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월간 <헌정> 수록한 권남희 칼럼

권남희 후정 2012. 2. 21. 11:40

 

순수와 근본주의로 포장된 테러

권남희 수필가

 

노르웨이 테러 참사는 유럽중심 우월주의 역사의 그림자로 몇 년 전 프랑스 사태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개별적 국민의식이 강한 독일, 프랑스 등이 해외 이민자들을 포용하지 않고 소외시킨다면 사회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각국의 사회학자들이 몇 년전부터 경고했다.

7월 22일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노르웨이 정부청사 폭탄테러에 이어 오슬로 북서쪽 우토야섬으로 달려가 다문화 가정 청소년 캠프에서, 신체내부로 퍼져 큰 내상을 입히는 덤덤탄총알을 난사하여 9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도망가는 학생은 쫓아가서 총을 쏘고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는 어린 학생까지 확인 사살하는 괴물같은 행동은 피해자들의 복수심을 유발하여 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다.

범행 후에도 너무 당당한 그는, 인터넷에서 ‘반 이슬람 컴뮤니티’에 다문화사회와 무슬림이민을 비난하는 글을 써온 내용을 되풀이 주장했다. 유럽 지식인체하는 그의 주장은 모두 인터넷에서 짜깁기한 내용일색이었다. 미국의 유나버머나 오클라호마 테러사건의 성명서를 짜맞춘 글을 자기 논리처럼 포장한 것이다. 무슬림이민자들을 향한 맹목적 적개심은 2002년 4월 인터넷에 올린 그의 글에서 확실해진다. 제 1목적을 ‘무슬림이민자로부터 서유럽을 구하고 보수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 밝혔다.

오로지 범행을 위해 ‘브레이빅 게오팜’을 창업하여 9년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브레이빅은 단순한 정신병자가 아니다. 전범자나 다름없다. 브레이빅의 행동을 일부에서는 결손가정으로 인한 고독의 소산인 단순 광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정신적 결함이 모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용은 그런 곳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도 ‘술김’에 저질렀다하면 정상참작을 하여 관용을 베푸는데

브레이빅이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엉뚱하게도 한국을 ‘다문화주의를 거부한 훌륭한 민족국가’라고 꼽으며 한국이나 일본처럼 가부장제를 옹호한다는 궤변을 낡은 오리엔탈리즘의 틀에 갇힌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체포당시의 사진을 보니 그는 마치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게 목표인 것처럼 반성이나 후회의 표정도 없이 ‘봤지?’ 그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럽전역으로 인터넷 연대를 맺고 활동하고 있다는 그를 보면서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향수를 잊지 못하고 다른 문화권을 냉소적으로 보거나 아예 무시하여 인정하지 않는 전 유럽적 광기시대의 뿌리깊은 차별의식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유럽중심주의 편견에 이웃을 알려하지 않는 역사서술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민자들을 복지혜택만 누리고 사회에 기여가 없는 .2 3류 시민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1940-1950년대 노르웨이에서는 몇 안되는 아시아 계통의 여성들에게 불임수술을 의무적으로 해서 열등인종의 번식을 막아야한다는 토의가 정부와 언론을 중심으로 있기도 했다.(박노자. 오슬로 국립대교수)

예루살렘출신 사회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오리엔탈리즘』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유럽지식인의 우월주의를 비판한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동양인 또는 아랍인은 앵글로 색슨 인종의 명석함과 솔직함, 고귀함과 대조적으로 자발성과 정확함의 결여에 둔감하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 얼마나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편협한 사고인가.

지구촌 어디든 이제 순수혈통은 없고 이방인도 없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종교 갈등과 인종차별 등의 해묵은 감정이 폭발하는 아슬아슬한 순간들과 마주친다.

어떤 것이든 폭력과 파괴를 합리화시키는 상황은 없어야 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속담도 있다. 비뚤어진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면에는 자신감 결여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자기 안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허황된 가짜에 빨리 현혹되고 근본 찾기나 순수라는 이름을 내세워 잘못된 열정을 폭발시킨다. 특히 정치와 종교가 배경이 된 순수를 향한 강박증은 전쟁을 불러오고 사회는 과격한 순수주의자들에게 테러의 빌미를 준다.

다문화주의와 민족주의 참사는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며 이제 안전지대가 없음을 예고를 하는 형상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톨레랑스>를 차용하여 관용을 주장했던 유럽이 왜 먼저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유엔이 정한 ‘톨레랑스의 날’도 이민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2005년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북 아프리카계 소년이 경찰 추격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러시아에서는 슬라브 혈통주의를 신봉하는, 10-20대 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모든 외국인을 적으로 공격목표로 삼아 폭력을 휘둘렀다. 호주 시드니 판 인종유혈사태에 규모가 가장 크다는 이번 영국런던 노팅 힐 폭동과 약탈도 범죄혐의를 받은 흑인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게 원인이다. 1990년대 초 독일도 거리에서 나치단원들이 터키이민자들에게 ‘너희나라로 돌아가라’며 무차별 폭력을 가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폭력과 범죄증가 등 복지와 사회비용이 문제가 되자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 모두 화살을 이주민들에게 퍼붓고 있다. 경제호황기에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여 ‘손님 노동자(Gasterbeiter)'로 환영하던 유럽의 톨레랑스(관용문화)위용은 사라지고 있다. 이민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한국도 남의나라 일이 아니다. 이미 다민족 국가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어 2007년 한국은 유엔인종차별위원회로부터 ‘ 현대 한국사회의 多 인종성격을 인정하고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1987년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 현재 130만 명이 넘었다. 서울의 자치구 두 개 정도의 인구규모다. 한국도 우월감을 버리고 결혼해 온 이민 여성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까지 포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폭탄’이 될 것을 외국인 정책본부장은 경고했다.

특히 새터민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배려하고 가난과 소외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나라 특정지역에서는 혈통과 양반의식이 강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 이주 여성인권센터’설립자 한국염 목사는‘ 민족중심주의는 차별주의이고 폭력이다’라고 밝혔다.

몇 년 전부터 한국도 ‘아시아 노동자 박대하는 부자나라’라는 인식을 받고있다. 탈레반도 한국을 서구의 일부로 보고 있는 지금 가장 큰 숙제는 국가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브라질이나 미국은 다인종 다문화로 이루어졌지만 국가의식은 강하다고 한다.

브레이빅 테러 이후 에 대한 반성과 시민들의 ‘노르웨이를 사랑하자’문화로 확산 되고 있지만 인종차별 과 격리를 부르는 다문화주의는 허울일 뿐이다. 그릇된 인식을 버리는 자기극복과 이민자들도 ‘국민’ 대접을 받으며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존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대한민국 헌정회 월간지 <헌정 > 9월호 수록

 

권남희 權南希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현재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장 .

덕성여대평생교육원 .MBC아카데미 잠실 .강남점 수필강의

작품집『미시족』『어머니의 남자 』『시간의 방 혼자남다』『그대삶의 붉은 포도밭』<육감 &허이테크> 등 5권

 E-mail: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