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필집

김은순 수필가 < 산타의 뒷모습> 문학관

권남희 후정 2013. 12. 10. 13:33

 

유쾌한 담론 그리고 라깡의 여성주의로 풀어나간 김은순 수필집 『산타의 뒷모습』

 

권남희 수필가(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전기적 고찰로 읽는 김은순 수필가의 다양한 캐릭터

진정한 시는 항상 개인적 감정의 직선적 토로이다.- 로널드 S .크레인 (1680- 1800)

문학은 여러 형태에서 출발한다. 영국문학비평가 사무엘 존슨에 의하면 장 폴사르트르와 알베르 까뮈는 실존주의를 이해할 때만 유익을 얻을 수 있고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는 근본적으로 은밀한 죄, 레미제라블과 톨스토이의 구원사상을,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오는 밤 숲가에 서서」는 의무와 책임이 미와 쾌락에 우선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처럼 문학의 역할은 도덕적 우월성이나 공리성을 추구하다가 인간의 영혼을 말하는 등 다양하기에 다각적인 방법으로 작가의 글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학은 작가가 속한 시대의 집단적 사고와 살아왔던 가정.사회, 교육의 배경에서 읽고 해석하는 게 옳다.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는 사회 분위기와 한 인간의 영혼에 미친 영향을 깨닫게 하는 가족관계, 교육, 친구 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은순 수필가의 기본 바탕은 엘리트 정신이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뚜렷한 교육관 그 영향으로 언제나 가정교육이나 인성교육이 먼저였다.

작가는 할머니와 부모님, 두 살 위 삼촌, 그리고 4명의 동생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는데 부유한 계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명동에서 병원을 운영하였고 5남매의 맏이인 작가는 딸인데도 모든 면에서 장남처럼 대접받고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나이차가 많은 동생들 때문에 항상 모범적으로 행동해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동생으로 두 살 많은 삼촌이 같이 살게 되어 친구처럼 지내면서 동심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던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여러가지 추억을 쌓은 일은 문학적인 측면에서 큰 선물이다. 아버지는 엄했지만 큰 사랑을 주셨고 자라면서 때로는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집안일을 의논하는 대상이 되었으니 작가의 자부심은 남달랐으리라 추측한다. 그의 작품 <빛나는 숟가락>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나를 보여주고 있다. <산타의 뒷모습>도 아버지의 깊고도 그 무한한 사랑을 끝까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작가의 심경을 담아 그 시절 흔치않았던, 영화의 한 장면같은 단란한 가족 사랑을 그리고 있다.

 

대가족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어린 소녀는 잘 닦인 수저가 밥상에 놓이는 희열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밥상에 놓이는 숟가락은 저마다 달랐다. 은숟가락, 놋숟가락 등 자신이 챙기거나 누군가 갖

춰 주지 않으면 숟가락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마련이었다. -중략-누구 것이 더 반짝이냐에 관심을 갖고 경쟁을 하던 형제도 뿔뿔이 흩어져 자기만의숟가락을 챙기고 사니 내 은수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리만무하다. 숟가락이건, 인생이건 빛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 것은 지금도 제일 예쁘고 반짝거려야 한다. -<빛나는 숟가락>중에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이면 아버지는 막냇삼촌과 내게, 산타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적어 놓으라고 했다.“착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꼭 적어야 한다. 그리고 적은 쪽

지는 반드시 양말 속에 넣어 머리맡에 놓고 자거라.”그래야만 산타 할아버지가 알아보고 우리들이 갖고 싶은 선물을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막냇삼촌과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음속에 바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많이 하려 애를 썼다.-중략- 겨울이 올 때마다 착한 일을 열심히 해야 했기에, 믿음에 대한 답례로 받을 수 있던 산타의 선물은 내가 그를 사랑한 이유였다. 이미 모든 것이 충분하였음에도 그때의 나는 왜 산타가 아버지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때로 세상에는, 진실보다 믿음을 통해 지켜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난 산타의 선물을 잃은 뒤에 알았다. 그리고 내가 본 산타의 뒷모습은 동심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의 자책감이었을 것임을 믿는다. -중략- 습관처럼 기다리곤 했던 산타의 선물을 기억하며 아직도 난 겨울이 되면 무엇인가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산타의 뒷모습>중에서-

