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한국수필 2016년 1월호

권남희 후정 2016. 1. 2. 20:08

 

                               한국수필 2016년 1월호 발행인 지연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권남희 편집주간  정기구독 02-532-8702

한국수필 지난 호 작품 합평

필합평은 평을 받는 작가도 공감대가 생기지만 타산지석처럼 평을 해야하는 평자에게 더 공부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대표 지성 장그르니에는 <이방인><페스트>의 작가 알베르카뮈의 스승입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200여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르니에는 자신의 에세이집<섬>서문을 카뮈가 써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경계를 넘는, 두 사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던 문학적 우정이었습니다.

합평위원

류인혜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박성숙 (한국문협평생교육원 월요수필회장)

김성숙 (미래수필문학회 회장)

진행 권남희 편집주간

권남희: 정태원 〈산새이야기〉는 생명사랑을 다루어 경각심을 주고 있다. 흔하면서 늘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새로운 표현양식을 찾는다면 ?

류인혜: 정태원의〈산새이야기〉에서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는다면 저자의 생각을 보충하는 다른 화자들의 역할이 대화체의 양상으로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점입니다. 지문이 많은 설명체보다 훨씬 생동감있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박한 내용이지만 미세한 흔들림의 파장이 점점 커지는 감동으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수필을 읽고 난 후 그 내용들이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속의 작은 꼬투리가 확장되어 다시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수필은 작가가 어느 날 비닐하우스에 둔 모자 속에서 작은 산새의 알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새가 알을 품기 시작하자 태교음악까지 틀어주면서 관심을 갖지만 어느 날 실수로 새끼 네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립니다. 그 새끼 새들에 대한 궁금함이 수필의 중심점이 됩니다. 작가의 아들에 대한 교감처럼 산새 가족도 이산이 되었지만 어느 곳에 있던지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들이 떠날 때, 다섯 마리의 새끼가 어미새들과 함께 산속으로 날아갔다는 말을 듣게 되자 작가는 안심을 하게 되고 수필을 읽는 독자도 더불어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산새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산새의 생태를 경험함으로 종족보존본능이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간의 본능적 교감을 말하고 있어 따뜻한 수필이 되었습니다.

박성숙 : 정태원의 <산새 이야기>를 읽으며 미소를 머금는다. 정이 넘치는,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하는 글이다. 새가 밀짚모자 사이 그 좁은 공간에 둥지를 틀고 그곳에 알을 낳았다니 재미있다. 시골 우리 집에서도 신발장에 넣어둔 내 털신에 할미새가 새끼를 낳아 기르던 때가 있었다. 그 신발장이 대청마루에 붙어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사람이 있으면 절대 어미가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불안한 몸짓으로 찍찍거리며 빨랫줄과 마당을 오르내리기만 하니 그때마다 온 가족을 방으로 몰아넣으며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뒤로 돌아가 뒷문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모이를 입에 물고 새끼가 있는 둥지에 접근을 못해 안달하는 어미에 대한 배려였다. 더 늦기 전에 집안을 정리해놓고 서울로 가야하는 나는 새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려니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저 새끼들이 언제 자라서 날아갈까 그 날만을 기다렸다. 그 때의 내 마음과 비교가 되는 글이라 새삼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비닐하우스 입구에 금줄을 치고 태교음악으로 모차르트곡을 틀어주며 기뻐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를 감동으로 몰아간다. 그는 정신 감응능력이 초능력수준이라고도 말한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을 한국에서 느낀다든지 멀리서도 무슨 변고가 생기면 바로 그 텔레파시가 작동하여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해진다니 매우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신이 지켜주고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밀짚모자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다섯 마리가 어미와 아비를 따라 숲속으로 날아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작가는 가슴에 두 손을 모았다는 표현 역시 큰 감동을 주는 대목이다. 우연히 날아 들어온 산새에 마음조리고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상황을 정감 있게 서술하였다. 다만 새의 이야기에서 자기의 초능력이야기로 비화한 것은 좀 어떨까한다.

김성숙 :정태원 작가의 ‘산새이야기’를 읽고 가슴 따스한 동화 같은 이야기란 감상에 젖었습니다. 작은 밀짚모자속의 산 새알 다섯 개, 그 산새 다섯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리며 태교 음악을 트는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져와서 미소 짓고 말았어요.

다섯 알이 모두 부화 되었다는 소식은 반갑고도 기쁜 소식 이었답니다.

새들이 잘 자랐나 보기 위해서 들쳐본 순간 새끼 새 4마리가 사라지는 일은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만드는 사건이었어요. 찾지 못했던 아기 새들이 어미 새를 따라서 산으로 날아갔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었답니다. 없어진 새들을 걱정 하는 작가에게 부모 자식 간에는 숙명적인 끌림으로 서로를 끌어들이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보이지 않아도 찾을 수 있는 끌림이 있다는 말로 위로 하는 내용은 많은 공감을 가게 했어요.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은 아들과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부분에서 좀 더 자세하게 감정의 사소한 것들도 느낄 수 있게 썼다면 좀 더 감동이 더 잘 전달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네요. 동화적인 소재를 동화적인 표현 방법이나 의인화법이나 소설적인 표현 방법으로 표현 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은 산새의 부모노릇을 훔쳐보면서 부모의 사랑이란 사람이나 짐승이나 대단하고 숭고 하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어요.

