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11월호 2015 합평
수필 함께 읽기를 통한 이달의 수필 합평 월간 한국수필 9월호
월간 한국수필에서는 기존의 월평코너를 다른 형태로 시도한 결과 의외의 호평을 받고있습니다. 회원들의 동참이 높아진 점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독창적인 의견이 있다면 뜻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분(중진이상 .중진, 신인)의 각각 다른 관점과 감각을 기대하며 합평위원 한분이 맡은 매수는 200자원고지 10매 기준입니다. 추천된 세편의 작품 총평, 질문취지에 적합한 평과 함께 문학 안에서의 순기능, 역기능, 특징을 분석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합평에 선정된 원고는 보편적인 평판의 잘 쓴 글의 울타리를 벗어나 소재와 주제면에서 다양성을 고려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합평작품
1.김무룡 <세개의 못>
이경애<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이 역사다>
김태원< 태풍속에 띄운 편지>
합평위원
심정임 (한국수필가 운영이사)
박경옥 ( 동남문학회장역임 )
안혜영 ( 미래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진행 권남희 편집주간
권남희; 김무룡 <세개의 못>은 수필에서 보기 드물게 상징성에서 완성도를 갖추었습니다.
종교적 사례를 문학작품으로 차용할 때는 너무 강한 이미지로 인해 문학적 수용에서
긍정성이 반감되기 합니다. 어떤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심정임: 김무룡<세 개의 못>을 읽고 한 동안 가슴이 묵직했습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주위사람들에게 가슴에 못을 얼마나 박았나, 내가 기억조차도 못하는 대 못 질도 있었는가.’
성서의 한 대목을 인용해서 작품으로 비유 시킨다는 것은 여간한 신앙체험 없이는 그 뜻을 표출해 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가 물위를 걸었다든가 오병이어(五餅二魚)같은 보통인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을 내 세운 것이 아니라 세상사에서 많이 회자되는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처라’ 이 말씀은 너무도 유명하여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 비유의 뜻을 알고 있을 겁니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댈 때 흔하게 쓰이는 인용구이지요.
작가는 어려서부터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힘든 삶을 사신 듯합니다. 혈기 왕성한 20대에 미래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였을까 너무나도 속이 상해 부모님께 하소연한 것이 평생의 대 못질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장년이 된 후에도 건강상 이유로 많은 시련을 겪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평화로운(?)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목마르게 갈구하는 소망이 있으면 신에게 의지하게 되지요. 신실한 신앙생활 속에서 체험한 이야기를 나의 불편함조차도 감추지 않고 진정성 있는 표현에 이 작품이 살아납니다.
대장장이는 예수의 육신에 칠 대못을 제공해서 후회하고 뉘우치고 작가는 부모님의 가슴에 대 못을 박아 후회하는… 육신과 영혼의 차이가 있지만 작가는 글의 전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고백하여 독자로 하여금 대장장이의 뉘우침에 편승시키게 됩니다.
박경옥:
김무룡 작가의 <세 개의 못>은 작가의 젊은 시절 부모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대못 같은 한마디 때문에 평생 가슴 아파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수필입니다. 작가의 의도는 성서 이야기를 통해 또는 종교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달라진 삶을 돌아보고 더불어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주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걸 깨우치게 하려는데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도입부터 성극으로 꾸며진 성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수필의 서론을 종교적 색채를 띈 모노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채우고 나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수필을 읽는 독자는 다양합니다. 기독교인도 있고 불교인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을 수 있지요.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내용이 너무 길면 반감을 갖게 됩니다. 같은 종교를 가진 독자라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진 않더군요. 수필이 체험 문학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잠깐 언급 할 수는 있어도 수필의 반 이상이 종교적 서술이라면 자칫 독자의 외면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문학적 측면에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혜영:<세 개의 못>은 십자가에 박은 못을 만든 대장장이 이야기, 병고라는 못에 박혔던 순간,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이야기 등 못을 소재로 한 세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수필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개인 체험은 묵직하여 읽고 난 후 한 동안 고요히 침묵하는 시간을 갖게 한 글입니다. 도입부이자 이 글을 쓰게 한 모티브가 된 녹슨 세 개의 못 이야기는 신앙이 없는 내게도 울림을 주었습니다. 다음 단락에 병마라는 못에 박힌 시간의 이야기를 배치한 구성은 좋습니다. 클라이맥스가 되는 마지막 단락을 가져 오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종교 잡지에 기고함직한 신앙 과잉의 문장은 문학 잡지에는 덜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위를 약간만 낮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못이 박힌 이야기를 지나 자신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경험담을 쓴 부분은 독자의 심금을 울립니다.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등록금을 면제 받으려고 하류 대학을 간 죄로 취직이 안 되어 어려움을 겪을 때,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그 일이 떠올라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렇듯 수필은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지요. 척추 질환으로 할미꽃이 되어 산 이야기는 무게를 느끼게 하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써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들어 팔았던 녹슨 못으로 인해 예수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알고 통곡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내가 무심히 박은 못 때문에 누군가는 피를 흘리게 됨을 암시한 것이지요. 말이라는 못을 조심해야 함을 깨우쳐 주는 교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권남;. 이경애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은 재외작가의 작품으로 이민생활의 특수성과 ‘애국’ 두 가지를 품고 있습니다. 재외국민의 애국심은 글에서 종종 나타납니다. 관념어 나열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접근이 감동을 줄 것같습니다. 어떤지요