 

유쾌한 담론을 융 심리학 원형으로 투사하여 읽는 남성성

 

인간의 정신은 양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적 자아의 특성을 반영하는 반대편 성의 구성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동전처럼 한쪽으로는 완전 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 없는 기질을 누구나 동경하고 다른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동성보다 이성일 때 훨씬 강력하게 자신을 끌어당기게 된다. 문학작품에서 예를 들자면 단테의 베아트리체, 트로이의 헬렌이 특별한 힘을 부여받아 애니마의 체현으로 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 속담에 “모든 남자는 그의 안에 자신의 이브를 지니고 있다.” 고 했다.

인간 각자 안에 대립되어있는 성의 심리학적 특징이 대개는 무의식적이고, 꿈에서나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투사되어 나타나지만 심리적 성숙을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과 화합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융통성을 지녀야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의인화가 가능하다면 김은순 작가의 무의식에는 남성성인 삼촌이 살아있다. 작가와 삼촌의 관계는 동전과 같다. 어렸을 때 둘은 없어서는 안 되는 절친이었으면서 상황은 신분이 다른 무엇처럼 모두 반대적인 요소들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엄한 교육과 딸의 복종적인 관계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해야했던 그의 회귀 본능에는 어린 시절 삼촌과 친구처럼 지내며 놀던 골목과 대가족이 살던 단독주택의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받으며 공부도 잘 했던 자신에 비해 삼촌은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버지도 계시지 않으니 형을 아버지처럼 의지해야하는 어정쩡함. 공부에 뜻을 둘 수 없는 불안감 등이 뒤엉켜 언제나 결핍감속에 비교당하는 불리한 처지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삼촌에게도 김은순 수필가는 애니마의 체현이었다. 서로 죽이 잘맞았던 그 어린 시절만큼은 자아가 뚜렷하게 살아나 유쾌해지는 것이다. 김은순 작가의 정신 안에 투사되는 남성의 애니머스는 어린 시절의 삼촌 , 청년의 반항아적인 삼촌이기 때문이다.

김은순 수필가의 개성화된 애니머스는 삼촌으로 삶의 원형에서 언제나 적의없이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에게는 두 살 위 삼촌이 있다. 아침에 눈뜨면 보고, 잘 때 같이 잠들었으며, 자라서 학교 다닐 때도 같이 다니는 등 하루 종일을 붙어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삼촌과 싸우기도 많이 했고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중략- 그렇게 말썽을 피우고 소란스러웠던 삼촌의 소식을 다시 들었던 어느 날엔, 삼촌은 이미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고 없었다. 식구누구도 삼촌이 떠나는 광경을 보지 못한 채, 삼촌은 자신의 청춘을 젊은 날의 객기와 무모함에 내던지며 사라져 갔다.

어린 시절 나는 삼촌과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함께 있을 줄만 알았다. 내 동무이며 커서까지도 내 주위를 맴돌았던 정 많은 나의 가족, 삼촌. 그를 생각할 때면 아직도 내 마음속엔 항상 짓궂은 얼

굴로 나에게 웃음 짓던 소년의 얼굴이, 용돈을 줄 때마다 “갚을게, 삼촌이잖아” 하며 멋쩍게 웃음 짓던 청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제까지나 그는 내게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다.-<나의 친구 삼촌>중에서-

 

골목에서 나는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주로 두 살 위인 막냇삼촌과 그 친구들이었는데 자치기나 땅따먹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딱지치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많은 아이들이 어울려 놀기는 딱지치기만큼 신나는 게 없었다-중략-딱지를 다 잃어서 더 이상 놀 수 없을 때 자신의 딱지를 빌려 주거나 그냥 돌려주는 선심을 쓰고 친구들과 싸우다가도 금세 화해하는 삼촌을 보며 아이들과의 어울림이나 놀이에도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삼촌이 살아 있다면 나는 아직도 “그렇게 손해만 보지 말고 챙길 것은 챙겨가면서 살라” 쫑알대며 참견했을까. 삼촌은 자신의 삶도, 딱지를 전부 잃었던 그날처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풍운의 삶을 떠나갔다. -<딱지치기 >중에서-

 

라깡의 여성주의 접근

 

여성주의 문학은, 일레인 쇼왈터( 미국 여성주의 비평가)에 따르면 세 가지 역사적 단계를 거쳐왔다, 여성다움의 단계(1840-1880 지배적인 전통을 모방), 여성주의자 단계( 1880-1920 여성소수집단의 권리를 옹호하고 항의), 여성의 단계( 1920이후 대립에 의한 의존 이 여성의 작품과 여성의 재발견에 의해 대치되고 있음 )이다.

