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새 바람을 꿈꾸다
권남희
이른 아침 문틈으로 들어오는 살바람의 냉기冷氣에서 봄의 정기를 맡는다.
봄바람은 처녀바람이라고 한다. 다른 계절과 달리 품으로 파고드는 맛이 유달라서일까. 처녀바람을 집안으로 끌여들여 머물러있는 묵은 공기와 바꾸어본다. 깨진 얼음장 사이로 올라오는 강물의 촉감처럼 봄 기운의 바람은 온 몸의 세포를 깨워 날을 서게 한다. 저녁 늦게 맞는 늦바람과 전혀 다른, 새기운을 받는 상큼함 때문에 새바람을 찾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안에 있다가 밀려나간 묵은 공기도 바깥을 돌아 어느 집 문틈으로 들어갈 때는 새바람이 될 것이다. 바람의 미묘한 순환성에서 신선한 변화를 기대하는 인간의 한 습성을 확인한다.
산이 보이는 곳으로 이주한 후 아침이면 베란다로 향한다. 바람의 낌새를 찾아 앞쪽으로 보이는 산자락에서 나무들의 흔들림을 훑는 것도 , 일찍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남녀의 옷차림에서 산바람의 흔적을 찾는 일도 일과가 되었다.
뉴스에서는 성질 가슬한 ,꽃샘바람의 녹녹치않은 하루를 예고하고 있다. 꽃샘 추위와 난류亂流가 생급스럽게 서울거리를 휘젓다가 꽁무니를 물고 늘어지면 옷입기가 마땅치않다. 전날 준비해둔 옷이 종잡을 수 없는 바람과 함께 소용없어 진 탓에 다시 옷장 앞에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바람 저 바람피하느라 옷깃을 여미며 걷는 빌딩 숲에서 소소리바람을 느낀다. 살 속으로 기어드는 매운 바람의 맛은 겨울보다 봄이 제격이지만 바람든 애인의 변덕과 맞닥뜨리는 순간처럼 곤혹스럽다. 봄바람은 돌풍, 광풍, 황사바람까지 몰아와 굴침스럽게 굴면서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애태운다. 갖가지 바람 속에서 꽃은 피어나고 사람들도 바람 속을 헤집고 꽃구경을 다닌다. 꽃바람을 따라 여의도에 가면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꽃길이 있다. 꽃잎이 눈처럼 내려 거풋거리는 꽃바람 속에 잠시 서서 횡재라도 한 기분을 맛본다.
다시 바람을 앞세워 길을 나서면 한강에 다다른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강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한강이다. 한강의 물살을 보고있노라면 바람결을 따라 작게 나울대거나 제법 크게 넘실거리는 물살을 볼 수 있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는데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바람은 한강변에 밀집된 고층 건물 때문에 한강 수면만을 따라 흘러갈 뿐 새바람은 도심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다고 한다.
새 기운으로 솟아나야 할 봄날 마음대로 들고나지 못하는 고층빌딩 숲의 바람을 생각하며 새로운 돌풍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