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명 수필가 인터뷰 2012년 4월호 한국수필
시간과 존재에서 수필의 진정한 얼굴을 찾아나선
변해명 수필가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
일시: 2012년 3월 15일
정리 :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흑룡의 해에도 건강하시어 작품활동과 후배양성에 정진하시리라 믿습니다. 개인사나 문단활동에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변해명 : 금년에 수필집 1권과 수필이론서 1권이 나옵니다. 제가 건강할 때 준비된 책들이고요.현재로는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건강이 좀 더 나아지면 수필을 쓰려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 김동리 소설가의 추천으로 등단하셨다면 수필에서는 드문 일이고 문학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내가 등단한 <한국문학>은 김동리선생이 발행인으로 신인을 일 년에 한번 신문 신춘문예처럼 뽑았는데, 그 책을 구독하던 저는 제 글을 김동리선생에게 평을 받고 싶어서 수필 한 편을 보낸 것이 당선이 되었지요. 75년 2월호에는 그해 당선작을 발표하는 지면이었는데, 소설, 시는 당선작이 없고 내 수필 한 편만 올랐어요. ‘물이 오른 듯한 익숙한 솜씨와 투명한 문장은 문인으로서 역량을 갖추었다’라는 평을 주셨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평생 수필쓰기에 매달려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때 제게 소설을 쓰라고 격려하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정: 선생님의 수필집을 보다가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숨겨진 시간의 지도><시간의 대장장이>< 시간의 작은 방울 > 등 시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 학창시절 철학책을 많이 탐독했는데 그 중 하이데커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책을 여러번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흐르는 객체 가운데 시간은 존재한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 옛생각이 잠재되어 글 제목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정: 동리목월 문학관에서 선생님은 수필특강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 공감대가 있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다라고 강조하였는데 머리로 쓰는 글, 곧 문장력만 있지 감동없는 글쓰기에 대한 경고인가요?
변:저는 가끔 수필을 설명할 때 거리에서 팔리는 그림과 고호의 그림을 비교해서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거리의 그림은 자연을 그대로 보고 묘사한 것이고, 고호의 그림은 자신의 느낌으로 자연을 담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그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 느낌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냈기에 좋은 그림이 되었겠지요.
그처럼 수필도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느낌을 자신의 철학을 담아 표현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보편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되고 독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오게 하지요. 그런 수필이 살아있는 수필이리고 봅니다.
정: 1970년대와 80년대 활동하신 수필가들은 특히 故 조경희선생과의 문단 인연이나 일화가 있다고 봅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변 :75년 어느 수필가들 모임에 저를 불러주셔서 그때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까지 무슨 행사 때나 아니면 가끔 사무실에 가서 뵙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예총회장을 하실 때에는 우리 문단에 수필가가 너무 적어서 세력이 약하니 수필가를 많이 늘려야 한다고 하셨고 그 뒤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는 수필가는 많아졌으나 질이 너무 떨어진다고 고민을 하시던 걸 기억해요. 돌아가시기 몇 년 전(2005년도)10월인가 저를 사무실로 부르셨어요. 그 무렵 월간문학에서 원로들의 문단활동및 삶의 과정을 인터뷰형식으로 60매를 1월호에 발표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의 글을 올릴 차례가 되어서인데 느닷없이 그 글을 저보고 쓰라고 하셨어요. 저는 이숙선생님이나 다른 분처럼 선생님과 가까이 지낸 사이도 아니었고 선생님을 너무 몰라서 못쓰겠다고 하니 제가 가장 적임자라며 당신 청을 들어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어렵게 그 글을 썼는데 선생님은 너무 좋아하셨어요. 평소에 너무 어려워 다가서지 못했는데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한 것을 평소에 알고 계셨나봐요.
정: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수필문학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필문학이 가야할 방향을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변: 수필은 허구에 근거하는 문학장르가 아니어서 IT 산업의 발달에 굳이 위협을 받을 필요가 없이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확산시킬 수 있는 여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변화에 눈을 뜨고, 적극적인 자세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수필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수필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필가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정: 한국수필가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바랍니다
변: 잡지 <한국 수필>은 한국에서 수필의 역사와 전통을 오랜 세월동안 잘 지니고 이어져 온 잡지입니다. 수필가협회는 그 잡지의 얼굴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요즘 아무리 많은 수필잡지들이 나와서 어깨를 거루지만 한국수필의 무게를 따라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임을 자부심을 가지고 함께 발전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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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명(Byun Hae Myung) 수필가(essayist)
△서울 출생 △서울대 사범대,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문학》수필(1975),《소년중앙》동화(1976)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계간수필》부회장,《수필과 비평》편집위원.《한국수필》고문. 부평문학회 고문, 한국 여성문학인회 부회장.
△중등학교 교장, 대한교원총연합회 부회장,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역임
△서울 도봉문화원 수필 강사
△한국문학상, 신곡문학대상, 한국수필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월산수필문학상 수상. 근조홍조훈장 수훈
△수필집『외로운 영혼에 불을 밝히고』,『그리운 곳의 빈 자리』,『숨겨진 시간의 지도』외 다수
△기행수필집『길없는 길을 따라』
△옛그림 풍속에세이집『잊혀져가는 우리 풍습』
2012년 5월 8일 변해명 선생님은 돌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