여성주의 문학에 버지니어 울프, 레베카 웨스트, 샬롯 퍼킨스같은 여성작가들이 기여한 것도 크지만 현대 여성운동이 시작한 이후 시몬느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던과 함께 발전해왔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현대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의 ‘내면적 식민화’-밀렛의 《성의 정치》를 느끼고 겪는다.  

특히 대가족구조나 가부장적 구조는 인간의 보편적인 원형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김은순 작가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시기에 혼란을 겪게 된다.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좋은 교육을 지원받고 복종적인 여성성보다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하지만 어머니를 대하는 할머니나 아버지의 기준은 다르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시선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원형적인 여성의 한 전형인 착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삶을 보면서 시대의 그림자를 느낀다. 남성주의에 저항하는 독자처럼 작가는 어머니가 받는 차별적인 일이 왜곡되고 부당하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사랑을 듬뿍주는 할머니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원형의 전형인 무섭고 냉정한 시어머니인 상황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 졸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어머니 인생을 위한 구원자를 자처하며 보살피려 힘을 쏟게 된다.

포르이트의 수정론자 라깡에 의하면 인간은 에디푸스적 위기를( 어린이가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타아, 말과 행동을 포함해서 구별되는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는데 ‘아버지의 법’ 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로의 진입을 통해 남성중심의 우주로 편입되는 시기) 겪게 되는데 작가 또한 아버지의 세계에 어쩔 수 없이 수용되는 시간을 만난다.

어머니가 살아가는 축소되고 왜곡된 여성의 영역,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받아들여야하는 여성의 세계에서 완전한 독립체로 정체성을 확립하기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래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여성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의식세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평소에 할머니에게 꾸중을 자주 들었다. 보다 못한 내가 할머니 앞에서 엄마 편을 들면 할머니는 자식이라고 제 어미 편을 든다며 이내 웃고 나무라는 것을 그만두었다. 엄마는 성격이 낙천적이었다. 그것 때문에 매사에 깔끔하지 못한 엄마는 더 미움을 샀다-중략-

어린 내 생각에도 엄마는 무척 가엾어 보였다. 일하는 언니가 있었는데도 내가 본 엄마는 좀처럼 부엌에서 나오질 못했다. -중략-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건만 가엾은 엄마가 할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걱정하면서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마음이 곱고 착한 엄마는 할머니에게 감히 말대꾸 한번 못 하였다.-중략-스스로 찾지 못한 엄마의 행복을 바라보며, 엄마의 꿈을 앗아가 버린 지나간 세월이 새삼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엄마의 행복>중에서

 

전숙희 ,그는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프랑시스 킹으로부터 “국보적 존재. 범상치 않은여성이다” 라고 극찬을 받은 바 있다. 평생을 글쓰기에 매진하고 유망한 후배를 양성하는 중에도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한 전숙희 작가의 공간을 거닐면서, 그가 여류 수필가로서 오늘날 남긴 자취가 볼수록 꾸준하고도 거대하다는 인상-중략-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일상의 소소함을 주로 묘사했음에도 그는 단지 자신이 한 사람의 작가로 보여지는 것뿐 아니라 사회와의 끈끈한 유대를 통해 좀 더 대외적이고 개방된 형태의 작가들 간 교류에 이바지하는 활동가로 표출되기를 원하였다.

-<꿈 있는 작가 전숙희 문학 세계로의 여행>- 중에서

 

첫 수필집을 출간하면서 비로소 김은순 수필가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직면하고 있다. 어린 날 할머니로부터 보호를 하고싶어 마음 졸였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행복을 선물하며 부족함이 없이 살아왔던 시간들을 재정리해보았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꿈을 키우는 작가로 거듭나리라 믿는다. 작가로 재탄생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독자에게도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

첫수필집 상재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