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그림과 시가 있는 수필 -허영자.마광수..전상국. 이호철 외

권남희 후정 2010. 1. 2. 12:01

  

 

 문학관 출판 (윤재천 엮음)02-718-6810

수록작가 ( 강은교.김후란.마광수.문효치.신봉승. 유안진. 윤후명. 이호철. 전상국. 정연희.정목일. 천양희. 허영자. 황금찬 외  

 

감자먹는 사람들

                                 權南希

결혼생활도 3년 고개를 10번 째 넘었다. 동방삭의 3년 고개는 어떤 의미로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주기를 3년으로 말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한다.   

마음고생을 겪을 적에는 차라리 가난 했을 때가 훨씬 행복했었다고 한탄하며‘우리가 정말 사랑했었나?’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연애하던 때 그와 내가 잠시 떨어져있는 시간도 안타까워 주고받았던 편지는 낡은 책장 맨 아래 서랍 속에 잠들어있다. 마음도 그렇게 잠들어있는 것인지, 감정은  점점  손과 발에 생기는  굳은살처럼 딱딱해지고 무엇을 보아도 무덤덤해져 좀처럼 생기가 나지 않는다. 애정표현을 하려한들 그것은 마치 벼 베기를  끝낸 그루터기에 솟는 파란 싹의 머쓱함일  뿐이다.

일요일 식탁에 앉은 그와 나를 본다. 무표정하고 어둑한 분위기는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묵묵히 수저를 놀리기만 하는 그의 손을 본다. 가사노동과 세월에 점점 험해지는 내 손과 비기면서 흘끔거린다. 아내 손보다 더 고와 ‘무슨 남자 손이 그렇게 곱냐?’고 놀리곤 했던 그의 손도 이제는 거칠어져있다. 왠지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표정 없는 중년 부부 어느 구석엔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신혼기를 꽉 채웠던 애틋함과 달콤함은 은행잔고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처럼 달아난 채 메워지지 않는다. 기대했던 그 자리에는  갈등과  배신, 미움이 차지하고  책임감, 자식에 대한 애착 등 몇 가지 관습에서  비롯된 것들만이 매달려있다.

베란다 정리를 하던 중 결혼식 때 입었던 그의 양복을 본다.

명동 제일모직 대리점에서 가장 비싼 옷감을 끊어다가‘백만불’양복점에서 맞춘 것인데 그 후로는 변변한 양복 한 벌 장만해주지 못했다. 

역시 베란다 창고에 넣어 둔 유리 상자 안에 그가 나에게 사준‘브로바’ 상표의  예물시계가 한 쪽 줄이 끊어진 채  있다. 신혼여행을 위해 명동 엘리자베스 구두점에서 산 핸드백도  있다. 방치한 채 20년 쯤 지난  어느 날 열어보았는데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뒤늦게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통하게  한 다음 털고 닦는 부산을 떨었는데 곰팡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방만 곰팡이가 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서로의 마음도 돌보지를 않아 닦여지지  않는 곰팡이가 슬어있는 것 같다.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 수필당선. (사) 월간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수필집‘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미시족’등 4권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월요수필. MBC롯데          잠실 목요수필 등 강의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