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성 수필가 월간한국수필 6월호 인터뷰(2013년 )
월간한국수필 2013년 6월호 인터뷰
영상 매체 시대의 문학의 활로
대담 : 정목일 이사장
일시 : 2013년 5월 17일 오후 2시
장소 : 죽전 신세계 아카데미
정리 :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이사장 : 반갑습니다. 늘 젊은 감각으로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강의와 그림 그리기 외에 특별히 계획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지 근황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손광성교수 : 2011년 3월부터 제주도 서귀포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 년 후 여기 일을 다 정리하고 내려가서 조용히 지내려구요. 4백여 평의 귤밭에 30여 평 되는 감귤 창고가 있는데 그걸 개조해서 조그만 전시실과 작업실을 넣었습니다. 지금은 정원을 꾸미고 있습니다. 7할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나머지 3할은 비와 바람과 흙이 완성하겠지요. 또 한 가지는 세 번째 전시회를 준비 중인데 벌써 몇 달째 허송하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쉰데다가 이일저일 시간 뺏기다 보니 지지부진입니다.
정 : 두 장르를 넘나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어떤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손 : 문학적 발상은 그림에 시정을 불러 넣는 것 같아요. 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사물을 치밀하게 보는 습관이 생기는데 대상에 대한 그런 관찰태도는 글쓰기에서 묘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지요? “시중화요, 화중시”라는 말 말입니다.
정 : 그밖에 다른 계획도 있으신가요?
손 : 예, 수필 낭송회를 활성화 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수필낭송은 공연예술적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지금까지 “수필낭독회”는 많이들 하고 있지만 “수필낭송회”는 없었어요. 낭독을 하게 되면 작품을 읽는데 매어서 동작이나 표정을 자유롭게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하여 공연예술로서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지요. 힘들더라도 작품을 암송해서 노래하듯 하게 하니까 반응이 대단히 좋더군요. 시간도 7분내지 8분 정도 걸려서 감동을 주기에 알맞은 길이구요. 그런 면에서 시낭송보다 수필낭송이 청중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행가는 보통 2절까지 부르는데 7분내지 8분 걸리니까. 그런 면에서도 공연예술로 가능성이 예감된다고나 할까요. 작년에 제자들과 함께 제1회 낭송회를 가졌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정 :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피천득 선생께서 생전에 “손광성의 수필은 한 편한 편이 모두 시”라고 하셨는데, 수필 작법 상 어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신지요?
손 : 비법이랄 건 없고, 저는 수필을 쓸 때 문장 다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입니다. 첫째는 문장의 호흡문제고 둘째는 이미지 문제지요. 그 다음은 단어 선택이구요. 구성이 탄탄해야 하는 건 기본이겠지요. 요새 한국수필은 9할이 서사수필인데 거의가 탄력이 없고 장황한 소설적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압축되고 탄력이 있는 낭창거리는 문장이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한 시적 형상화에 주력하고 있는 편이랄까요? 다시 말해서 리듬과 이미지에 주력하는 편인데 그것이 독자에게 읽는 맛을 주는 것 같습니다. 수필은 소설처럼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없는데 문장마저 탄력이 없고 장황하면 곧 지루하겠지요. 저는 그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정 :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신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후배들에게 회화와 문학 두 길을 겸한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신지 있다면 그걸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손 :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라고 기억되는데, 각 학년 남녀 두 반인 조그만 학교였지요. 제가 5학년 때라고 기억됩니다. 도화시간에 내가 나팔꽃을 그렸는데 여자 반 담임선생님이 보시고는 그것을 가져다 자기 반 칠판에 붙여 놓고 여학생들에게 그걸 보고 그리게 했어요. 어린 마음에 기분 좋았지요. 아마 그때부터 그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 6.25가 나고 50년 12월 흥남철수 때였는데 큰누님과 함께 LST라는 수송선을 타고 피난을 올 때였습니다. 며칠을 배만 타고 있으니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선실에 있는 기물들을 그리고 있었지요. 그때 지나가던 선원 한 사람이 누님보고 이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데 이남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는 굶어 죽으니 그림 시키지 말라고 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중섭, 박수근 같은 분들이 모두 가난에 시달리다 돌아가셨던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취직이 잘 되는 사범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사범대학에는 미술교육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국어교육학과를 택했지요. 그 후 늘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마흔다섯 살 때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정 : 개인전도 몇 번 여셨지요?
손 : 네, 2002년과 2005년 두 번 열었습니다.
