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수필작품
鄭 木 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1. 교과서와 문학작품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은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는 학습 대상과 전범(典範)이 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고 오래 기억된다. ‘교과서’란 학교의 교과교육을 위하여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한 도서를 말한다. ‘교과’란 교육과정 안에 제시된 교육내용을 학문 영역 또는 교육활동 영역별로 세분한 것으로, 교과서는 이들 각 교과를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합습할 수 있도록 편집하여 기본 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따라서 교사에게는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으로 그 나라의 교육관이나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전통적 교육관에서는 문화유산을 전수하기 위한 자료적 의미에서 주로 학문. 지식의 체계만으로 제작되었으나, 현대 민주 사회에서는 개인생활과 사회발전에 필요한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생활경험의 체계도 발전하여, 그 나라의 국민교육에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즉 교과서를 통하여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며,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배우게 된다. 교과서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인 동시에 그 나라 국민정신의 형성사에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전통성을 계승하는 데는 국어와 국사교육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특히 민족 언어와 문학을 다루는 국어교육은 민족의 단합과 공감대를 조성하고 번영과 발전에 핵심이 된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은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접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전범적인 효과가 있어서 ‘명작’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2. 교과서에 실릴 작품의 요건
교과서에 실릴 문학작품의 요건은 무엇보다도 교육과정에 맞아야 하며 바람직하고 교육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 규범에 따라야 한다. 특정한 종교적 신념과 가치, 갈등의 빌미와 동기를 줄 문제 등은 제외해야 마땅하다. 부정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존중하며, 개성과 개인적인 가치보다 공동체정신과 가치가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절망이 아닌 희망 메시지를 전파하고, 과거지향이 아닌 미래지향의 태도를 지닐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교과서에 실릴 작품이 전범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명작이라는 개념으로 동일시할 순 없다. 문학작품으로써 교육적 효과와 문학성을 동시에 갖는 작품도 있을 것이지만, 교육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덴 효과적이나 문학성이 미흡한 작품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문학성이 탁월한 작품이리라도 교유적인 효과가 높지 않거나 보편적인 가치척도에 벗어난 경우엔 교과서 수록용으론 부적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교과서에 자신의 작품 게재를 거부하는 작가도 생겨나고 있다. 개인의 고유한 창작인 작품을 교육과정과 교육 덕목에 맞추기 위해 부분적인 수정을 요하는 경우도 있다.
3. 제7차 교과서에 제시된 문학 교수․학습 활동의 특성
제7차 국어 교과서의 교수․학습 활동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국면에서 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제7차 국어 교과서는 문학 작품을 단순히 문학 작품으로만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내용 영역을 가르치기 위한 텍스트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다양한 언어 양상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문학, 국어지식의 여섯 영역에 국한시켜 제한적으로 적용하던 기존의 관행을 깬 것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언어 현상은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체계 속에는 공통적인 토대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관점은 문학에 대한 중요한 접근 태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학습 활동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문학 작품은 언어 자료 및 활동의 도식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문학일 뿐이므로, 다른 언어 영역과는 다른 형태의 학습 활동과 내용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4. 교과서 문학 제재 수용의 바람직한 방향
교과서 내적인 면에서의 방향성은 주로 문학 제재 수용 양상과 관련하여 모색해 볼 수 있다. 제7차 국어과 교과서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으나, 그것이 좀더 명문화될 필요가 있다.
첫째, 문화적 문식성을 기를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선정하여야 한다. 문화적 문식성은 기존의 읽기 또는 기본적 문식성 기능을 포함하는 복합적 문식성이며, 학생들을 발달시키는 보다 높은 수준의 문식성 기능이다. 문화적 문식성은, 교육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또는 뉴미디어에 의해서 커뮤니티화 되는 현대인들)에 의해 공유되는 ‘텍스트 해석의 구조’를 아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차원에서 문학 작품 선정에 대한 세부 기준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둘째, 감동을 주는 문학 작품을 선정하여야 한다. 감동의 편차는 교수자와 학습자가 다르며, 학습자간에도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문학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감동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고 작품 선정 기준을 마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감동의 기제들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학습 활동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교과서에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셋째, 다의적(多意的) 독서가 가능한 문학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다의적 독서는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의 편향성을 막기 위한 독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해석의 다양성이 언제나 이해와 감상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어야 하며, 학습자에게 이러한 원리를 내면화하기 위해, 그러한 학습이 가능한 작품을 수록해야 한다.