심정:이경애<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 지금 나라 안에서는 한국사 재 편찬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외국에 살면 조국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지요. 안타까운 소식이 있으면 걱정스럽고 좋은 소식이 들리면 어깨가 쭉 펴지면서 자랑하고 싶고. 잠깐의 외국여행에서도 한글 간판과 광고를 보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들의 뿌리라는 것이 인식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거지요. 우리세대(나라의 광복을 보고 6.25전쟁을 겪고 1960~1980년대의 고난과 격동의 시기를 거친)는 나라 또는 민족이라는 단어에 더 간절한 염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작가가 말했듯이 식민지, 전쟁, 가난을 이야기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 듣듯 시험지 답안지 외우듯 읽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이유에도 속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보면 그리 만만치는 않지요.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지나왔습니다.
평자의 욕심으로는 기성세대의 눈(작가 본인)이 아닌 자라나는 청소년(딸)의 눈높이로 외국에서 다양한 민족과 같이 어울려 공부하는 환경이므로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라든가 현재의 동아시아에 갖고 있는 생각들을 서술 했다면 좀 더 색다르고 개성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 합니다. 작가가 표현한대로 남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한테 우리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올바른 한국사 책이 나와 해외에 거주하는 이민2세들에게 정확한 한국역사를 알게 해 줘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박경:이경애 작가의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 수필에는 비록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지만 후손들이 좀 더 강하고 올곧게 자라서 세게 속의 위대한 민족으로 빛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현재를 잘 살아야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요. 일본이 남긴 역사야 말로 정말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그들도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애국심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일지 우리 어른들이 진정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제기 하면 어떨까요. 목마른 세상을 적셔줄 따뜻한 감성의 인격자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되기를 우리 모두는 소망 합니다. 머나 먼 이국땅에서 내 나라의 역사를 다른 나라 선생님께 배우면서 가지게 된 아이의 생각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런 아이에게 작가는 어떤 이야기로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심을 심어주었을까요. 애국이란 어떤 것이라는 관념적인 주장보다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이 글에 드러나 있다면 좀 더 자연스런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안혜: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은 딸의 고교역사 시간에 있었던 사건을 쓴 재외 작가의 글입니다. 미국의 수업 시간에 가해국인 일본 교포 학생과 피해국인 한국 교포 학생이 함께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발표를 하는 상황은 이민자가 아니고는 겪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같은 동양인으로 친하게 지냈는데 역사를 배우게 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되짚어 보게 되고, 역사가 단순히 흘러 가 버리는 강물이 아님을 알게 되는 사건이 의미가 있었을 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역사와 민족과 세계를 생각해 보는 작가 의식의 발로로 이 글을 쓰게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조국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 보고 미래까지 염려하는 애국심이 물씬 느껴집니다. 대의를 품어 보는 가슴 벅참을 이해는 하겠으나 관념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한 경향이 있네요. 사건의 무게가 컸기에 주제도 거창해졌으리라 봅니다. 일상을 넘어선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감동을 주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네요. 신선하고 귀한 재료로 바로 샐러드를 만들지 말고, 곰삭혀서 두고두고 먹을 장아찌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권남;. 김태원 <태풍 속에 띄운 편지>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산문형태입니다. ‘긴장을 놓고 부담없는 읽기’와 설명적 언어나열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심정:김태원<태풍 속에 띄운 편지>. 모자지간에 다정하게 여행 다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여행하는 것은 종종 봐왔지만 아들과의 여행은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부치고 싶어 하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며 빗속을 가르며 바닷가를 드라이브 하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는 감성이 풍부하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기 형식처럼 하루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모호합니다. 어머니는 느린 우체통을 통해 1년 후 쯤에 편지를 받았으면 합니다. 그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 때까지도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그 여행지를 추억하고 싶은… 아마도 이런 상상으로 어머니는 느린 우체통이 필요했을 겁니다. 사흘 후에 받은 편지로 실망한 어머니의 목소리. 이것을 주제로 삼아 어머니의 일생과 앞으로의 여생, 그리고 작가와의 추억 등을 엮어 나갔다면 좀 더 색다른 글이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 어머니들의 일생을 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쓰기에 충분 합니다.