정 : <손광성의 수필쓰기>는 아직도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그 외에 한문 고전 수필을 번역하는 등 수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게 하게 된 까닭을 말씀하시고, 나아가서 현대인에게 있어서 문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울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 : 고전한문수필을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 수필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겠다는 필요성에서 나왔지요. 대개 우리 수필을 서양 에세이를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특히 서양 이론서만 공부한 젊은 층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수필작법을 쓰게 된 동기는 지금까지 나온 수필작법 책이 대개 추상적인 설명이거나 자신의 경험담 성격이 강해서 좀 더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수필작법을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해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이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문제는 수없이 논의 된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겠습니다만, 문학의 근원적 목적은 인간성의 탐구라고 봅니다. 현대에 오면서 인간성은 고갈되고 매몰되어 가고 있지요. 그래서 그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고 그를 통해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느 장르보다 문학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에는 치유의 기능도 있고 지적 감동을 주는 기능도 있으며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올바른 삶인가 하는 인생관 내지 세계관도 문학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전철이나 커피숍 등 도시 곳곳을 보면 신문이나 종이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영상매체에 의해 언어 예술인 문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학도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선생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손 : 물론 문학도 변해야겠지요. 요새는 책을 출판할 때 화가들과 합작해서 소설이나 수필집을 출간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말하자면 “글 반 그림 반”인 시대지요. 그런 융합의 수단 말고도 언어예술인 문학은 언어만으로도 영상매체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문학단체 초청 강연에서 <영상매체 시대의 수필의 서술 전략>이란 내용으로 제가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언어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지요. 의미 전달의 기능 이외에 음악적 기능과 회화적 기능이 그것인데, 사람들은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쓰면서도 언어의 의미 전달 기능에만 의존할 뿐 다른 두 가지 기능을 구사하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수필에는 인물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자기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개괄적 설명이나 서사 일변도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예뻤다든가 착했다든가 하는 추상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캐릭터를 살리려면 외양 묘사와 행동 묘사 심리 묘사가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쓰는 사람치고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식 서술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 어떻게 해야 보여주기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묘사 말고도 직접화법을 동원할 것인가 간접화법을 동원할 것인가, 극적 상황 묘사에는 짧은 문장이 효과적인가 긴 문장이 효과적인가 등 구체적 방법을 알아야 이미지를 살려서 글에 현장감과 입체감을 주고 긴박감을 줄 수 있습니다. 언어의 세 가지 기능을 알고 그것을 적절히 구사할 때 독자의 감동을 배가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도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상매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활로를 언어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삽화나 화가와의 공동 작업이 주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은 어디까지나 문학이니까. 그래서 그 방법을 언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떠나는 순간 그건 이미 문학이 아니니까요.
정 : 사회가 발달하고 변화하면서 그 사회에서 꽃피는 문학의 장르도 형태를 달리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수필인구의 급격한 양적 팽창에 대해 긍정적 미래를 짚어 주셨으면 합니다.
손 : 한국 수필도 50년대보다 많이 달라졌지요. 내용면에서 보더라도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문학성이 강화되었고 형식면에서도 짧아지고 있지요. 다시 말해서 현대 한국 문단을 보면 장르 개념이 없어지고 있는 같습니다. 시는 수필 쪽으로 이동하고 수필은 시 쪽으로 이동했지요. 장르란 설명과 이해의 필요에서 생긴 것이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면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읽을 만한 글이 있고 읽을 가치가 없는 글이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한국 수필계가 양적 팽창만 있고 질적 향상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우려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라미드는 밑면이 넓을수록 높이 쌓을 수 있지요.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하층구조가 넓고 튼튼해야 상층이 튼튼해지는 이칩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다 보면 훌륭한 후배들도 나오겠지요. 제 생각인데 50년대보다 2000년대 우리 수필은 많이 발전했다고 봅니다. 전문수필가도 많아졌고 수필의 수준도 높아졌지요. 훌륭한 후배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구요.
정 : 그렇습니다. 아무튼 우리 수필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도 좋겠지요?
손 : 그렇습니다.
정 : 바쁘신데 이런 자리를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추진하시는 일 모두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수필과 함께 행복하시길 빕니다.
손광성 교수와 권남희월간한국수필 편집주간 2013.5. 13 목 죽전 신세계
손 광 성
함경남도 홍원군 보현면 방동리에서 태어나서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월남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고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함. 서울고등하고 동남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제6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장과 제33대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상장을 지냈고, 현재 조선교육문화센터와 죽전 신세계아카데미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맡고 있음.
제16회 현대수필문학상, 제21회 국제펜문학상, 제1회 가천환경문학상 그리고 제11회 현대수필문학대상을 수상함.
수필집 <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 <달팽이>, <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고, 선집에는 <하늘잠자리>가 있다. 이론서 <손광성의 수필쓰기>
화문집 <작은 것들의 눈부신 이야기> 번역서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과 편저가 다수 있음. 개인전 2회를 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