넷째, 초인지 학습을 유도하는 문학 작품과 학습 활동이어야 한다. ‘초인지’는 학습자 스스로 인식하는 방법을 아는 것으로 학습자가 어떤 문제 상황이나 과제에 어떻게 반응해 왔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사고를 의미한다. 문학 작품이라고 해서 초인지 학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학 수업에서 초인지 능력은 학습자에게 더욱 필요한 능력이다. 문학 작품의 해석과 감상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암기를 통한 단순 이해로는 진정한 감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학습자가 반복적인 교수․학습을 통해 초인지 능력을 기른다면, 제도교육이 끝나는 순간에도 문학 학습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5. 교과서에 실린 수필작품과 과제
우리 교과서에 실린 수필작품은 대개 193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문학 제1세대 수필가를 비롯한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수록된 작품을 분류하면 국어, 문학, 독서 교과서 등 3종류이다. 이 중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18종에 수록된 수필작품은 다음과 같다.
도상의 문학-출발의 시(유종호) : 천재하248
돌층계(유경환) : 문원상319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신영복) : 상문상274
먼 곳에의 그리움(전혜린) : 디딤돌하296 민중하212 케이스상296 / 문원상317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김태길) : 중앙상336/바퀴벌레는 진화중(김기택) : 블랙하289
사이버 오디세이 : 블랙하81/사회학적 상상력의 명암(조남현) : 교학하314
생태학적 상상력(김영무) : 디딤돌하48/세계를 통찰하는 힘과 시 쓰기(오세영) : 교학상281
세기가 닫히는 저 장려한 빛에 잠겨-석모도(김병종) : 교학하265
아리랑과 정선(김병종) : 블랙하285/욕설의 리얼리즘(신영복) : 천재하334
우리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이상옥) : 블랙하308/웃음에 대하여(양주동) : 교학상134
인간 파괴를 고발한 예술가의 양심-피카소와 엘뤼아르(이가림) : 교학하60
잃어버린 동화(박문하) : 문원상313/자장면(정진권) : 중앙하246 / 두산상261
<진달래꽃>과 문학의 본질(이어령) : 민중하246/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 /문원상323
거룩한 본능(김규련) : /중앙상43/글을 쓴다는 것은(김태길) : /케이스상294
나그네 길에서(법정) : /금성상27/내가 갖고 싶은 것들(정목일) : /케이스상72
내 인생의 책(이재정) : /중앙상31/ 누나(이정록) : /민중상164
눈의 사상(조연현) : /케이스상319/님의 침묵과의 만남(최동호) : /두산상18
닭갈비(이상현) : /중앙상342/돌베개(장준하) : /민중상174
들사람얼/야인정신(함석헌) : /두산하376/말과 사람됨(이규호) : /두산상244
매화(김용준) : /천재상37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한비야) : /중앙하245 교학하335
베르그송의 웃음론-웃음으로 인한 즐거움과 그 저의(김재인) : /교학하18
새로 읽는 고전, 문학 속의 그 사람(이인화) : /블랙하316
새 삶의 문턱에 선 당신에게(신영복) : /민중상172
생각을 바꾸면(박완서) : /민중상167/설해목(법정) : /천재상43
수필의 철학성(김태길) : /천재상365/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임동헌) : /교학상252
시의 숲에서 세상을 읽다(김상욱) : /교학하332/아름다운 영혼의 옹호(최원식) : /두산하300
야인 정신(함석헌) : /금성상387/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 : /천재상281
엿단지(김성배) : /케이스상46/영혼의 모음-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법정) : /금성상17
영화와 문학의 상상력(김성곤) : /두산하315/유리창의 감각(이숭원) : /두산상123
60년대의 참여시 운동(김재홍) : /교학하223/은근과 끈기(조윤제) : /케이스하15
일기(이병기) : /천재상 /전후 소설의 현실 인식(한점돌) : /교학하232
집에 대하여(박이문) : /문원상28/폭포와 분수(이어령) : /블랙하214 상문상281
풍경 뒤에 있는 것(이어령) : /천재상366/‘향수’의 시인 ‘정지용’(신경림) : /교학하59
현대시에 나타난 ‘고향’과 ‘어머니’(한계전) : /교학상59
화첩 기행 2(김병종) : /교학상93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 교과서의 수필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코스모스를 생각한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김병종의 ‘아리랑과 정선’, ‘세기가 닫히는 저 장려한 빛에 잠겨’,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 신경숙의 ‘감자 먹는 사람들’, 서우석의 ‘말과 음악, 그리고 그 숨결’,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상석의 ‘외할매 생각’ 등이 수록되었다.
