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이규형 (영화감독)
친구 아버님 장례식에를 갔다. 의외로 아주 밝은 분위기이다. 모인 사람들끼리 공통으로 했던 말은 아버님이 잘 살고 계셔서 오늘 이렇게 ‘ 산 자들의 축제’를 만들어주셨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릴 때 보았던 친구 아버님은 아주 훌륭하게 살고 계셨다. 문화사업을 잘 하고 계셨는데 그 중에도 문학서적들을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도록 갖가지로 노력을 하셨다. 가족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돌봐주어 자기 능력을 찾아 제대로 사회에서 한 사람몫을 하도록 최선을 다 하셨다. 훌륭한 아버지로 훌륭한 사회인으로 마지막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오랫동안 잘 사시고 후회없이 가셨다. 장례식날 느낀 게 ‘이렇게 살다가야 되는 거구나’ 라는 감회다.
일본에 살면서 느낀 것은 일본 장례식 은 참으로 다양해서 우리처럼 검은색 분위기 일색이 아니라는 것, 재미있게 존경받으며 잘 살다가신 분의 장례식은 커피향이 나고 노란색의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는 분이 뒤에서 보고 행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잘 살다가신 분을 억지로 통곡하며 침체된 검은 색 일변으로 가야되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피할 수도 없다. 죽음의 공포. 두려움, 슬픔, 상실감 등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훌륭한 위인, 존경받던 인물,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 모두가 한 세기를 못 살고 죽지 않았던가. 문제는 잘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잘 죽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잘살다 가는 것도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인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서 정답은 무엇인가. 나 자신 어릴 때 갑자기 죽음을 생각하다가 무서워서 잠자다 엉엉 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 하나 하나 세상을 떠나며 그때마다 느끼는 비감과 인생의 허탈감은 말도 못하게 크다. 특히 한창 나이에 죽은 지인의 빈소에서 느끼는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크게 응어리져 사라지지 않는다. 잘 살다가야 되는데... 한숨이 나오고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 차에 이즈음은 죽음에 대해 나름대대로 평정심을 찾았다. 그냥 하나님께 맡긴다. 하나님 사람으로 살다가면 그것이 잘 살다가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천국 티켓을 받을 수 있게 살다가면 그것이 잘 살다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종교가 틀려 나름대로 그곳에서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슬람에서 ‘천사’들은 알라신이 가장 사랑해서 부인 일곱과 살게하고 가장 큰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자살테러, 인간폭탄을 아무 두려움없이 시도하는 것은 순전히 순수한 신앙이 있기에 가능하다.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들 역시 똑같은 논리다. 잘 살다 죽는구나 , 생각하며 갔을 게 틀림없다. 내가 ‘천사’ 나 ‘순교자’는 못되지만 하나님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다 어느날 간다면 그것이 삶인 것이다. 최소한 그렇게 살지 않다가 가는 것보다는 훨씬 밝고 아름다운 죽음일 것같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새삼 눈물겹다. 스무살 나이에 전장에서 죽어간 젊은이들 , 굶어죽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갓 태어나 유아기에 죽는 경우가 선진문명 그룹 유럽에서까지 3분의 1인 시대가 있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판단한 겨를도 없이 그런 죽음으로 인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지금 현재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 역시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잘 죽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선택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이고 행복이다.
약력 : 서울출생.한양대 졸업. 영화감독‘ 청블루 스케치’로 데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청춘스케치’ ‘DMZ비무장지대’ 외 다수. 스포츠서울 도쿄 주재통신원 . 수상 ‘ 기독교 문화상 영화부문 감독상’ ‘라디오 단파상’
2007년 한국수필 6월호에 실렸습니다.
'잊혀진 게절' '모닥불' 등 3천곡을 작사한 박건호시인의 소개로 만난 자리에서 염체불구하고 원고청탁을 했다. 시원하게 써주겠다고 하더니 육필원고를 보내주셨다. 감사드립니다. 워드정리 권남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