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전주 고하문학관 최승볌 교수 문파문학 2013년 여름호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ㅇ

권남희 후정 2013. 7. 6. 16:16

문파문학 2013년 여름호

 

 

고향지킴이로 현대시조 개척자로 생애 한가운데 선 전주의 최승범 시조시인. 수필가

 

최승범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전주 고하문학관은 수 만권의 책과 (이미 여러 차례 대학도서관에 도서기증을 햇음) 귀중한 문학자료가 있고 최명희 문학관과 경기전, 한옥마을이 이웃하여 전주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일석삼조의 행운을 누리는 일이라 짐작한다.

최승범 시조시인. 수필가

대담 :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일시: 2013년 6월 12 일

장소 : 전주 고하문학관

 

고하문학관은 최승범 선생에게나 이곳을 찾는 방문객, 문하생, 문학공부를 하기위해 찾는 모든 이들에게 복된 공간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장소’와 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생명을 잃은 ‘비장소’가 존재하는데 선생의 문학관이야말로 생명력을 갖고 아우라를 풍기며 ‘장소’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 경이롭다.

최승범 시조시인을 말한다면 , 늘 따라다니는 두 가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신석정 시인의 사위라는 진실,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수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문단말석의 후배로서 그 태산같은 문학적 배경이 부럽기만 하다. ‘가람’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니 선생은 수제자라기보다 친부모처럼 모셨는데 또 그만큼 사랑을 주시고 아껴주셨다는 의미로 보아달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이병기 선생이야말로 해방 후부터 서울에서 중고등학교에 있다가 대학에 계셨는데 제자가 오죽이나 많았겠느냐며 행복한 일은, 이병기선생 말년 18년을 전주에 거주하였다는 일이다. 우거지가 교동 58번지였는데 일요일마다 선생님에게 갔고 그 때 蘭 분갈이하는 것, 살아가는 이야기, 말씀을 들었던 것 등이 학교에서 공부한 것보다 더 큰 배움으로 남았다고 회고한다.

서정 시인으로 전주에서뿐 아니라 전국에서 유명했던 신석정 시인의 장녀( 一林)와 결혼한 일은 당시 전주에서는 스타 못지않은 인기와 관심도 누렸을 것 같다. 그러한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선생은 늘 겸손하다.

문학관 1층 선생의 집필실은 자료도 많지만 선생이 평생 동안 주고받은 육필편지파일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서가에 꽃혀있다. 등단하던 청년시절부터 선배문인인 박목월, 김동리, 안수길, 허영자 시인 등과 내왕한 편지들이 천통이 넘는다. 육필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이니 얼마나 귀한 자료인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동안 그 시간 속을 응시할 뿐이다.

몇 년전 건강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고하문학관에 여전히 나가면서 수업도 하시는 줄 알고 있기에 근황을 부탁드렸다.

다시 문학 강좌도 시작했는데 문학사의 현장이라 설명한다. 격 주간으로 화요일 2-7時 까지 주로 수필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있다니 말씀대로 수필문학사에 남을 현장이다. 서로는 한 두 해 쌓은 인연이 아니기에 선생의 수필 ‘난연기’를 보는 듯한 인연들이라 한다. 문학 안에서 맺은 인연 또한 얼마나 소중하냐며 선생과 제자가 따로 없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일 수 밖에 없다 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매체들이 많은 부분에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지리적으로 작가가 뿌리를 내리는 지역은 무시할 수 없기에 우문인줄 알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중앙문단을 보는 느낌을 여쭈었다.

선생이 오히려 중앙과 지방 문단을 따로 챙길 것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인터넷 세상인데 어디서나 누구나 끊임없이 발신하고 수신하는 통로가 있어 초월적인 존재일 뿐이고 세계인들이 능력껏 소통하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 여긴다.

문학활동도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태동하고 자라며 청년기를 거쳐 완성을 해나가는 과정 중에도 특히 청년기 문학활동을 같이했던 문우들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말씀은 문학사적으로 기대해본다.

그들을 생각하면 온통 그리움 뿐이라 가슴이 먹먹하고 앞서 간 문우들,신동한, 박경수, 김용호... 님들이 그립고 세속을 초월한 풍류정신으로 어울렸던 동갑내기작가들의 우정 또한 그립다하신다. 시조시인으로 박병순이 중심이 되어 최진영, 이기반시인 여성작가는 고임순수필가. 문정숙 김제작가들과 ‘새벽’동인지(후에 신조로 바뀜)도 만들고 했는데 당시를 떠올리면 문학 안에서 화려했던 청춘이이었다. 이제 선생은 예전 차 한잔 나누면서 담소를 주고받았던 정을 상상할 뿐이다.