박경:김태원 작가의 <태풍 속에 띄운 편지>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스런 나들이가 드라마의 안 장면처럼 상상이 돼서 미소가 지어집니다. 바다가 보이는 까페에 앉아 어머니와 아들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모습은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요. 비바람을 뚫고 바닷가 우체통으로 달려가 편지를 부치고 사진을 찍는 모습도 아름답게 비춰지네요. 일 년 후에나 받아 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에 부치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는 또 얼마나 감성적이고 소녀 같으실까요. 사흘 만에 어이 없이 날아든 편지로 기대와 설렘이 싱겁게 무너진 사연도 재미를 더 합니다. 이 수필은 어머니의 청으로부터 그 청을 이루게 해주는 아들의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지고 있어 편안한 글입니다. 늘 무언가에 쫒기는 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복잡하게 얽히거나 무언가 답을 요구하는 글을 읽으면 마음이 더 산란해지기도 합니다. 숲속의 산책길을 걷듯 마음이 차분해지는 서정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안혜: <태풍 속에 띄운 편지>는 앞의 두 글에 비해서는 가볍고 경쾌한 신변 이야기라 읽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일기 쓰듯 풀어 가 읽기는 쉽지만 긴장감이 약한 면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써 넣은 일은 참 소중한 경험이지만 에피소드 나열에 그쳐 아쉬움이 있네요. 게다가 엽서가 금방 도착해 버렸으니 편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 등 후반전을 쓸 것이 없어져 더 단조로운 글이 되고 말았네요. 어머니와의 관계나 손편지에 대한 기억 등을 더 생각해 보고 조금 더 사색할 수 있는 글을 썼으면 어땠을까요? 딸이 아니라 아들인데 어머니를 위하여 귀한 시간을 만든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어머니와의 여행을 꿈꾸어 본다면 이 수필은 문학의 교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 의미 있는 글이 되는 것이지요. 문학은 이렇듯 효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문학이 영원해야 할 이유를 알게 합니다.
권남:. 간단한 총평과 함께 개인적 견해에서 굳이 한 작품을 선정한다면 어떤 것이 될는지요.
심정: <세 개의 못>은 성서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차용해서 작가의 아픈 마음을 진솔하게 잘 그려 나갔습니다. ‘꽝 꽝 꽝… 오늘도 우리는 무심히 못을 박는다. 가까운 이웃인지도 모르고’ 끝맺음에 울림이 옵니다.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 나라의 아픔도 역사요 영광도 역사입니다. 지나간 일들을 올바로 알아야 미래를 준비 합니다. 올바른 사관으로 한국사가 새롭게 편찬되어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물려줬으면 합니다. 넓은 곳에서 넓은 시야로 우리의 역사를 다양한 민족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들어 보고 싶군요.
<태풍 속에 띄운 편지>. 주말이면 어머니 곁으로 가서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같이 여행도 하는 작가의 효심에 감동합니다. 글 속에는 불필요한 설명들이 있는데 자칫하면 글의 긴장감이 감소하고 지루함을 느낍니다.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은 구지 나열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글쓰기의 기법을 익히면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작가의 여력을 믿고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박경: 종교적 체험을 다룬 <세 개의 못>은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겨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의 지나간 역사를 거울삼아 좀 더 강하고 미래지향적 사고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글입니다. <태풍 속에 띄운 편지>는 어머니와 아들이 가진 비오는 날의 데이트를 편안하게 그린 수필입니다. 모두 다 좋은 작품이지만 한 작품을 꼽으라 하면 저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태풍 속에 띄운 편지>에 한 표를 던집니다.
안혜:<세 개의 못> <지나가지만 남겨지는 것> <태풍 속에 띄운 편지> 세 편은 모두 작가가 보거나 듣거나 겪은 체험을 쓴 글로 수필이 자기 고백의 문학임을 증명해 줍니다. 인생 여정 중 한 순간이 글의 꼭지가 되어 주었지만 그 꼭지를 붙잡고 거쳤을 오랜 ‘사색이라는 발효 과정’의 고통은 글을 써 본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지요. 세 작품 모두 짧거나 긴 시간 동안의 체험을 고통 어린 사색과 버무려 결국은 잘 발효된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네요. 세 편 모두 수작이나 인생 전체를 관통한 아픔을 고백하고 상징성에서 완성도를 갖춘 <세 개의 못>에 한 표를 던집니다.
3개월 동안 빠듯한 시간에도 열심히 합평에 참여해주신 심정임. 박경옥. 안혜영 님께 감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