교과서의 수필작품을 살펴보면 타 장르와는 달리 수필가의 작품 외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와 역사학자, 화가의 수필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필이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쓸 수 있는 대중적인 효용성이 있음을 뜻한다.
교육은 시대적 변화와 발전을 이끌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교과서의 문학작품은 수필을 비롯하여 시와 소설 등에 있어서 현대 작가들의 폭 넓은 경향의 작품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해방 전후 문인들의 작품을 대폭 수용하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다. 농경시대 100년간의 변화가 오늘날엔 한 달간에 변할 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속한 교체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작품을 통한 덕목으로도 애국, 애족, 권선징악, 전통문화의 계승, 도덕심과 윤리의식, 준법정신, 공동체의식 등에서 차츰 환경보호와 실천, 과학생활, 창의, 협력, 봉사, 개척, 희생, 나눔 등의 가치를 확산하고 현대 생활에 조화를 이루는 가치 덕목을 실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국제교양과 질서준수, 다문화의 수용, 환경, 공존, 인권, 평등, 소통, 화해, 용서, 나눔, 공동체에 대한 평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 지향과 실천이 담긴 가치를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다양한 변화와 질서를 구축하며 미래를 개척해 나갈 가치 덕목과 세계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삶의 정신과 실천을 담아야 한다.
문학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상상력과 창의력, 심미감과 정서감을 길러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학습 평가나 입시문제를 통해 문학작품을 획일적인 해석으로 그쳐선 안 된다. 다의적이고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도출되도록 함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입시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평가하는 방법을 피하고, 특정한 사고와 획일적인 정답만을 인지하는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다. 또한 문학교육은 읽기와 쓰기를 바탕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신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응용력과 실험력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이 너무 오래 된 것들이 많으며, 시대의 발전과 감각에 뒤떨어진 가치나 생활모습을 보인 작품들이 없는가를 살펴야 한다. 현대에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들의 작품들이 교과서에 일정한 비율로 수록할 필요성을 느낀다.
교과서 수필 작품의 현황과 특징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현대수필을 중심으로-
정 태 헌
1. 중. 고등학교 국어(문학)교육의 지도목표와 기본방향
중. 고등학교 청소년 국어 교육은 학습자의 창의적인 국어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문학 교육은 부수적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하위 영역의 과목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인간의 삶이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와 인식의 내용을 언어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문학 작품을 통해 학생들의 문학 교육이 이루어진다. 중. 고등학교에서 문학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학생들의 문학 능력은 작품 수용 능력과 창작 능력을 뜻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창작보다는 감상과 이해 능력 지도에 더 치중하고 있다. 창작 능력 지도는 일부 동아리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교실에선 기존 작품을 모방하여 개작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국어(문학)교육의 지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제7차 국어(문학)교육의 기본방향은
1.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2.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3.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4.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5. 민주 시민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을 육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즉 현대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개성과 가치 추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며 자신의 능력을 창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데 있다. 이러한 국어(문학)교육의 기본방향에 맞추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각 장르의 문학 작품을 교과서에 수록하여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게 문학교육의 큰 틀이다. 이에 따라 교과서 수필도 이 지도목표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수필을 교과서에 수록하여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그 가치를 배우고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교과서 수필은 이와 같은 국어(문학)교육의 지도목표와 기본방향에 의해 선택 수록된 작품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성과 교육적인 효율성이 내재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장르의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교과서 수필도 청소년을 교육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유목적적인 문학적 텍스트라고 할 수가 있다.
