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문학관 (종로구 부암동)
여성신문 2013년 9.7일자 (여성신문의 집필의도로 편집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미지의 윤동주시인과 맞지않을 수 있습니다,)
왼쪽 홍유경 수필가 오른쪽 이수연 회원
저항시인으로 알려졌지만 패미니스트였던 시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헤는 밤을 선물한 문학관 권남희 월간한국수필 편집주간
종로구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 개관소식은 나에게 첫사랑을 찾아낸 일 만큼이나 가슴뛰는 일이었다. 시쓰기를 배우던 30초반 나는 윤동주 시인의 사진에서 애틋한 눈빛과 너무 선량한 얼굴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28살 요절이라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개관 1주년 행사를 마친 여름 비가 쏟아지는 날 찾으니 문학관은 더욱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다. 윤동주시인 생가는 시인이 태어난 만주 간도성 화종면이지만 연희전문문과를 다닐 때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하던 곳이 종로구 누상동이었다. 인왕산 언덕을 오가며 「 별 헤는 밤 」을 지었기에 이곳에 문학관을 앉히는 일도 의미가 크다고 보겠다. 윤동주 문학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뜨거운 애국심을 선물하고 있다 .
윤동주 시인처럼 팬층이 두텁게 형성된 시인도 드물 것이다. 욘사마 배용준만큼이나 여성팬도 많다고 생각한다. 「 별 헤는 밤 」「자화상」김수환 추기경도 애송했다는「서시」를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을 정도이니 그가 살아 있었다면?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윤동주 문학관은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이소진 건축가가 맡아서 2012년 개관하였다. 지대가 높은 청운동 일대에 1974년부터 수돗물을 공급해주던 수도 가압장을 방치하고 있었는데 종로구에서 추진하였다. 문학관에서 핵심은 ‘우물’ 이미지를 살린 것도 가압장에 있던 물탱크를 발견하여서이다.
제 1전시실은 시인채로 마련된 9개의 전시대는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가 기증한 자료들로 시인이 일생을 시간적 순서로 친필원고 영인본도 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가져온 우물 몸통의 나무도 중앙 유리관에 보존되어있다.
물탱크 뚜껑을 걷어내고 하늘을 끌어들인 2전시실은 시인의 「 별 헤는 밤 」첫줄처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시구를 저절로 읖조리게 한다,
열린 우물이미지로 하늘과 바람과 밤이면 별이 쏟아져 들어올 것같은데 벽에 흐르는 오래된 물 흔적들이 작품이 되었다. 쌍둥이 물탱크를 부수지 않고 살린 우물 공간에 드니 마치 내 자신이 윤동주의 가슴속에 들앉은 묘한 기분을 느낀다.
제 3전시실은 닫힌 우물로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이다. 시인의 일생과 사진, 시소개가 영상물로 담겨 사람이 들어서면 센서가 작동하여 벽으로 비춰진다. 아무 것도 없는 높은 천장의 닫힌 우물 제 3전시실에서 영상물을 보고나면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영혼이 너무나도 맑은 한 젊은이가 독립운동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중노동에 시달리며 알 수 없는 주사를 날마다 맞고 마지막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것이다. 나중에 시신을 보았을 때 눈도 감지못한 윤동주 시인은 ‘이럴수가 있나요?’ 그런 표정이었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시인
기독교 집안이면서 외삼촌 김약연이 설립한 학교에 윤동주 시인은 고종사촌 송몽규(나중에 일본유학도 같이 갔다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같이 감옥에 갇힘), 외사촌이며 시인인 김종우 문익환과 공부를 같이했다.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인은 공부를 위해 떠나 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특히나 법대나 의대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과 대립하다가 어머니와 삼촌의 도움으로 연희전문 문과를 입학였으니 마음은 늘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어머니에 대한 시도 여러 편을 썼다. 다 쓰고 버려야 하는 습자지를 어머니는 어디에 쓰나 보았더니 가족들 버선본뜨고 자신이 버린 몽당연팔로 본을 그리는 어머니를 표현한 시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장에 가는 어머니를 보느라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돌아오는 지 보느라 구멍을 낸 「 햇빛바람 」은 어떤가.. 가을 날 서리내리는 저녁 남쪽 하늘을 보며 두 날개를 가진 제비를 부러워하고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립다고 한 「남쪽하늘」등 어머니는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지는 존재이지 않은가.「 별 헤는 밤 」에서 시인의 어머니릏 향한 그리움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머니는 너무 멀리 있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덕에서 느낀 페미니스트 윤동주 시인
문학관 뒤로 나가면 ‘시인의 언덕’ 산책로가 있다. 전망이 탁 트인 곳에서 젊은 시인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기백도 키웠겠지만 시인도 한 인간이었다. 인왕산 자락길을 산책하며 얼마나 많은 그리움과 고향 떠난 고독감을 시로 표현했을까. 고향 명동촌과 소풍장소로 인기있던 용두레 우물터의 그네타던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의 소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창 때의 청년인데 좋아하는 여학생이 없었을까. 평전에는 이화여전 여학생을 흠모했다는 기록도 있다.
100편을 남긴 그의 시에는 빼어난 저항시라고 알려진 「肝간」같은 시도 많지만 누나를 향한 가족애도 컸다. 병원에서 우연히 본, 나비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 젊은 여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가 누워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마음을 기른 시도 있다. 장에서 본 가난한 여인들의 일상을 , 되질하고 저울질하고 자질하다가 가난한 생활을 업고 진 아낙네들이라 그린 「장」시는 자의식강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이타적인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인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차 있었다. 특히 누나에 대한 사랑은 커서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갔가 해가 질 때 들어오는 누나를 해바라기 얼굴로 바라보기도 했다. 윤동주시인은 소년특유의 때묻지않은 심성을 갖고 있었다. 「少年」 시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윤동주다운 시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생략...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얼골--/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사랑처럼 슬픈얼골--
아름다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少年- 시 부분
윤동주 문학관에서 압권은 물탱크를 살려서 만든 제 2전시실과 제 3 전시실이다.
전시 자료가 많지않아도 충분한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는 윤동주 문학관.
우리는 그곳에서 윤동주에 빙의되어 바람과 별을 노래하고 서시를 읖조리며 죄를 생각한다.
아래 사진 은 중국을 다녀오신분에게 도움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