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파리의 화상 볼라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로 남은 남자

권남희 후정 2007. 7. 13. 18:24

 

 

 

권남희 수필가 정리

세상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로 남은  남자

 앙브루아즈 볼라르( Ambrolse Vollard 1867년경- 1939년) 지음

   파리의 화상 볼라르  -바다출판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도 볼라르만큼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갖지는 못했다.

.... 화가들은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 파블로 피카소 -


화상이자 출판업자이고 작가인 앙브루이즈 볼라르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로 꼽힌다  대부분의 화상과 비평가들이 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새로운 실험들은 인정해주지 않던 시절, 볼라르는 당시 무명의 화가였던 세잔(1895)  피카소(1901) 마티스(1904) 에게 그들의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통찰력과 모험심을 가진 거물급 수집가 반스, 거트루두스타인, 헤브메이어, 모로조프, 등에게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라피트가에 있는 볼라르 갤러리는 파리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회합장소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그의 갤러리 지하 식당에 초대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는 화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말할 기회와 심적인 지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볼라르에게 감사하다” 는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의 말에서 볼라르가 당시 화가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볼라르는 판화 출판업자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나는 판화를 좋아했다. 1895년 무렵 라피트 가에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가장 하고싶었던 것은 화가들의 판화 작품집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라고 볼라르는 고백한다. 그는 이전까지 직업적인 기술자드르이 손에 맡겨졌던 판화를 세잔, 르누아르, 보나르, 피카소, 샤갈 등의 화가들에게 의뢰함으로써 판화가 독립된 예술 장르로 자리잡는데  기여했다.

 한편 그는 그와 가깝게 지내던 르누아르 , 드가, 세잔의 전기를 썼고 화상으로서 자신이 훌륭한 시대의 예술을 돌아보고 기록한 회고집을 남겼다.          

그는 수많은 화가들의 초상화 모델이 되기도 했다.


차례 

볼라르는 어떻게 화상이 되었는가

1. 레위니옹 섬에서 파리까지

2. 1890년 대 파리 화단 ( 몽마르트의 카페들 / 드가와 르누아르 / 값싼 걸작의 시대

  앞서 간 화상들 / 롭스와 필로의사 / 드가의 데생법 )

3. 화상 볼라르와 인상주의 ( 예술연맹 견습시절  / 인상주의는 위험하다 / 갤러리를 열다

  마네의 데생 전시회 / 막시밀리언의 처형 / 마네 부인의 창고에서 나온 작품들

  세잔의 첫 번째 전시회  /  반 고흐 전시회)

4. 그림의 거리, 라피트가 ( 갤러리가 있는 풍경 / 화가들의 일상 / 라피트가 순례

          거래의 법칙  

파리에 가면 볼라르를 만나라

5. 지하 식당의  만찬( 볼라르 지하 식당에서 밤참먹기 / 초대받은 사람들 / 화가들의 대화)

6. 애호가와 수집가 ( 밀랑왕의 절충주의 / 드니 코슈앵이 탐낸 그림들 / 백만장자와의 대면

  애호가들의 실수 / 돈이 되는 그림을 고르는 특별한 방법

7. 거물급 고객들 ( 거드루두스타인 /  설탕왕 헤부메이어 / 유럽을 통째로 옮겨라 /

     독일인의 현대미술 애호  / 러시아 귀족의 취향 ) 



볼라르를 만나면 유명해진다

8. 베네치아의 마네

9. 볼라르가 만난 화가들( 메소니에/ 제르벡스/ 앙리 드 그루 / 모네 / 피사로 / 시슬레 / 기요맹 /     시냐크 막시밀리엥 뤼스 / 고갱 / 드가 / 커셋 / 세잔 / 르누아르/ 베나르/ 포랭 / 르동

   휘슬러 / 나비파/ 마티스와 블라맹크/ 마욜 / 로댕 / 루오/루소 / 피카소

10.볼라르의 초상화

볼라르의 시대와 예술

11. 미술 후원자 볼라르 ( 예술 판화의 시작/ 도자기 그림과 조각 / 앙브루아즈 볼라르 출판사

12. 작가 볼라르( <폴 세잔>  < 르누아르> <드가>

13.미술품의 가치

에필로그  / 옮긴이의 말 / 인명색인   

180쪽부터 185쪽까지

돈이 되는 그림을 고르는 특별한 방법

 가게에서 한참 책에 빠져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가 아무 말도 없기에 나는 독서를 계속했다.

나는 평소 어떤 고객이든 그들을 밖으로 내몰지는 않는다. 그가 가끔 거리를 내다보는 것을 보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물어보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다음 날  그를 다시 보게 도;었을 때 나는 여간 놀란 것이 아니었다. “ 요즘 가장 유명한 화가가 누군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당황해하자 “ 가장 유명한 화가는 슈타인렌입니다. 당신 슈타인렌의 작품을 좀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에게 파스텔화 몇 점을 보여 주었다. 그는 즉석에서 그 그림을 구입했다. 그리고 당장 이렇게 말했다.

