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요리 수필 (권남희 )
너는 내 운명이랑게
권남희
감자!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멀리 있는 첫사랑은 시시때때로 잊어도 감자는 동네오빠처럼 만만하고 믿음직한 구석이 있어 툭하면 찾았다. 장에 갈 시간도 없고 찬거리가 아무 것도 없어 난감할 때가 많았는데 한참을 서서 두리번거리다 베란다에 뒹구는 감자를 발견하면 ‘살았다’ 외치고 집어 들었다.
감자는 20대 내 결혼생활에서 구원자였다. 감자는 카멜레온처럼 변신이 무궁했다. 반찬도 할 수 있고 간식으로도 활용이 되고 식사대용도 되었다. 감자 한 가마를 사두면, 겨울 김장준비를 마치고 연탄 수백 장 들여놓은 그 뿌듯함처럼 마음이 놓였다. 여름살이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시부모와 시동생 가족 등 12명쯤 되는 대가족에 찾아오는 친척까지 대접해야하는 결혼생활은 학교를 갓 졸업한 내게는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다. ‘이게 아니었어!!’ 아무리 마음속으로 외쳐도 ‘주부생활’만이 살길인 것처럼 내가 있을 곳은 주방과 세탁실, 아기가 자고 있는 안방만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주부가 되었으니 살아갈수록 불만이 쌓였다. 결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지만 전문직업이 있다든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든가, 돈이 많아 외국연수를 간다는 무슨 명분이 있어야 뛰쳐나갈 것 아닌가.
하루 세끼 반찬을 만들어내는 일과 틈틈이 간식 만들고 빨래, 청소에 시장 다녀와서 다시 식사준비를 해야 하는 노예생활에서 언젠가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정식은 반찬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가. 도우미도 없이 혼자 하루 세끼 보통 9첩 정도의 상차림을 해야 하는 시집살이의 연속은 대학 졸업장하나로는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처럼 절망을 안겼다.
아줌마가 되면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그 때 깨달았다. 친구들은 모두 아가씨인데 왜 나만 억울하게 아줌마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아줌마가 되기에는 너무 이른데 겨우 이런 부엌일을 해야 하나 좌절감속에서 일을 하려니 입맛을 잃고 말라갔다. 살림의 여왕 마사도 아닌데 부엌 일만으로는 생색도 나지 않고 대접도 받지 못하는 구조였다.
야채를 씻고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양념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햄버거 한 개와 커피 한잔, 토스트와 계란프라이 이런 아침식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밥과 국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기본으로 늘 차려지는 밑반찬이 나물무침과 김치종류 두 어 가지, 김구이, 생선, 외에 그날의 특식이 나와야 하는 게 주부의 능력처럼 보여지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날마다 머리를 짜내느라 머리카락이 숭덩 빠지는데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 수도 없고 울고 싶은 날들이었다.
남편의 입맛을 맞추기가 가장 마음 고생하는 일었다. 사먹는 입맛이 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집에서도 자꾸 찌개나 국에 조미료를 더 넣으라며 먹을 반찬도 없고 맛없다고 투덜댔다. 이렇게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는 아내의 마음은 모른 채 칭찬해도 신통찮은데 반찬타령만 해대는 남편이 미워져 ‘내가 이집 식모냐’짜증을 내면 남편은 ‘그럼 네가 나가서 돈벌어.’로 받아치니 미움만 쌓일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어떻게 시집살이를 하냐고 나만 보면 눈물 흘리던 친정어머니는 철마다 갖가지 밑반찬을 보내주곤 했는데 어느 여름 감자를 한 가마 보내주었다. 감자 한가마를 풀어놓고 ‘무엇에 쓸까?’ 감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생각에 잠겼는데 어머니가 해주던 감자먹을 거리들이 풍선처럼 머릿속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볶다가 찌다가 튀기고 끓이면 될 일을 왜 몰랐을까.
“ 감자 너는 내 운명이랑게”
감자 한가마를 받은 날부터 앞치마를 두르는 내 마음이 급해졌다. 둥근 모양으로 썰어 튀김을 하면 맛도 좋았고 감자를 채쳐서 소금으로 간을 하여 살짝 볶고 된장찌개에도 던져 넣고 깍두기처럼 썰어 진간장에 조려도 보고 뽀얀 국물의 구수한 감자국을 끓일 때는 정말 좋았다. 밥을 뜸들이기 전 올려서 익혀 밥에 담고 감자를 갈아서 부침을 해도 별식이었다.
시부모님이 태어났던 1920년대 쯤 독일에서 들어왔다는 강원도 남작감자를 간식으로 쪄낼 때는 분나는 하얀 감자를 먹으며 시부모님과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도란거렸는데 그야말로 감자가 만드는 풍경들이었다. 생 치즈를 마트에서 발견하고 감자 위에 올려먹는 방법을 개발하여 한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니 감자와 사랑에 빠져 아줌마 제대로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감자의 변신도 쓰지 않고 두면 감자의 몸 이곳저곳에서 독성품은 푸른 싹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화만 냈던 내 몸 어디에선가 독이 나와 내 아이와 가족에게 가지 않았을까 깨닫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그림을 보고 나는 감자를 씻고 껍질을 벗기고 씨름하며 거칠어진 내 손과 농부가족의 손이 같다는 것을 보았다.
모두 손으로 이루어내는 삶이었다.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 비루함에서 캐내는 감자의 기적이었다.
감자, 이름 그대로 地實이 주었던 알알이 맺힌 행복을 일상에서 캐냈던 20대였다.
감자처럼 나의 20대는 일상의 땅속에 묻혀 잘 영글어 주었다.
권남희 약력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덕성여대평생교육원 .MBC아카데미 잠실, 도곡점. 수필강의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