 

권남: 은종일 〈상동은행나무〉는 나무의 의인화법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필인데 정서의 교감이나 표현력의 거리감등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류인: 은종일의〈상동은행나무〉에서는 오백여 년 사람들과 함께 ‘묵새기고’ 살아온 은행나무가 등장을 합니다. 세조가 죽은 해에 태어난 ‘발밑에 물을 뿌려주는 사람에게는 불끈불끈 힘이 생긴다.’는 전설의 주인공 은행나무가 대구시의 지정보호수로 대접을 받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편안히 지내던 시절은 잠시로 지나가 버렸고 은행나무가 서 있던 지역의 개발에 무참히 팔다리(가지와 뿌리)가 잘려 두 번이나 옮겨지는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옮겨지는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무는 굳건히 서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수필에서는 흔히 쓰지 않은 단어와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겨끔내기로 모여들어 나누는 객쩍은 이야기에서, 때론 담뱃대를 바닥 돌에 두드리며 가래려는 시시비비에서 세상사를 읽었다. 구순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환에서부터 당파싸움에 이골이 난 조정의 난맥상, 게다가 나라의 변고와 전란의 참상들까지 앉은뱅이 용쓰듯 그렇게 마음을 졸이면서였다. 울가망하게 지내온 세월이 그저 아슴아슴하기만 하다.”

이런 문장들은 작가가 노거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오래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느낌보다는 생경한 단어가 호기심을 주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직접 살아보지 못하던 시대를 거쳐 왔던 노거수 은행나무의 특별한 경험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와 사람의 각각의 입장에 거리감이 있듯이 의인화된 나무가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것이 질문하는 정서적 교감이나 표현력의 거리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성: 은종일의 <상동 은행나무>는 의인화 수필이다. 수령이 수백 년이 되는 노거수는 우리나라 어느 지방 할 것 없이 신목 이라 하여 신성시되어왔다. 나무에 외로 꼰 새끼줄을 동여매고 알록달록한 여러 색깔의 천을 꿰어놓는다. 마을에 무슨 병고가 생기거나 액운이 닥칠 때면 마을 아낙들이 새벽 일찍이 이 나무에 와서 합장하고 두 손 비비며 끊임없이 절을 한다. 매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속신앙인 토테미즘이다. 고목나무는 특히 신성시되어 나무에 상처를 내거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는 행위는 금기시 되어왔다. 단오 날이면 여인들이 줄을 매어 그네를 타기도 하고, 여름에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이 나무 밑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다.

“오래된 거목은 옮겨 심을 수 없다.”라고 전해내려 왔는데 이 작품에는 고목의 나무를 어쩔 수 없어 세 번이나 옮겨 심었다 했다. 단 한 번도 옮겨 심을 수 없다는 고목을 몇 번이고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잘라가며 옮겼는데도 살아있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수령이 오백여년이 되었다면 더 많은 사연과 사건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마을의 얽힌 이야기와 사건, 에피소드 같은 것을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몸체는 죽어 화석처럼 굳었다고 서술한 것을 보면 이 거목은 분명 그 수를 다했다는 뜻일 게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용문사에는 지금도 천년이 넘는 노거수인 은행나무가 건강한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상동나무역시 옮겨 심지만 않았어도 지금껏 싱싱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인다.

