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권남희 '나는 어디에 있을까' 수필 .2007.에세이플러스, 8월호 수록작품

권남희 후정 2010. 1. 31. 17:05



권남희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는 시간에 쫒기며 얽매여 사는 현대인의 사람과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통신 시대에 진입하고부터 인간의 사람은 속도전을 방불케 할 만큼 숨가쁘게 영위되고 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 삶의 질과 가치가 수반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시간에 종속된 삶, 시간의 노예가 된  삶을 자각하고 자신이 처한 공간 의식과 삶에 대한 의미를 캐보려는 자의식을 드러낸 글이다.  -에세이 플러스 월평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       

                   

나는 어디에 있을까     

                             권남희 (수필가)

 ‘남는 게 시간이다, 맘놓고 써라’ 슈테판클라인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이란 책에서 시간에 쫒기며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역설을 던지고 있다 . 그는 시간이 지나가는 사실,  시간부족에 대한 불안보다  결과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편함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시간을 주도하라고 슈테판클라인은 말하지만 어쨌든 나는 출근길에 나서는 순간부터 시간과의 싸움 에 말려들고 만다.  이미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한시도 어름적거리지 못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리며 시간을 다툰 뒤이지 않나.   승용차를 타고 가는 길은  늘 같은  거리다. 그런데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각으로 시계를 보며 조바심을 내는 '나‘가 이해되지 않는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십년이 되어 가는  동안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근 차량들이 도로에 빽빽하게 있으면 마음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한 번 빨간 신호에 걸리기 시작하면 매번 걸리는 머피의 법칙을 곱새기며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건몸달아한다. 

시간에 대한 강박증은 일본인이 더하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1초도 안틀리는 시계’가 인기를 끌고, 열차가 15초 이상 역에서 지체하면 1초 단위로 이유를 보고해야 한다. 일본   총리의 일정은 분단위로 언론에 예고될 만큼  ‘시간 강박증’이 심한 일본인들을  탓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출근길이 최고로 밀리는 월요일은 가능하면 승용차를 타지 않는다.  서울행 경부 고속도로 죽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그러나 정류장에 도착해서도 시간을 확인하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련만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며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노선에 따라 규칙적으로 왕복을 하는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정해진 시간에서 몇 분 상관 앞뒤로 늦거나 빨리 도착하거나 할 뿐이다.  알면서도 버릇처럼 초조하게 기다리다 버스를 타도 시간의 노예에서 해방되지는 않는다.  가는 길을 시간에게 느긋하게 맡기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버스 속에서 혼자  도로가 밀리는지 살펴보면서 시간을 뜰먹거리고 있다.  남들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편하게 가면 안되는 일일까,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몸은 꼿꼿하게 펴고   촉각은 곤두세운 채 시간에 채찍질하듯 안달을 하다가  전철역에 도착한다. 때마침 몇 분이라도  빨리  도착하였다면 만족감에 흐뭇해하고 만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은 얼마나 빨리 사무실에  도착할 것인가를 가늠하고 다시 사무실에 도착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다시 상상하는 일은 고통이다.  

사무실을 나서면 다시 얼마나 집에 빨리 갈 수 있나 계산하고 있다니... 교통편을 어떻게 이용해야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노선표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누군들 오가는 시간에 자신을 매어놓고 싶을까. 시간을 계산한다고 그만큼 빨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같은 출발점에서 다른 버스가 휙 지나가면 그 버스의 번호를 외우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내가 탄 버스와 경주를 벌인다. 어느 버스가 전철역에 먼저  도착할까 . 불과 오 분에서 십여 분 차이일 텐데도 신경전을 벌이느라 마음을 놓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는 곳은 역시 전철 역사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하는 건 나만이 아니다. 전철역 주변은 온통 뒤는 사람들이다. 왜 뛰고 있을까? 뛰는 일을 멈추지 못한 채 생각한다.      

 서울을 벗어나 외곽으로 이사를 간 후부터   시간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고 해야겠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마을버스와 전철을 이용했다. 그런데 서울 중심가나 북쪽으로 더 올라가야 하는 곳의  모임을 참석해야 할 때는 번번이 지각을 하곤 했다.  서울거리로 착각하여  대충 나섰다가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부터 모임이 있거나 약속이 잡히면 전 날부터 시간을  계산해보고 출발하는 시간을 결정해야 잠이 들었다.  제 시간에 모임을 참석한다 해도 좌불안석인  것은 출발 할 때나  마찬가지다 .저녁 모임일 때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궁리에 빠져 시간을 살피느라 모임 분위기를 깨곤 한다. 2차나 3차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모임 중간에 슬쩍 빠져나오는 일에도 이제는 이골이 났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시간은 나를 베는 칼날이 되어 삼빡  내 가슴을 긋고  지나간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시간에 끌려 다니고 만다. 한주먹 후려쳐서 사라지는 거라면 기꺼이 그러하겠다.  ‘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장미꽃 향기를 맡아보라’는 글귀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녀 해결된다면 그리하리라.  생각은 생각으로 그친다.

이토록  시간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게 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준 사람은 ‘시간은 돈이다’라고 한 벤쟈민 프랭크린이다. 모든 시간의 중요성을  경제와 연결시켰던 사회에 태어난 나는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가만히 있게 되면 마음이  아주 불안하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나를 물고 늘어진다.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어도 그러려니 기다리고, 노래 한 곡이 5년 이상 히트곡으로 돌던 70년대와 생각의 속도로 변화하며 모든 기억과 생산물을 하루살이로 만드는 디지털 신경망 사회에서 시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잠자리에서 나는 다시 다음날  일정에 대한 시간을 계산하면서 ‘시간이 남아도는 디지털시대’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인체시계를 무시한 채   오늘 내일의 경계도 없이 시간에 그악을 부리며 비뚝대는 내 생활, 문득 나는 어디에도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2007.에세이플러스 8월호 수록 원고


약력 :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문학의집.서울 회원

       송파문인협회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 문단사 편찬위원. 대표에세이 회장 역임.

       작품집『미시족』 『어머니의 남자』『시간의 방 혼자남다』『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 외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 MBC롯데 잠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분당 홈플러스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