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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소설가 특강 정리

권남희 후정 2007. 5. 2. 21:43
 

 

 

조정래 소설가

        2007년 4월 25일 수요일 오후 3시부터 /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집.서울 

        속기정리  : 권남희수필가

 

부득부득 이빨을 갈아서 다 닳아질 정도로 하십시오. 그러면 응답이 있을 겁니다.

나는 소설을 쓰느라 사회와 완전히 단절한 채  20년간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소설을 썼다. 치열한 정신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  대가는 꼭 옵니다. 내가 오늘 쓴 소설은 어제 내가 쓴 소설의 적이다. 소설 쓰는 일은 문장도 중요하지만 인물과 싸우는 일입니다.   자기를 넘어서야 하며 지친 영혼을 깨워서 읽게 해야 합니다. (질문시간의 답변 정리 )


강의시작 :

이 좋은 봄날 여기 뭐하러 오셨습니까?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없고 해서 필요없는 게 문학입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 했을 때  산수풀듯이 가르쳐주실 것으로 믿고 갔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4년을 허송세월하면서 ‘문학은 대학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혼자하는 고민이다 ’를 터득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얻은 게 있다면 시인 김초혜 와 군대영장이었습니다.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이기에 무엇을 쓸 것인가 오늘날까지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석사과정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충고하기를 “ 빨리 깨달아라” “ 빨리 단념해라” “ 혼자 고민해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얼마나  모른다는 전제하에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것은 철학적으로 말하기보다 문학적으로 질문하고 구체적 삶을 쓰고 예술적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작가도 아는 만큼 쓸 수박에 없지 않습니까 . 역사, 갈등, 모순 등을 쓰되 그것이 특정한 상황이나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의 최대공약수와 최소공약수를 쓰는 것입니다.

어떤 세계나 유명작품은 민족 고유의 특성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공감하는 보편성이 있지요? 문인을 정의할 때  문인들은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의 산소다 . 오로지 작가에게만 준 것은 언어의 힘입니다. 미술과 음악이 당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때 문학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지요.  인간의 발명품이 수천만가지가 되지만 그 중에 3대 발명품이 정치, 언어, 종교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인류의 정신사를 이끌고 갈  인류 3대 발명품입니다. 그 중 두가지는 필요악입니다.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정치와 종교입니다. 언어만 필요악에서 빠졌습니다.          .     문자라고 하는 것은 영원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인류의 스승이라고 칭했어요. 그렇다면 문학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스승인가 ? 쓴 자들은 칭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들이 시를 쓰려고 하는가? 하지만 미당 하나만 남고 모두 사라집니다. 인류, 누구의 이의가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시대의 산소다’ 평가를 받아야겠지요. 그 시대의 모순이나 갈등에 대해, 비인간적인 것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거나 저항하고 반성하는 그것을 써야합니다.   사회적 사명감‘ 시대의 산소 그것이 없다면 가치도 없다라고 봐야지요.

문학은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오락은 문학의 기능 중 하나이지만 모든 문학이 오락은 아닙니다. ‘사람 인 人  ’을 보면 서로가 기대고 있어요. ‘서로 더불어 함께 ’ 인간이다 . 소설이나 시, 수필이든  인간의  삶에 대한 갈등.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게 문학이지요.

통찰과 직시를 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처럼 8시간 자고 작품을 쓸 수 없습니다.

8시간 노동을 위해 인간은 최선을 다하고  문학이 그들의 영혼 속에 100분이나 있을까 말까 한 세상입니다.  국가 통계청을 보면 주 5일제 이후 2일동안 무엇을 하나 ? TV, 휴대폰, 인터넷에 3시간에서 4시간  그리고 책과 신문에 7-8분입니다 . 이것이 문학이 서 있는 입지입니다. 문학에 대한 시간이 적다. 긴 세월에 걸쳐 영혼의 작업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서를 하는 시간을 엄청나게 빼앗아갔어요. 이 문제를 모두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있지요. 라디오가 있기 전 문학은 왕이었습니다. 라디오 이후 문학이 쇠퇴하고   라디오는 영화와  칼라 TV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는 부도직전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놀랍게도 문학이 왕이었던 시절 10만부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 천만부 시대가 왔습니다 . 대중교육을 많이 시켜서 지적 수준이 높아졌는데 위기를 극복해서 더 높은 수준의 문학을 하려고 해야 하지요. 문학의 위기는 일시적입니다 . 인터넷과 휴대폰이 주는 전자파폐해가 치매를 불러오고 병명도 모르는  뇌질환이 엄청나게  오고있습니다.

 일반적 현상 속에서 고유의 문제, 토양의 문제가 있습니다 . 이 시간은 흩어집니다.

운명과 숙명이 이 땅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습니까? 풀리지 않는 절대다수의 숙제 . 60억명의 인구 중 하필  여기에 태어났을까? 우리의 숙명이고 운명입니다. 철저하게 잊지말고 반추하면서 되새겨야 합니다. 그 속에서 인류 보편적적인 진실을 획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땅입니까 ? 만주 대륙의 끝 맹장처럼 붙어있는 게 한국입니다.

