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탄 박종화선생 에피소드-이명희 수필가 25회한국수필문학상 수상작가
권남희수필가 옮김 -2007년 한국수필 7월호에 실렸습니다 (02-532-8702)
2007년 12월 7일 촬영 남산 문학의 집.서울 전시에서 이명희 수필가 (가운데)
부군 故 윤병로 평론가 책상과 (이명희 수필가 )
가던 길 앞에 있네.
이명희 수필가
“어허, 물소리가...봄이로군.”
월탄박종화 선생님은 마당으로 향한 창호지 문을 여셨다. 박종화 선생님의 신관이 환하셨다. 경칩 바람은 아직도 찬데... 아들같이 사랑하는 제자의 신접살림 집에서 첫 아기의 돌잔치 상을 받으시며 그렇게 대견해 하셨다. 선생님은 스승 이상의 사랑으로 부모님 역할을 해 주신 분이다. 문단 데뷔, 취직, 결혼,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문학 보다 생활이 먼저네. 남의 집 귀한 규수를 데려 왔으면 지아비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지."
5.16으로 직장 전환이 불가피해져서 새 일을 놓고 갈등 할 때 주신 선생님의 말씀이다. 남편의 은사이자 문사이신 그 어른의 충고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학교 선생을 하다가 집안 어른이 경영하는 회사로 옮긴 후 경제 사정은 좋아졌다.
어느 날 월탄 선생님은 붓글씨를 한 장 써 주셨다.
“...가던 길 앞에 있네.”
선생님 뜻을 새기며 계속 글도 쓰고 책도 내고 그래서 대학교수가 된 것이다.
우리는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이사하고 월탄 선생님과 조연현 평론가 외 문사 몇 분을 모셨다. 한창 집들이 분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쨍그랑-”, 상에서 접시가 떨어져 깨졌다.
“어허, 좋은 일이 생기겠구먼...”
호탕하게 웃으시며 중국 고사를 얘기해 주셨는데..., 아무튼 의외의 해석으로 선생님은 좌석의 흥을 찾아 주셨다.
“너무 강한 것은 부러지는 법. 엿은 부드러워서 휘어지기는 해도...”
그 날 식탁의 대화는 음식보다 맛있었다.
“명아 엄마, 애썼어요.”
선생님은 늘 세심하셨다. 그 후에도 잡지 화보 촬영 때문에 오셔서 <스승과 제자 가족>, 뭐 그런 타이틀 같은데 사진 구도, 배열, 포즈도 손수 지휘하셨다. 명아를 안고 가운데 앉으셔서 환하게 웃으신 사진이 잡지 <여상>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 아이들 이름도 다 박종화 선생님이 지어 주셨는데 특히 기억나는 것은 막내 이름은 동경에 가셨을 때 작명을 해 주셨다. 대동했던 아빠의 말에 의하면 그 날 아침 선생님은 기분이 아주 좋으셨다고 한다. 이국의 낭만이랄까...
언제나 월탄 선생님의 덕담에는 시가 묻어 있었다. 제자들과 혹은 문사들
모임에서 뵙는 선생님은 늘 유쾌하시고 덕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셨다. 사모님도 함께 모신 야유회 때 찍은 사진이 그때의 즐거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월탄 선생님 댁에 가족 일가 잔치에도 늘 우리 내외를 초대해 주셨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맏손녀 따님이 함을 받는 날도 꼭 함께 오라고 하셨다. 그 큰 대청마루에 떡시루를 놓고 그 위에 청홍 비단 보자기를 덮은 후 삐-꺽, 떠들썩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함지기에게서 함을 정성껏 받아서 시루에 올려놓았다.
600년 전통 서울 양반댁 가풍과 예절을 가까이서 나는 감명 깊게 볼 수 있었다. 온 집안이 은은하여 수선스럽지 않고 품위가 배어 있었다. 어르신 안전에서 갖춰야 할 언성과 몸가짐의 그 덕목이 살아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명절 무렵에 나는 신촌시장에서 도미 한 마리를 사서 들고 갔다. 며느님이 도미를 쟁반에 올려 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월탄 선생님과 사모님은 도미를 보시더니 “ 음... 물이 좋구먼. 살았어.”
나는 부끄러웠지만 사모님이 손수 타주신 따끈한 차 한 잔에 몸이 녹았다.
박종화 선생님 댁은 손님이 가져온 선물은 꼭 쟁반에 받쳐서 어른께 먼저 보여 드리는 풍속이 있다.
월탄 선생님은 문학인이지만 가정적이시고 물정에도 밝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을 존경한다. 삶의 본질을 가르쳐 주신 분이다.
충신동 한옥의 육간 대청, 파초가 있는 마당, 안채, 사랑채가 겹겹한 위풍 있는 서울 양반댁, 그 풍모가 어울리시던 월탄 선생님의 그 시절 모습이 그립다.
약력 : 한국수필등단. 한맥문학 시등단. 서울 YMCA부회장 역임 .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 편집위원. 이사 . 순수문학상. 영매문학상 수상.
저서' 딸이 딸에게' 시집 ' 시가 열리는 거리'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