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월간 한국수필 6월호 발행인 에세이

권남희 후정 2013. 6. 7. 17:01

 

 

                                발행인 정목일 수필가.편집주간 권남희 수필가 .정기구독 신청 서원순 사무국장 02-532-8702-3   

월간 한국수필 6월호  

촛불을 태우며

鄭 木 日(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협 부이사장 )  

 

 

촛불을 켠다. 전등불 아래서 살다보니 내 초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고 지내왔다. 스위치만 누르면 언제나 밝은 빛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 초는 얼마나 남았는가. 밑바닥에 흘러내린 촛농의 모습도 정갈하지 못하다. 집중력으로 한 방울의 촛농도 허비함이 없이 삶을 불태워 의미의 빛을 만들지 못하고 고통과 고뇌로 일그러진 모습이다.

 

전등불 아래선 삶의 중심을 알지 못하지만, 촛불을 켜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촛불이 선 자리가 우주의 중심점이다. 나는 그 복판에 서있음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거나 존재의 위치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날들이 아니었던가.

 

촛불을 켜놓고 보면 몰랐던 내가 보인다. 한 줄기 빛도 남기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버린 세월의 그림자가 보인다. 한숨과 눈물이 보인다. 비로소 인생 시계에서 울려오는 초침소리를 듣는다. 초침 소리가 쿵쿵 가슴을 울린다. 심장 박동이 호응하여 함께 띄고 있음을 느낀다.

 

살과 뼈를 태워서 초는 타들어갔건만 이렇게 무감각하게 지내왔던 것인가. 400M 계주의 끝자락을 보인다. 이제 남은 거리가 보이고 골인선이 기다리고 있다. 뼈와 살을 태워 영혼을 밝혀야 하리라. 한 방울의 촛농도 떨어뜨리지 않고, 삶의 집중력을 모아 알생의 빛을 밝혀야 한다.

 

촛불 앞에 앉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영원과 이마를 맞대는 순간이며, 남은 길을 성실하게 가자는 다짐의 순간이다. 촛불은 타면서 말해준다.

인생이란 하나씩의 촛불을 태우면서 빛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촛불의 남은 양과 시간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촛불을 켜 놓은 지금 이 순간, 내 영혼 촛불은 무엇을 비추고 있는가.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

촛불은 바람에 펄럭인다. 나는 정신을 모으고 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있다. 삶과 시간을 태우며 밝히는 의미의 뜨거운 빛은 무엇인가. .

 

고인을 추모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는 촛불을 켜는 것을 본다. 촛불은 영혼과의 만남을 안내한다. 촛불은 한시성을 지녔으나, 영원성을 지향한다. 사람의 생애와 삶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한 자루의 촛불이 필요하다. 촛불은 자신의 영혼을 태우며 빛을 낸다. 거짓이나 남을 속일 수 없는 일이다. 정화된 마음으로 맹세를 다짐하는 순간을 갖게 만든다.

 

촛불은 훨훨 춤을 추고, 촛물은 뚝뚝 흘러내린다. 영혼 촛불이 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영육을 태워서 삶의 어떤 의미를 밝히고 있는가? 촛불이 타고 있는 시간, 내 삶의 길을 바라본다. 일생의 초는 얼마나 남았는가. 불꽃과 눈물, 공간과 시간, 영원과 찰라가 만나는 삶의 광경을 바라본다.

 

촛불을 밝히는 일은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여생을 바라보는 일이다. 촛불이 타는 시간동안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태워서, 의미의 불빛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촛불이 켜진 시간, 신성하고도 엄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