2. 중. 고등학교 교과서(국어. 문학) 편집
교과서에 어떤 글이 실리고 어떤 글이 빠지게 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교과서는 당대에 필요한 국민을 가르치는 책이다. 시대가 바뀌면 요청되는 인간상도 바뀌는데 시대성과 무관하게 늘 같은 것만 배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여 해방 이후 지금까지 7차례 교육과정이 바뀌고 다시 개정 교육과정이 나오면서 수록 내용은 계속 변화. 진화하고 있다. 즉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교과서 수필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특히 수필은 학생들에게 영향이 크다. 이는 수필이 우리 생활 속에서 퍼 올린 현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쓴 글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서는 유명인사의 성공담, 막연하게 자연을 예찬한 내용, 중산층의 나른한 행복론, 맹목적인 가난 예찬 등은 물론이고 지극히 주관적 신변담론,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 고답적이고 현학적인 내용, 현실이 배제된 낭만적 풍류, 국수주의적 애국심, 잘못된 복고풍,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삶 등의 내용이 실렸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수필을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거나, 문학을 감수성의 과잉인식으로만 보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문제점을 놓고 어느 수필학회는 워크숍에서 교과서 수필 작품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교과서에 수록하는 수필 작품은 청소년들이 올바른 수필관을 정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매우 신중히 접근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그동안 교과서에 실린 수필 작품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과서가 앞으로 수록해야 할 수필 작품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인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작품을 선정할 때는 수필이 뭔지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의 감수나 의견 수렴이 있어야 하며, 가능하면 교과서 수필 작품은 수필가로 정식 등단한 작가의 작품이 실려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지당한 말이라 여겨지지만 이런 주장도 깊은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10년도 중학교 국어 교과서 23종속에 수록된 수필은 국어교육 전문가들이 그 많은 수필 중에서 가려 뽑은 작품들이다. 좀더 본격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 국어.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을 살펴보면, 국어교과서는 국정으로 상. 하 두 권으로 되어 있으며(2011년부터는 검인정으로 바뀔 예정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만든 책이다. 그러나 문학 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심화 선택 과목이다. 현행 18종 문학 교과서의 특징은 우선 대학교수와 현직 교사의 협력 집필이 늘었다는 점이 엿보인다. 그중 2개 출판사에서 발행한 교과서는 필진 중 교수가 절반을 차지했다. 이렇게 보면 대학교수 주도의 교과서는 전체 18종 가운데 12종이다. 대표 저자는 1개 출판사를 제외하고 모두 대학 교수가 맡고 있다. 이는 집필진 구성과 전체 기획, 출판사와의 교섭 등은 교수가, 실제 집필은 교사가 맡는 분업 체제가 대체적인 추세다.