전주를 예전부터 예향이라 하는데 최근 세대교체가 되면서 많이 변화된 느낌이 든다, 부산이나 대구나 춘천 어디든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단체를 보면서 그들만의 자부심을 읽게 된다. 그렇지 않을까?

모두 자기 고향들 자랑이고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문화콘텐츠 만들어 관광부가가치를 높이느라 애를 쓰는데 전주만 예향이라고 따로 자랑 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평가를 내린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인데다 유동인구가 엄청나고 지방마다 전통있고 특색있는 자료를 발굴하는 세상인데 나름 모두 가치있는 일이라고 판단한다며 선생은 우화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곱씹을수록 의미가 있다.

“옛노인들이 한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료보다 터잡고 사는 지방수령이 세고 그보다 아전들 세력이 더하고 아전보다 그 아래 서리들이 더높고 기생들이 서리보다 센데 그보다 높은 것은 음악이라 하더라. 하지만 음악보다 음식이니라, 그 네 가지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생은 전북문학을 꾸준히 발간하여 발송하고 계신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사실 문학지 발간은 발행인의 출혈이 따르는 일이라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는데 한순간에 맥없이 풀리고 만다.

〈전북문학〉창간은 1969년 7월 창간하여 2013년 6월 현재 263호 발행했는데 참여회원의 의지에 힘을 얻고 상호간의 협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오로지 서로 돕는 일속에 가능하다 한다.

선생은 1958년 김동리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수필도 쓰고 계시는 데 문학론을 간략하게 부탁드렸는데 짧은 시간 무리였을까? 의외로 간단한 답을 던지신다. 아무래도 책을 사서 읽어야 할 것 같다.

대학 강단에서 40년 넘게 ‘수필론’‘시조론’을 강의했고, 최초로 펴낸 《수필ABC, 수필문학 개제》《한국수필 문학연구》등 이론서도 많으니 당연히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이다.

K-Pop이나 패션산업, 스포츠 등 다른 분야는 활발하게 한류바람이 일고 있다. 문학의 한류는 어떻게 전망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선생의 지혜를 구했다.

마음만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내세우고 싶은데 젊은 층이 알겠느냐며 예전 蘭에 빠졌던 일을 들려주신다. 지인의 집에 설중매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어 번 찾아가 난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일, 언젠가 아침식사 도중 벙긋 벌어 웃고 있는 난 앞에서 그야말로 밥한 숟갈 넣고 꽃을 바라보고 또 한 숟갈 넣고 꽃을 보느라 찬이 없음도 탓하지 않았던 그런 사라진 낭만을 말한다. 바람을 안타고 우리의 가락, 풍류를 지킬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시니 선생의 순수한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꿈꾼다.

최슴범 선생을 대하면 ‘터를 잡고 사는 일’과 ‘감칠맛’이 떠오른다. 모든 이에게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자상하게 대할 수 있는 선생에게서 터줏대감만이 할 수 있는 느긋함을 느끼고 생각이나 말씀이 지나치지 않으며 그러나 항상 깊은 생각 끝에 한마디 던지는 그 센스는 감칠맛을 더한다.

 

늙은 감나무 쳐다보며 /지어미가 이르는 말/- 야속도 하지 /단 두 개 홍시라니. /뒷짐 진/지아빈 하늘 바라다/- 나무 위해 뭘 했는데.

*최승범 시조시인의 단수 『홍시』 全文

 

최승범[ 崔勝範 ]

 

고서를 설명하는 최승범 교수

 

고하문학관 안에 있는 최승범교수 책상

1931년 남원 출생. 1958년<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정운시조문학상∙한국현대시인상∙한국문학상∙목정문학상∙민족문화상∙가람시조문학상∙한국시조대상 수상. 현재 고하문학관 관장,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시집『난 앞에서』『천지에서』『자연의 독백』등 다수와 『한국수필문학연구』『한국을 대표하는 빛깔』『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남원의 향기』『한국의 소리』『3분 읽고 2분 생각하고』등 다수의 수필집.

전화 : 063-252-5104 010-6600-2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