으로 내셨는데 요즘활동은 어떠신지요?
이상보 :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나이지요? 내게 얽혀있는 인연들을 하나 둘씩 풀어놓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느낍니다. 아내도 떠나고 아들과 함께 살기위해 집을 정리하면서 나의 책도 강남대학교 도서관으로 많이 보냈습니다. 예전에는 국민대학교 도서관으로 보냈는데 서고에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좁쌀책을 수집하게 된 이유는 시베리아 철도여행을 하면서였습니다. 그곳 철도여행은 보통 이틀에서 일주일 징도 걸리지 않습니까. 하바로스크 역에서 잠깐 내려 책방을 들었는데 우연히 좁쌀책을 발견하고 구입한 뒤로 모스크바까지 이동하면서 180권을 사갖고 왔습니다. 아주 적은 것은 터키 여행 중 본 코란인데 3센티미터에 2센미티미터였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부적처럼 코란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아마 그런 용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아예 계산대 옆에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좁쌀책을 진열해두고 있습니다.
정: 한글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한글사랑차원에서 문학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요?
이: 프랑스 어버이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내 딸에게 프랑스 말만은 잘 가르쳤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합니다. 영국 리즈대학 샘슨 교수는 그의 저서 《글자체계》에서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극찬하였고 한국에 왔을 때 덕수궁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딱딱한 한자말과 설익은 외국어를 함부로 쓰는 이들 때문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필가(문학인)들은 우리말 글을 살리고 지키고자 깨어있어야 하겠지요. 한류는 한국에만 있는 문화를 사랑받게하는 일인데 가장 근원은 한글이지요. 고운 우리말의 가락은 읽는 이의 정서를 맑게 해주기에 점점 사라지는 순우리말의 발굴을 작가들은 책임지고 해야합니다. 작가는 ,배움의 깊고 옅음의 가림없이 골고루 읽고 알 수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점점 한글사랑의 운신이 좁아지고 있는데 재정이 넉넉하다면 한글재단에서는 할 일은 많습니다. 이미 다국적 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고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 경제지원을 해왔는데 또 다른 이사장이 맡으면 더 확장되리라 기대합니다.
정. 취미가 고서화와 좁쌀책 수집이라 했는데 지금도 모으고 계신지요?
이: 4년 전부터는 헌책방에 안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또 책을 구입하게 되니까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 애를 쓰지요. 고서수집에 취미가 있어 전국을 누비면서 여행을 한 셈입니다. 당시만 해도 헌책방이 많았는데 이제 헌책방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같습니다. 순전히 기능과 경제논리로 움직이는 곳이 도시이다보니 안타깝지만 책방이 즐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 문화재를 아까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 여기는데 잊혀지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88올림픽 때 만났던 쇼지 센스이(1903-1990)일본작가가 보여주었던 춘원 이광수의 친필 한 점이었습니다. 춘원이 일본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평론가 도쿠토미소호에게 일본말로 써 보낸 달필로 그는 팔고 싶어했지만 성사가 되지는 않았지요. 시대가 바뀌면서 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실을 비워줘야 할 때 책을 보낼 곳이 마땅치않았던 사실에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선호하지요. 인터넷에 오른 정보는 잘못된 내용도 많은데 컴퓨터가 모든 것을 일려준다는 맹목적 믿음은 버려야겠지요.
정: 수필을 쓰게 된 인연이 박연구 선생덕분이라고 하셨지만 조경희 선생과의 인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화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수필을 쓰게 된 일은 명지대학교에서 신문사주필을 맡았을 때입니다. 당시 범우사가 남대문에 있었는데 윤형두 사장을 만나러 놀러가서 그곳 편집장을 하고 있는 박연구 선생님을 알게되었지요. 신문주필을 하고 있다니까 수필잡지에 실을 작품을 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잡문을 쓸 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응하다가 수필문단에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경희 선생과도 한국수필 초기부터 이사도 맡고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분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곁에 있으면 고구마라도 구워먹을 수 있는 난로라는 느낌입니다.
