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수필가 인터뷰 월간 한국수필 2월호
2013년 월간 한국수필 2월호 반숙자 수필가 인터뷰
격랑의 골짜기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수필쓰기에 몰입하는
반숙자 수필가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3. 1. 21 .목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수필문학의 발전과 후학들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역에서 느끼는 수필문학의 발전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반숙자: 지금은 지방시대라 전국적으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보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방마다 특성이 생깁니다. 그 지역에 어떤 작가가 활동하느냐에 따라 장르별 특성이 생기지요. 예로 시조작가가 활동하는 곳은 시조시인들이 늘어나고 이곳 음성같은 경우는 다른 장르에 비해 수필인구가 많습니다. 그것은 수필창작교실이 있어 가능한 일이지요.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개방하니 타 도나 시에 거주하는 분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필의 생활화가 이루어지는 계기지요. 가까운 예로 청주시에서는 1인 1책 운동이 전개되어 많은 수필작가들이 강사로 활동하며 주민들에게 수필을 보급하고 있고요, 읍면까지 개설된 주민 자치센타 프로그램에서도 수필 강의를 선호합니다. 매년 회원작품집을 발간하여 정서함양에 좋은 기회라고 인식하는 점이고요. 군에서도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한시적으로 개설되어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강사수급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행정적 뒷받침이 활발한 현재의 상태가 수필문학 저변 확대와 활성화에 좋은 기회가 되고 발전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정: 1981년 한국수필 등단이시면 조경희 선생과의 인연도 각별하리라 생각합니다.
일화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반: 수필문단에 큰 어른이시라 어려웠어요. 언젠가 수필 모임이 끝난 자리에서 굳이 당신 댁에 동행하지고 하셨어요. 시골 가는 차시간이 맞지 않으면 자고가라는 배려셨지요. 선생을 따라나섰는데 아주 소박한 서민주택이었어요. 친정 노모를 모시고 사신다며 자주 놀러오라 하시는 거예요. 그 후 시골에 오신 일이 있어요. 마침 장날이라 장구경을 나섰는데 선생은 큼직한 헝겊가방을 들고 장바닥을 누비며 장을 보셨어요. 도라지나 씀바귀등, 촌로들의 좌판 앞에 앉아 흥정을 하며 골고루 팔아주시는 거예요. 물건 좋은 큰 좌판에서 한꺼번에 사시라고 하니까 그러면 노인들이 서운해 하신다는 거예요. 말씀은 무뚝뚝했지만 정이 흠씬 묻어났지요.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아서 물건을 사시는 모습이 꼭 시골아주머니 같으셨거든요. 그것이 바로 선생의 동화의 멋이 아닐까 싶었어요. 사과와 캐러멜을 좋아하셨어요. 특히 버스로 상경하실 때는 어린애처럼 한 손에 캐러멜 봉지를 들고 타시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고 그 단순성이 부러웠습니다.
정: 언젠가 선생님의 작가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감각의 세계에서 밀려난 후부터> 수필쓰기가 남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만의 수필론을 말씀해주실까요?
반: 수필은 관조의 문학이라고 하지요. 그럼에도 제가 수필을 쓰게 된 동기는 어떤 절박성에서 출발하여 그런 여력이 없었습니다.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본능적이 충동이었달까요. 마치 파선한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에 보낸 sos의 깃대라면 적합 할런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청각의 장애와 질곡의 늪이 없었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수필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로 나를 실어다 주는 수단입니다. 수필 작가가 아니라 스스로 즐겁고 기쁜 삶을 살기가 목표입니다. 수필에 앞서 삶에 무계중심을 둡니다. 수필은 허물 많고 편협한 나를 담금질하는 도구였고 포용해 주는 품이었고 위로였습니다. 수필은 결핍의 상황을 창작의 동기로 유도하는 긍정적 해법이 되었지요. 30년 넘게 수필을 쓰고 또 강의를 하다 보니 수필은 사람의 내밀한 상처를 치유해 주는 힐링의 기능도 있음을 느낍니다.