 “다른 것도 구해줄 수 있습니까?”

 “오늘 저녁에 다시 오십시오.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후에 나는 슈타인렌의 집에 갔다. 그는 데생이 가득들어있는 상자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전부 샀다. 라피트가로 돌아오는데 가게 문에서 백보쯤 떨어 진 곳에 그 고객이 있었다. 그는 내 앞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 좀 구했습니까?어서 주십시오.”

 그 다음날 그가 또 왓다. 이번에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 나는 대단한 사실을 알아냈어요. 최고의 화가는 슈타인렌이 아니라 모랭이에요. 그의 그림을 하나 봤는데 , 불행히도 그 그림은 팔지 않더군요. 값이 앵그르의 작품과 비슷하게 나가요.당신한테 그 그림이 있습니까?”  “ 몇 점있습니다.”      그는 내가 보여준 그림들을 탐욕스러울정도로 챙겼다. 그리고도 모자란듯이 말했다.

“ 더 있으면 살 수 있을텐데...” “ 구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녁 여섯시 경에 다시 오십시오.”

나는 모랭의 집에 가서 그가 가진 것을 모두 구입했다. 돌아왔을 때 손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갖고 온 상자를 열어보일 겨를도 없이 내가 요구한 값을 치렀다.

며칠 후 나는 모랭의 방문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많은 양이라도 주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아주 빨리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어요. 운곽선을 긋고나서 내가 발명한 일종의 분무기로 데생 위에 물감을 품어요. ” 그는 발명품에 대한 다른 자세한 사항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이디어를 가로챌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얼마 동안  나는 그 손님의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다시 나타난 그는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 분명 모랭은  최고의 화가가 아닙니다. 도대체 누가 최고의 화가입니까?”

“ 최고의 화가란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 명의 훌륭한 화가가 있을 뿐이지요. 세잔, 르누아르, 모네, 드가...” 


그는 내말을 막았다. “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름을 이야기하면 내 머리가 혼란스러워요.”

그는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이어지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 라불레는 곤란한  경우에 주사위에 맡겨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 나는 내 누이에게 카드와 주사위에는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 하지만, 이름을 적어서 모자에 넣고 제비를 뽑으면 이건 카드도 아니고 주사위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내말을 가만히 생각하더니 , 상자 조각에 내가 불러주는 이름을 써 넣었다. 세잔, 르누아르, 드가, 모네, 고갱,  모자 안에서 이 이름들을 잘 섞은 다음 그 증 하나를 집어냈다. 놀랍게도 아무 것도 씌어지지않은 것이 뽑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손님은 무의식 중에  그 조각을 탁자 위에 놓고 ‘반 고흐’라고 썼다.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도 포함시키고싶었던 것이다.    


“ 내면에서 운명이 정한 것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 누이도

  날보고 언제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충고했어요.“

그는 내가 가진 고흐의 가장 큰 작품 몇 점을 골랐다. 그는 제비뽑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세잔의 이름이 나왔다. 서른 점 이상의 작품을 샀다. 헤어지면서 그는 조만간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몇 년 후 파리에 들른 네덜란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 헤이그에 이상한 소문이 난 남자가 있어요, 그는 모든 사람을 피하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심오한 생각을 가졌다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부모들이 그에게 재산을 관라하도록 맡겼는데 그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생활 한다음 , 그림이 가득 든 상자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플로란( 네덜란드화폐)몇냥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는 구입한 그림들을 감정가에게 맡겼습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 옛날 그림들은 단지 그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 현대 그림들은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구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진단에 따라 그 애호가는 정신변원에 감금되었습니다.“

 “ 저런 내가 아는 네덜란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약 10년 후  이 기인이 죽었을 때 그의 부모들은 그림 전부를 서둘러 처분했다. 법에 따라 그가 감금되어있는 동안은 그림에 손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판매 당시 반 고흐의 그림은 3만 프랑이 넘었다. 세잔의 그림들은 관객들을 놀라게 할까봐 한쪽으로   치워 두었다. 이것들을 일반에게 보여줄 수 잇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 최고의 수집가들이 앞다투어 나타났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미친 사람들이 되는 그림을 찾아내는 특별한 감각을 갖고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회사를 만들어 자본을 모으고 생각이 단순한 사람을 뽑아 파리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 그림 사는 일을 맡은 대리인이 그 생각이 단순한 사람과 동행했다. 하지만 그가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시회나 갤러리 또는 화실을 둘러보는 일을 완강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이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