정: 국민대 인문대학장을 지내시는 등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오셨지요. 1948년 시를 발표하였지만 정진권 수필가의 추천으로 교과서에 오른 '갑사가는 길'수필로도 유명하신데 문학후배들을 위해 수필론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수필은 우선 건전한 인생관이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상처주고 남을 비방하는 글보다 쉬운 단어로 무엇이든 장점을 추켜세우면 좋겠지요. 수필은 문화의 사회적 자극을 흡수하여 작가의 숨겨진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완성되는 문학입니다. 현실생활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실리를 초월하는 맑고 높은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수필가는 서로 상반되는 양식(외래문화와 이질문화)들을 포용하는 관용의 정신과 스스로의 양식( 가치관, 세계관, 자연관, 인생관, 역사관)으로 비평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수필은 주관적 문학이지요. 그만큼 지은이의 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개성의 문학입니다. 수필가의 개인적 성찰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역사적 예지를 촉발시키는 강인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야하지요.
문학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인간의 지적활동이라고 여깁니다.
정: 한국수필가협회가 사무실을 마련하고 문학상을 유치하는 등 발전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한류바람을 타고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이루어야하는데 어떤지요?
이: 나는 새는 둥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제 한국수필가협회도 둥우릴 마련했으니 세계로 날아야지요. 구하는 것이 넉넉하면 다툼이 없다고 넉넉한 마음으로 세계인을 품을 준비가 되었으니 작품으로 만나는 장을 만들어나가야겠지요. 우리나라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있지만 누구든 한국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문학단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인적인 접촉도 한류의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작품을 러시아.일본어.독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해서 소개하는 코너가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복아 기독교 문학회가 있는데 회원은 일본인, 중국작가도 있어 문학교류를 하지요. 저의 경우 일본작가의 동인지를 받을 때마다 번역하여 수필문학이나 한맥문학 등에 싣곤하여 단행분 분량이 되었고 일본작가의 승인도 받아둔 상태입니다. 中山直子나카야마 나오코의 글을 번역해서 우리나라 잡지 창조문예에 실었는데 1년에 한사람에게 주는 문학상을 中山直子나카야마 나오코가 받게되어 상금300만원으로 번역시집을 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창조문예에서 《아름다운 꿈》시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한류의 뿌리는 무엇보다 소통입니다. 싸이의 성공도 영어를 잘하니까 감정이입이 잘되어 소통이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정: 수필문학계에도 베이비붐세대들의 퇴직과 함께 많은 문학인구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문학수필세계의 정립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요
이: 눈만 뜨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매체들의 혼란속에서 문학이 침체되고 있는데 문학인구 유입은 반가운 현상 아닙니까?. 젊음의 문학이라는 시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인생을 산 사람은 좋은 수필을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격이 형성되어야 쓸 수 있는 수필분야가 양적으로 팽창되는 일은 그만큼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고 봐야 합니다. 수필문학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어디에선가 그만큼의 수요가 있는 것이고 그만큼 자성의 목소리와 노력이 보태져 수필이론도 더 다양하게 정립되리라 믿습니다. 질적 저하를 우려하여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제한하기 보다 군계일학이라는 말도 있는데 다양하게 어우러지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나가지요. 자식도 많으면 잘난 자식도 있고 인격파탄자도 있듯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먼저이지만 독자의 마음을 얻는 일은 사랑과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작가가 되는 시대, 작가적 기량이 조금 부족해도 덕으로 품어주면서 같이 가야겠지요. 그런 이유로 한국수필가협회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늘 긍정적인 사고로 건강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감사드립니다.
가운데 송원희 수필가 ,오른쪽 이상보 수필가
한실 이상보수필가
전남 장성출생.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학비 건립동호회 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회;원 . 한국기독교 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장로문인회 .서대문문인협회 고문.
수필집 《사색의 편린》 《초원의 백마》《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떠나기 연습》등 다수
이론서 《17세기 가사전집 》등
역사기행 《인도차이나기행 》민속원 등 다수
1964년부터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인도 ,서유럽, 남미 등 여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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