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 2014년 7월호
2014년 7월호 발행인 에세이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
정 목 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여객선 ‘세월호 조난사고’로 국민들은 비탄과 실의 속에 빠져 있다. 가슴에 노란 깃을 단 사람들이 보인다. 실종자들을 찾아냈으면 하는 기구의 마음을 달고 있다. 사망자와 실종자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다. 대한민국의 어른들이 모두 죄인이 되어 탄식하게 만들어버린 큰 사고였다.
안전대책의 미비와 무방비 상태는 전 세계에 수치스런 모습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경제성장의 자부심을 가졌던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사라지고, 우리의 무의식, 무질서, 무책임, 무대책의 실상을 속속들이 확인하게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 허약한 사회안전망의 실정과 생명을 걸고서도 지켜야 할 공중질서와 책임의식이 실종된 공동체의 허약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공범임을 반성하고 안전대책에 대한 방심과 무관심이 불러온 큰 재앙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우리 국민에게 가장 취약점은 줄서기가 아닐까 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공동체의식으로써의 철칙을 말한다.
1912년 4월 14일 영국 사우스샘프턴 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영국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항해 중에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 1,515명이 생명을 잃었다. 2,224명의 승객 중 1,178명이 탈 수 있는 구명정이 비치돼 있었을 뿐이었다. 이 때 보여준 공중질서의식은 너무나 선명했다.
구명정에 탈 수 있는 차례가 명료했으며, 한 사람도 질서를 어기지 않았다. 임산부, 장애자. 노인들이 순서대로 구명정에 올랐으며, 여자와 병약자가 뒤를 이었다. 배에 남아 죽음을 맞아야 할 사람들은 선원들과 건강한 젊은 남자들이었고, 이에 대해 아무도 항변하는 사람이 없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덕률과 질서정연한 줄서기로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영국에선 생명을 걸고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의식이 이미100년 전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일본 국민들의 줄서기도 이미 70년 전에 확립되었음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대동아전쟁 때, 일본 국민들이 생필품을 공급받기 위해 배급소에서 200m씩이나 줄을 서 있다가 공습경보가 울리면 모두 반공호로 피신했다. 공습경보 해제 싸이렌이 울리면 다시 줄서기가 시작되는데, 한 사람도 어긋나지 않게 그대로 복원되곤 했다.
한국인은 줄을 서서 오래 동안 기다리지 못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힘없는 사람만 줄을 서고, 고위층이나 능력자일수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속전속결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줄서기는 권력자와 부자가 앞을 차지하고, 뒤이어 수단꾼과 눈치꾼이 다음 차례이다. 나약자이거나 양심적인 시민은 언제나 줄서기의 끝을 차지하니 위험에 처하면 서민층에서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좋은 나라란 경제지표로만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더불어 잘 사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공중 불문율이 정립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살기 좋고 신뢰받는 공동체가 되려면 어떤 경우일지라고 약자 우선의 질서의식이 수립돼야 한다. 정부와 사회기관과 단체는 ‘빨리 빨리’만 외치며 탈선과 속결주의로 치닫는 한국인의 성격과 삶의 태도를 고쳐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경쟁시대에 남보다 빨리 이루는 것도 좋지만, 졸속과 미완의 틈이 보이지 않게 완벽의 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가 잃은 것은 너무나 많다. 충격과 슬픔으로 정부와 국민이 넋을 잃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세월호의 조난자를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정부나 국민들도 본연의 임무에 돌아가 직분에 충실하여야 한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다시는 이런 끔직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과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가 남긴 슬픔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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