5천년 역사에서 천 번의 외침을 당했으면 5년에 한번입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은  우리의 DNA는 동기가 새겨있어 강골입니다. 세계 3대 지독한 민족이 이스라엘, 베트남. 한국입니다 .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생존의 본능이지요. 베트남도 중국, 미국 의 침략을 받았지만  미국과 싸워서 이긴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우리도 6.25 전 쟁 때 300만-400만이 죽었습니다.  아직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고 평화협정을 맺고 그 속에서 문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가야할 길이 드러납니다.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인간은 끝없이 고민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 땅의 고유성, 토속성을 생각하고 엮어서 소설을 쓰는 것이 올바른 인식입니다.

어떤 평론가는 조정래는 연애소설을 못 쓴다 고 평하는데 오히려 영광입니다.

문학의 기능에서 오락기능을 확대했을 때 연애는 부분입니다. 연애를 가지고 무엇을 보여줄것인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모두 연애가 있습니다. 춘향전 능가하는 연애도 있고 단순한 사랑, 또  남남북녀의 사랑은 통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설명을 못합니다.  평론가가 하면 되지요. 평론가는 선택해서 독자들에게  가교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

태백산맥에 시가 많이 나오는데, 조정래시도 나오지요. 아내 김초혜시인에게 감수를 받앗습니다. 소설가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시도 넣고 희곡도 넣습니다.

소설 ‘아리랑’에서 3,1운동 전야에 희곡방법을 동원하여 극적인 효과를 도입합니다. 그러한 역사 의식속에서 태백산맥을  썼습니다.  저의 등단작품이 “누명”인데 미군부대에서 일어난 일을 썼습니다  -반미정신이죠.  ‘오 하느님“은 일제 시대에 군인으로끌려간 사람이 소련군 포로가 되었다가 독일군이 되고 다시 미국포로가 되고 소련으로 소환당해서 총살당하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불과 21살입니다. 300여만 명이 2차 대전 때 군대에 끌려가서 그런 식으로 죽음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 민족을 떠나서 강대국들의 횡포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전범국가 하면 독일과 일본이라고 말하지만 또한 소련을 악이라고 하지만 진실을 들여다보면 강대국은 약소국에게 모두 악이다 이런 논리가 성립됩니다.

태백산맥을 쓰고 빨갱이 혐의를 받아 12년간 수사를 받고 비로소 2년 전 ( 2005년)무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우익단체에 가면 ‘조졍래 빨갱이 아냐?’ 대놓고 말합니다 .

무엇 때문에 태백산맥을 써서 공격받느냐? 나라는 분단되어 있는데 통일을 말로만 하고 정치적 용어로만 쓰면서 반통일의 세월을 50년 살아왔습니다 . 통일하지 말자는 이야기이지요. 두 개 집단의 충돌과 갈등이 �이지 않는 속에서 그들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중간 매개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소설문학에서 분단문학은 한국의 주류라는 인식으로 70%가 분단소재소설을  써왔지만 중앙정보부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맴돌 뿐입니다. 국가보안법 안에서 분단을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않는 작품을 쓰는데 극복해야 합니다. 태백산맥 전에는  나도 그렇게 썼습니다. 그것이 미완성적이었기 때문에 다시 태백산맥을 썼던 것이지요.

그것을 풀어서 평론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을 넘어서 통일로  가야하는 생각으로 태백산맥을 썼고 6.25는 분명 북침이지만 전쟁을 통해서 서로를 분단 60년 동안 공격하지만 서로 넘고  솔직히 드러내고 잘잘못을 따지고 믿음을 쌓아야 통일로 한발자욱 다가가는 것입니다. 


경찰의 잘못, 군인, 미군의 잘못 , 빨치산 그들에게도 슬픔과 괴로움이 다 있기에  인간애를 쓰고  모두 써야하지요. 절대 신성시한 경찰도 잘못은 있다 이렇게 태백산맥에 썼는데 난리가 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역사적으로 밝혀지고있지않습니까? 미군의 노근리 학살사건, 경찰의주민학살사건, 역사에 모두 있지않습니까.

저를 빨갱이로 고발했을 때  조항이 500가지였습니다. 나중에 다시 아리랑 쓰다가 조사받을 때 줄어들었고 한강 쓸 때 다시  120가지로 줄어들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검찰이 기소하면서 말하기를 객관적 자료를 일주일안에 대라고 하는데 ‘국가공문서’ ‘납본필 책’ 그 이외의 취재나 체험은 소용없다 그랬지요.

‘한강’을 쓰다가 포스트잇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 사다가 책에 줄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그렇게 책 19부를 싸들고 가니까 검사가 깜짝 놀라면서 ‘이걸 언제  읽으라고 하냐’ ,묻더군요. 내 책을 읽지도 않고  기소를 한 검사였습니다.

 결국 무혐의 처리가 되었습니다. 

