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작품과 평론
미술전시가 주는 삶의 힌트
- 프랑스 국립 퐁피두 센터 국내 첫 특별전에서-
권남희
우연이었다. 점심시간에 덕수궁 근처를 갔다가 시립미술관을 들렀다. 전시 관람은 마음먹지 않으면 시간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에 횡재라도 한 양 흥분을 했다.
‘화가들의 천국’ 주제의 퐁피두 미술전은 연간 600만 명이 찾는다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소장되었던 그림들이다. 처음 마티스 그림 반출을 요구했을 때 센터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퐁피두센터 3층에서 4층에는 6만 점의 그림이 있지만 마티스의 그림을 보기위해 찾는 관람객도 많다고 한다. 그 중 79점이 우리나라 시립미술관에 들어왔다. 2009년 3월까지 전시를 하는데 65세부터는 무료관람이라니 반갑기도 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시내에 약속을 하여 그림전시는 무료로 관람하고 점심을 근처에서 먹고 덕수궁을 산책하면 아름다운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퐁피두센터 특별전은 20세기 현대작가들의 작품으로 ‘낙원의 해석’이라는 공통주제로 ‘황금시대’ ‘풍요’ ‘허무’ 풀밭위의 점시 식사 ‘등 10개의 소주제가 관심을 끌었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색깔로도 현대사진작가 작품과 설치 미술이 있어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도록 젊은 층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있다.
처음 입장하는 입구에 발처럼 갈래갈래 늘어진 바탕에는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림이 프린트 된 발을 들추고 들어서니 양떼가 맞이했다. 설치작품으로 양들은 자기 털을 깎아 만든 양털 옷을 입고 있는 셈이었다. 양떼 앞에서 한참을 서서 생각을 했다. 인간의 삶도 결국 스스로의 몸에서 뽑은 진액으로 자신이라는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피카소의 컷과 샤갈의 염소와 말 등이 그려진 붉은 빛 번지는 그림, 조르주 부라크의 다양한 그림, 그림마다 여성적이며 화려한 색채사용을 즐겼던 보나르의 소품 같은 풍경화부터 노란 풍경을 아틀리에 창문을 통해 보고 그린 대작은 가까이 두고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이었다. 보나르는 이미 열 네살에 그린 파리 센 강의 수채화소품에서 그의 수준 높은 안목을 인정받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사이며, 변호사 직업을 가졌었다. 그런데도 그의 화가에 대한 열정은 과감히 변호사 직업을 포기하게 했던 것이다.
자주 보았던 마티스의 그림도 몇 점 있다. 강렬한 색채로 야수파라 불렸지만 그림에서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받은 작품은 마티스의 ‘바다’와 하늘‘ 주제의 대작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지지 않으면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를 작품 앞에서 하늘과 바다는 같다는 그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파란 색을 배경으로 모든 형상들은 바다나 하늘에서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배경색은 정사각형의 푸른 색 모자이크로 면 처리를 했지만 하얀 색은 새들과 구름 , 물고기. 해초들이었다. 종이를 오려붙인 그것들은 가까이서 보니 큰 형상은 자잘하게 오려서 덧붙인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문득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교 숙제를 도와주느라 색색의 종이를 접어서 동물이나 꽃 등의 모양을 가위로 오려주었던 기억이 더 올랐다. 마티스는 내게 오늘도 영감을 주고 있었다.
미술 감상이나 미술활동이 반드시 돈이 많이 들어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확신을 마티스의 하늘과 바다 작품에서 가져본다.
다른 방으로 가니 방 하나가 완전히 한 사람의 설치 작품이었다. 주세페페노네의 ‘그늘을 들이마시다’인데 그의 방에서 그늘의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벽은 온통 월계수 잎을 채운 200개의 철그물 망으로 붙여졌고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가운데 벽에는 청동의 월계수 모양의 폐 조각품이 걸려 있었다.
월계수 잎 향을 맡으며 또 힌트를 얻는다. 벽지가 따로 없을 것 같다. 계절에 따라 집안의 벽면을 설치작품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봄이면 봄꽃을 가을이면 낙엽이 채워지는 벽이 집안에 있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시립미술관의 퐁피두 센터 특별전은 나에게 색다른 활력을 주었다. 전시는 아이디어의 보물창고다.
권남희 : 1987년 월간문학 수필당선.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MBC 롯데잠실수필 강의 .
수필집『미시족』『시간의 방 혼자 남다』『어머니의 남자』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월평 (에세이플러스 2009년 3월호에서 발췌)
<수필문학 1,2월호>권남희의 ‘미술전시 가 주는 삶의 힌트’를 읽고
편상범 수필가(에세이플러스 회원 ) 의 평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행복에 관한 많은 정의와 아포리즘이 있어왔고, 문학, 예술 작품에서도 수많은 상징이나 비유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 중에서 성경 마태복음에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불교의 ‘공 空 ’개념과 일치한다. 불행의 씨앗인 끊임없는 욕망, 그 욕망의 기원인 자아EGO, 그 자아의 뿌리인 잠재의식, 그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기억과 상처들을 모도 여의고 제로zero로 돌아간다면 그 空의 자리에 행복의 기적들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곳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 <수필문학> 1,2월호에서도 행복에 관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권남희 ‘미술 전시가 주는 삶의 힌트’는 일상적인 소재와 그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통해 행복을 포착해내는 즐거움을 다루고 있다. 수필가는 점심시간에 우연히 들른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프랑스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관람하게 된다.
양털 옷을 입은 설치미술가의 발상도 대단하고 그것은 다시 인간의 삶에 깊이있게 투영해내는 수필가의 안목도 만만치 않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들른 미술관은 수필가에게 삶의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느끼는 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선택이라는 시각의 가지를 더듬어 밑으로 내려가 땅을 파헤쳐 보면 잠재의식이라는 거대한 뿌리를 만나게 된다. 그 뿌리가 건강할 때 시각 또한 건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