나무의 의인 화법으로 엮어나가는 은종일작가의 이 수필은 표현력 있고 정서의 교감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김성:은종일 작가의‘상동 은행나무’는 대구 범어네거리에 있는 550년 된 은행나무 이야기입니다. 500년 동안 은행나무마을에서 편안히 살던 은행나무는 정화여자 중학교 뜰로 옮겨졌고, 학교가 도심 밖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범어 네거리로 이주해서 살게 되었군요. 은행나무가 자신의 혼란스러움과 500년 동안 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인화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는 수필입니다. 범어 네거리로 옮겨 졌을 때의 혼란스러움과 비참함이 잘 표현 되어 있네요. 500년 동안 민초들의 삶과 당파 싸움에 이골이 난 조정의 난맥상, 나라의 변고와 전란의 참상들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은행나무 이야기.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나 에피소드가 없어서 가슴에 확 와 닿지가 않아서 아쉬웠어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줄이다 보니 단어의 나열에 그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550년 된 할아버지 은행나무가 들려주려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독자로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은행나무가 자기소개를 전체적으로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의인화 법으로 표현한 재미있는 수필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수필을 읽고 550년 된 은행나무가 범어 네거리에서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보제공면에서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권남: 신용철의 〈한글문학의 감회〉는 역사서에 대한 다큐성격의 독후감이다. 작가가 나만이 아는 배경에서 느끼는 감동과 독자가 읽어서 느끼는 감동은 분명 차이가 있다. 교훈적인 글쓰기의 작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류인:신용철의〈한글문학의 감회〉는 우리가 역사와 한글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가란 생각을 일으켜주는 수필입니다. 잘 아는 것으로 여겨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사실에 대해서 걷다가 되돌아와서 살피게 되는 상황처럼 다가오고 있습니다. 작가는 징검다리를 다지면서 건너듯이 일어난 사건을 다져가면서 한글과 역사와 문학을 함께 접하게 되는 일, 즉 세 마리의 토끼를 잡게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들어 준다면 작가는 좋은 상황에 처한 행운을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인생의 길을 찾는 데 영향을 준 책이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보물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목도 저자도 모르고 읽었던 책,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책을 다시 찾게 되는 대목은 독자에게 흥미를 떠나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책을 청계천의 고서점에서 발견하고 그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조선사화집』과의 인연은 작가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읽은「만파식적」에 관련된 고유섭의 수필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이 수필을 처음 읽을 때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이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한번 더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번 읽고 난 후에는 표현하는 문장에 적응이 되어선지 작가의 생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문학적인 수필을 읽을 때는 꼼꼼히 살피며 작가의 의도에 정확하게 다가서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성: 신용철의 < 한글문학의 감회>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이후 학교에서 배운 최초의 공적 한글수업이었다고 자부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작가가 어릴 때 해방을 맞아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글 첫걸음」이란 교과서로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해방직후에는 나라가 안정되지 않아 극도로 혼란하여 어려운 때라 이때에 학생들이 대하는 교과서, 공책 등은 그야말로 시커먼 마분지에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이미 「조선사화집」이란 책을 읽었다고 하니 역사에 대해서 엄청 앞서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육이오전란 때 이 책을 잃었다가 오랜만에 고서점에서 발견했다며 기쁨을 감출지 못한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표지가 없어 무슨 책이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책을 찾은 뒤에 알게 된 것이다. 그 책은 바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서 뽑아 번역한 이은상 저 「조선사화집」이었다. 춘원 이광수도 훌륭한 책이라고 극찬한 것을 보면 역사에 남을만한 책이었다는 것이 짐작된다. 「만파식적」은 신라시대의 전설상의 피리를 말한다. 삼국유사에 문무왕이 죽어서 된 해룡과 김유신이 죽어서 된 천신이 합심하여 용을 태워 보낸 피리라고 하는데 이것을 불면 온갖 소원이 이루어진다하여 그 시대에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한글문학의 감회는 크게 조선사화집과 만파식적 두 가지에 대해서 서술한 글이다. 무난하게 써나갔지만 「한글문학의 감회」라는 글 제목과 실제내용과는 거리감이 있지 않나 여겨진다. 좀더 「한글문학」이란 주제에 접근하여 서술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평탄하게 기술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김성: 신용철 작가의 ‘한글 문학의 감회’를 읽고 해방과 함께 시작된 한글교육의 감동이 전달되어 함께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 글, 우리나라라는 것,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와 감동을 함께 느꼈습니다. 한글로 된 변변한 책들을 접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연히 접한 한글로된 이야기책, 의미도 모르는 체 읽었던 기억들, 그러기에 대학시절 우연히 고서점에서 발견된 ‘조선 시화집’은 작가에게는 너무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작가의 여러 가지 배경에 의해 특별해진 책을 독자들에게 많이 알리고 말해 주고 싶은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책에 대한 저명한 분들의 의견들을 나열하면서 더 강조 하고자 한 부분을 충분히 납득하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책 내용과 동떨어진 사람들의 소개가 오히려 내용의 통일 면에서 혼란을 주었고 작가의 감동과 특별함을 독자에게 억지로 인식 시키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감동이 충분히 이해되어지면서도 함께 감동 하는 것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조선사회집’에 대한 특별한 경험과 감동을 이야기하고,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하면서 독자가 작가의 감동을 공감하고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할 수 있는 글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요? 독자에게 감동과 정보를 함께 주는 수필을 쓰는 것은 어려운 숙제일 것입니다. 감동과 공감은 각자의 바탕지식을 토대로 감성으로 풀어야 나온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 해 봅니다.

권남: 세분 모두 합평에 부담을 갖고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작가도 ,강약을 타면서 때로 과감한 작품평도 원하지 않을까요? 합평에 오른 수필에 무조건적으로 경외를 표현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이들 작품에서 작법이나 소재선정, 그것의 주제형상화를 어떻게 전개했나, 독창적사고는 무엇인가 등 수필인이라면 공통으로 고심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의견을 나누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촌철살인의 평이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3개월동안 합평을 맡아주실 류인혜. 박성숙 .김성숙 님에게 부탁의 인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