정: 선생님에게는 치유가 어려운 불치병이 있다고 밝히면서 ‘때때로 격랑의 골짜기로 스스로를 유폐시킨다’고 하셨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 그것은 목마름입니다. 나의 목마름은 내 안에 불어오는 허무의 바람이고 치유되지 않는 그리움이고 무서운 성찰의 번뇌지요. 이런 것들이 상충되면서 충돌할 때 모든 감관의 문을 닫고 잠행을 합니다. 타협을 모르는 내적투쟁이지요, 어떤 것으로도 치유 불가능한 절대고독 앞에 마주서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자기응시를 합니다. 이것은 아픈 순환이에요. 넘어졌다 일어서며 조금씩 변화하는 우화羽化의 과정이지요. 사람 속에서 불완전한 나를 발견할 때, 자신의 인간적 한계 앞에 방치되는 순간이고요. 결국 수필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기와의 타협이고 자기사랑의 완성이 아닐까 싶어요.
정: 수필르네상스 시대라 할 수 있지만 각 수필문학 단체들과의 교류는 필요하고 소통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반: 지금은 개성의 시대이고 자기표현의 시대입니다. 우리 수필계에도 개성 있는 수필잡지가 많고 수필잡지마다 출신 작가들이 결집되어 잡지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잡지의 전통을 고수한다는 입장은 이해하나 너무 폐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잔치인 셈이지요. 이들을 어떻게 통섭하고 서로 원만하게 교류케 하느냐는 우리의 당면과제라 봅니다.
1년에 한번 있는 수필의 날 행사에 참여율이 높고 활발한 것은 그만큼 교류와 소통의 마당이 필요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참석하고 이동하다보니 교류와 소통에 혼란이 생깁니다. 참여방법에 있어 등단작가로 참여범위를 좁힌다든지 지역별안배를 하여 적정선에서 추진한다면 더 효율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방과 도시의 단체들이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교류하며 세미나를 열고 작품집을 교환하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 한국수필가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반: 그동안 꾸준히 한국수필의 지평을 넓혀온 한국수필가협회의 노고는 지대합니다. 지금은 수필전성기라 해도 좋을 만치 수많은 단체가 있고 수필인구도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필시대에 구심점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월간 한국수필출신작가 뿐만 아리라 전국에 망라한 수필인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수필잡지도 지면을 더 개방하고 세미나나 문학기행도 참여 폭을 더 넓혀야 진정 한국수필가협회의 위상에 걸맞을 것입니다.
정: 여러 가지로 진심어린 고견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변함없이 수필문학 발전에 힘써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약력
반숙자 수필가
충북 음성 출생. 청주 사범학교 졸업, 청주대학행정대학원수료
1981년 한국수필. 1986년 현대문학 수필등단.
음성문인협회 초대회장, 음성 예총 회장 역임
국제 펜클럽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수필문우회, 한국가톨릭문우회, 현대문학추천작가회, 뒷목 문학회 회원, 중부문학, 음성문인협회, 음성수필문학회 고문현재, 음성 예총 창작교실, 대소 주민자치센타 수필 강사로 활동하면서 후배 문학인 양성,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평화랜드에 축 시비를 제막함.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가슴으로 오는 소리》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 《천년 숲》
수필선집: 《사과나무》 《이쁘지도 않은 것이》
문학상 : 현대수필문학상, 한국자유문학상, 음성군민대상문화예술상, 충북문학상,
제1회월간문학 동리상, 산귀래 문학상 외 다수
: 조경희, 허정자, 외국작가, 김시철 펜클럽회장 (모스크바 펜대회)
김용구, 김시현 선생님 (세미나장에서
윤재근, 유경환, 정목일 선생님 (월간문학 동리상 시상식)
반기문 평화랜드 시비앞에서 (반기문총장님 노모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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