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편지는 문학이다
권남희 정리
반 고흐 ,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고흐 지음 -
예담출판사
빈센트 반고흐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브라반트 지방에 잇는 작은 마을 구루우트 쑨 데르트에서 출생. 아버지 데오도뤼스는 목사, 어머니 안나코르네리아는 궁중 奘幀師의딸이다. 고흐는 먼 家系로부터 면면히 장인과 목사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17세기 이래 성직과 예술가의 가계로 유명했다고 한다.소년 시절 고흐는 거의 아버지의 개인적인 교육에 의해 성장했다. 니이체나 키에르케고오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의한 교육은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고흐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화가로서의 고흐를 생각할 경우 네덜란드적인 특질에 대해 유의해야 할 것이다.
브레다 근방,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구루우트 쑨데르트는 평탄한 토지, 낮은 하늘아래 視界는 매우 단순한 수평선과 수직선에 의해 한정된다 ,이 협소한 시계는 네덜란드 화가들에게 있어서 숙명적인 일종의 테두리였다. 나중에 고흐의 화가로서의 눈을 길러준 것은 이 네덜란드적인 전통일 것이다. ...4살 아래인 동생 테오말고는 흉금을 털어놓지 않던 , 고집이 세고 완고한 소년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 12세부터 17살까지 기숙학교에 다니며 독서와 자연을 벗삼는다. 1869년 고흐의 백부가 경영했던 헤이그의 화상畵商 점원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화상을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귀국한 고흐는 앙그리킨파의 어학교사가 되지만 주로 하는 일은 이스트 엔드의 빈민굴에 사는 생도들의 부모에게서 수업료를 징수하는 일이었다. 톨스토이풍의 인도주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민감성은 고흐를 전도사로 만들게 된다. 나중에 런던의 메소디스트파의 목사 조운즈를 찾아가서 성직에 몸을 바치려했지만, 그리이, 라틴어까지 공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고 1년의 공부기간 에 따른 신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브뤼셀의 단기 전도사 양성과정을 들어간다.
그러나 전도사의 인가를 받지않고 보리나즈의 탄광으로 오막살이집에 기거하면서 설교를 환자를 위문하는 등 헌신적으로 봉사하여 전도사의 6개월 가인가를 받는다 광부들과 함께 비참한 대우에 항의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옷을 벗어주는 등 현실에 뛰어들다가 전도사의 가인가 갱신이 거부되고 고흐는 화가의 길을 걷는다.
“ 회화는 그에게 있어 살기 위한, 그리고 사랑과 동정을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 신을 증명하기 위한 또 하나의 최종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쟌 레이마리 (금성사 현대세계미술 대전집 고갱 고흐편에서 발췌) .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세계미술사의 지울 수 없는 火印 .
37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늘 고독했던 그는 그의 후원자이자 ,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밖에 어머니, 여동생,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