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인지

문학과 현실 제 23호 권남희 수필수록

권남희 후정 2013. 1. 28. 14:21

 

                          발행인  황명운   편집인  최영숙 주간  김경수

 

문학과 현실  겨울호  수록  원고 

 

느거무니         권남희 수필가

 

“느거무니 시방도 안 왔능개비네 잉”

“시장가셔서 늦는당게로요”

“느거무니 들오면 ** 아줌마 집으로 오라고 히먼 알아들응게로 그려 꼭 잉? 데꼬 갈라고 힜더니 해필 어디를 갔디야...... ”

동네 어른들이 집을 들렀다가 어머니가 안 보이면 꼭 와야 한다며 못을 박았다. 그렇잖아도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하고 화가 나는데 어머니 친구들까지 중요한 일도 아닌데 불러내려고 조바심을 내면 은근히 화가 났다. 보나마나 또 아줌마들은 어느 집 안방에 모여 술 한 잔 하면서 노래부르고 놀 게 분명하다. 어머니가 와도 나는 알려주지 않을 심산이다.

사춘기의 나는 어머니 앞에서 감정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의 일상은 어머니 목소리가 집안을 울려야 정리가 되건만 어머니의 하루는 늘 집밖에서 그네를 뛰고 있으니 아슬아슬했다. 어머니가 말을 걸어도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방문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하다가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심통이 나는 것은 웬일인가. 어미 잃은 송아지마냥 의기소침 안절부절하는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와 나는 느거무니를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한 쪽은 찾아다니고 한 쪽은 숨기느라 날마다 심리전을 벌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누구인가. 텔레파시가 동네 아주머니들하고만 통하는지 전화가 귀한 세상이었으니 발달한 직감이 베트맨을 능가한다. 나의 볼멘 표정과 불안한 눈빛을 보고 눈치로 때려잡는다.

“ ** 엄마가 놀러 오라고 힌 것 같은디 왜 말 안혀” 내 대답은 들을 것도 없이 그길로 어머니는 내 달린다. 바람처럼 어머니가 나간 자리는 화산폭발이후 분화구처럼 내려앉았고 나는 애꿎은 어머니 신발만 발로 차버린다. ‘느거무니는 당신들 거여. 무슨 권리로 불러내는데....’

저녁 지을 시간이면 나는 어머니를 찾으러 갈 것인지 기다려야 할 것인지 한바탕 갈등을 한다. 아버지가 도착할 시간인데도 어머니가 오지 않으면 찾아 나서야 한다.

“느거무니 찾으러 왔냐. 사자 어금니도 아니고 시방 느거무니 없으먼 밥도 못 먹겄어? “ 동네 아주머니들은 저렇게 커서도 어머니만 찾는다고 한 소리 한다. ‘저렇게 커서도’ 한마디에 나는 남의 밭 무 뽑다 들킨 것처럼 무안해져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만다.

한 번 마음잡으면 ‘느거무니’는 앞치마 두르고 저녁 지을 때 참 다정하고 따뜻해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한 번 나가면 함흥차사이니 애간장을 태운 존재였다. 마실나가 있는 집 문지방 불이 날 만큼 들락거려도 흥이 오른 어머니는 집을 잊은 듯 했다. 아무리 잡아다녀도 뽑히지 않는 뿌리가 긴 무처럼 어머니는 꿈쩍도 않는다. 뿔없는 호랑이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시가 급한데 술에 먹힌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종이호랑이 일뿐이다.

 

언젠가는 아주머니들에게 흉잡히기 싫고 같은 소리 듣는 게 달갑지 않아 집에서 키우는 누렁이 목에 ‘어머니 좀 보내주세요’쪽지를 매달아 그 집 마당으로 들여보냈다. 누렁이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들어오지 못하게 짖는 그 집 개하고 대판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놀이판을 다 깨지게 했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 어머니 보내달라는 쪽지를 목에 건 개를 끌고 나오며 내내 나에게 화풀이를 했고 참다못한 나는 누렁이도 새끼들 키울 때는 안 나돌아다닌다며 세게 반발을 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네 에미가 시방 개만도 못한 거냐, 키워놓았더니 술 좀 마신다고 무시하는 거냐며 저녁 내내 눈물바람으로 신세 한탄을 했던 것이다.

느거무니는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이렇다 할 놀이문화가 없던 때 안방을 주름잡던 개그맨이었다. 느거무니는 바람처럼 가볍게 돌아다니며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늘 애를 태우면서 내 눈물을 빼기도 했다.

느거무니는 가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화로였다. 손이 시려우면 손을 뎁히고 감자나 고구마도 구워먹는 곳 , 방안을 뎁히고 우리들의 마음을 덥혀 평온을 선물하는 화롯불이었다.  봄 미나리 다듬어 나물을 무치던 손, 계란을 부쳐 우리들의 도시락을 싸주고 입학시험장까지 따라와 교문 앞에 서 있던 지킴이였다.

느거무니는 내 분신같은 친구도 주지 못하는 무한대의 사랑이었다.

느거무니는 홀로서기를 못하는 나에게 기댈 언덕이었다.

 

권남희 수필가  011-412-4397

1987년 월간문학수필 등단.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작품집 《육감&하이테크》《그대삶의 붉은 포도밭》《시간의 방 혼자남다》등 5권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