한 작가가  한 시대를 살면서 산소역할을 하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역사가 100% 옳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50점 정답입니다)뿐 만 아니라 홍금택?(덕)도 있습니다. 1990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후에 해금되어서 책에 나왔지요. 청산리 골짜기에서 월한산 까지 독립연합군이  협공을 해서 2천명을 2일동안 쓸어없앴습니다. 홍장군이 사회주의자여서 우리자료에 없었고 김좌진장군도 북에서 사료에서 없앴지요  , 지배하기 위해서 식민지 역사까지 은폐하고 진실을 반밖에 못보게 불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통일이 되면 통일의 역사가 다시 씌여집니다. 그러한 사회가 수없이 많습니다. 나라응 잃고 청산리 전투 이후 상해임시정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보면서 질문을 가져야지요.  우리는 무엇을 했나? 답이 없습니다. 모르니까...모르는 것을 찾아서 가는 것 ... 광부가 곡괭이를 가지고 캐러가는 것이 문학입니다 .

1990년 아리랑을 쓰기위해 취재하러 중국을 갔는데 그곳 박창욱 교수가(연변) 남조선에서 쓸 수 있겠느냐? 묻길래 태백산맥을 쓴 사람이다. 그 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언젠가는 남쪽 학자들과 같이 역사를 복원 할 것이다,했습니다. . 1995년 아리랑 끝나고  그 작업을 한다고 기사가 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아리랑을 읽으면 역사적 사실이  혁혁하게 나옵니다 . 역사에서 지워버린 청산리전투이후 중국의 사회주의자 투쟁 . 그중에 연대 (150명정도) 사단이 김일성이다.(아리랑에 나옵니다) 그 때 고발당했습니다. 김일성이 가짜라고 가르쳤는데 . 어떻게 써야하나? 그 때 필이 나가지않았습니다. 일주일 정도를 고심한 끝에 (김일성이 보청고습격사건을 동아일보. 조선일보 호외를 구해서 ) 책에다 그랬다더라.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총독부입장에서는 ‘습격’이지만 우리 민족에서 볼 때는 ‘진공-나아가서 쳤다’ 이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 저를 고발한자가 그것을 못보았다니...

‘여순반란사건’만 보아도 명명에 모순이 있지요. 여수와 순천이 모두 반란입니까? 이것은 시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소설에서는 “여순사건”이라고 썼는데 고발자가 못보았습니다. 이제 모든 사회학자들이 ‘여순사건’이라고 통일하지요.  태백산맥을 볼 때 가장 재미있는게 ‘작가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입장에서 책임을 못진다 ’입니다.  지문만 책임을 집니다. 당신이 썼잖아? 이렇게 반박하지만 왜 나에게  태백산맥을 분석해보면, 우익이 사회주의를 비판 하고 사회주의가 우익을 비판하고 분쟁이 같이 나옵니다.  사회학자들이 여순사건으로 쓰도록 한 것 . 바로 소설의 힘이 그렇습니다.   고막은 꼬막으로 써야 정서가 맞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벌‘이지만  ’뻘‘ 이 맞습니다. 문화를 모르면 국어사전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진공’이라고 쓰면서 수없이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수난의 괴로운 역사인데 기록에서조차 또 수난을 당하도록 방치합니까. 이런 현실을 알면서 어떻게 연애소설이나 쓸 수 있습니까.

물론 제나름의 당위성과 실존적 이유로 나름의 문학을  하지만 저는 제나름대로  해 나갈것입니다. 배고픈 자들에게 밥 한끼를 줄 수 없지만 정치하는 자가 거짓을 할 때 감시 감독하고 고발하는 게 문학입니다. 분노와 증오를 감정적, 비이성적으로  표현하는 자체를 문학으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증오와 분노에도 이성과 논리가 있습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갖지 않으면 문학을 할 수 없지요. 비인간적 저항심과 청년의 마음을 가져야 문학을 합니다 . 현대소설이 80년이 지나면서 많이 사사로운 이야기로 집중되지만 문제는 문학은 얼굴이 다르듯이 다양해야 합니다.  예술이 가진 아름다움, 내면의 그 무엇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남겨지고 나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는 길입니다. 2007년 신간 ‘오 하나님’은  하루에 20매씩 한달 동안 쓴 작품입니다.  (600매) 

제가 말한 문학의 길입니다. 40년 동안 문학을 해 온 결과 말씀드리고싶은  부분입니다.          -

맺음-

질문 :

1. 자유사상과 전체주의(제약된 사상)관계의 결합이 가능한 것인지요?

  답변: 우상화된 사회의 문제를  자유사상에서는 적절히 소화시키지만 신격화된 사회에서는 도저히 깰수없는 부분 때문에 작품을  할 수 없다. 사회주의가  왜 몰락했습니까? 내 소설 ‘인간연습’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사회주의가 없습니다. 중국, 베트남, 모두 자본주의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봉건건주의입니다.  중국에더 1급. 2급 작가가 있습니다.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 단체주최로 어린이를 위한 병원 개원식에 갔는데 더 이상 그들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은 절대 안 됩니다. 문학인이 아닌 그들입니다 . 우리나라에는 국가에서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작가는 없습니다. 문학은 인간을 긍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비판기능을 상실한 북한이나 사회주의에서는 인류를 감동시키는 작품이 안나옵니다.     

2.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은 어떻게 창조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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