집필진은 종전 국문학 전공의 대학교수 중심 집필에서 문학 교육을 전공한 교수들과 현직 교사들이 가세한 필진 구성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하나 실제 수필을 전공하거나 수필을 전문적으로 쓰는 수필가의 참여는 거의 없다. 이는 교육적 차원의 문학 연구 역량의 축적과 현행 교육과정이 학습자 활동 중심의 문학 교육을 추구한 것과 관련이 깊다. 현재 제7차 교육과정에서 수필의 면모는 많이 쇄신되었지만 아직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요자의 문학적 수요와 반응보다는 공급자의 기준과 교육적인 목적의식에 의해 수록 작품을 결정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수필의 본질적인 모습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즉 교과서 수필은 문학성보다는 목적성을 더 의식하며, 표현보다는 내용을 더 중시하는 면이 있다. 바꿔 말하면 수필이 학생들에게 문학적 장르로서의 가치의 수용과 향유보다는 지은이가 제시한 가치 있는 삶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는 교육적 자료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여 타 장르와는 달리 교과서 수필은 수필가의 글뿐만 아니라 비문학인의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중학교 23종 국어 교과서 속 수필 작품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3.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작품의 내용
(수록 작품은 생략함)
- 일상인의 삶
새로 개편한 2010년 새 국어 교과서에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많다. 즉 삶으로부터 건져 올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최다 빈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국어 교육과정 속에 ‘경험을 적은 글을 읽는다.’라는 성취 기준에 따른 결과라 여긴다. 그 성취 기준에 도달하려면 지은이의 경험 속에서 나온 진솔한 글을 읽어야 하기에 생활 속의 경험을 다룬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 모성애
어머니는 세련된 어머니, 많이 배운 어머니, 부자 어머니가 아니다. 하나같이 촌스럽고 못 배웠으며 가난한 어머니다. 그리고 자식의 성공을 위해 닦달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묵묵히 지켜보는 조용한 어머니다. 왜 이런 어머니들이 교과서에 등장할까. 이는 오늘날 그런 어머니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 가는 천연기념물을 복원하듯이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복원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 앞에 보여주고 있다.
- 자주 수록되는 작품 지은이들
자주 등장하는 지은이는 법정, 장영희, 윤오영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글로 멋을 부리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삶의 진실을 간결하게 쓴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치열한 작가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수필에 전념했다는 점이다. 법정은 열정이라는 눈빛으로 우리 시대와 허위를 순식간에 벗기고, 장영희는 장애자로서 자신의 아픈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윤오영은 간결하고 함축미를 지닌 글을 통해 수필의 진수를 보여준다.
- 교과서 수록 최다 빈도와 최장 수록 작품
수록 최다 빈도의 수필은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 최장 수록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글월’(심훈)이다. 안네의 일기는 외국작품이기에 일람에 수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소녀인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 민족이 비극적 현실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로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55년 동안 교과서에 실린 편지글이다. 이 작품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에 딱 맞아서 공감대를 이룬 작품은 흔치가 않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잃지 않는 편지의 문체에서 오는 감동이다.
- 독서수필과 기행수필의 대거 출현
책읽기의 소중함을 주제로 한 수필을 대거 출현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 능력이 낮다는 것은 생애 능력 하나를 상실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기에 21세기 교과서에 독서수필은 딱 어울리는 제재라 할 수 있다. 또한 기행수필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경험을 담은 글을 읽는다.‘는 성취 기준일 것이다. 23종 어느 교과서 하나 기행수필을 빠뜨리지 않았을 정도이다. 국내 기행부터 외국 기행까지 골고루 실려 있다.
- 삶의 가치와 바람직한 자세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며 가치 있는 삶의 자세를 다른 글이 많은 것은 가치 있는 보편적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의 바람직한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교육적 의도의 반영이라 하겠다. 하여 교훈적인 주제가 많이 보이나 문학적인 관점으로 소재가 처리돼 학생들이 스스로 느끼도록 하여 여운 있는 수필이 되고 있다. 그외 인식과 비판이 다음 빈도를 차지하며 예찬과 동경, 삶의 예지와 철학, 향수와 여정, 감정의 표백 순으로 주제별 빈도를 보이고 있다.
- 지은이의 분포가 다양
문학인(수필가, 소설가, 시인, 동화작가, 평론가)이 지은이 분포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음은 전문인(의사, 축구선수, 법조인, 컴퓨터전문가, 연기자, 산악인)이며, 언론인과 학자, 종교인과 독립운동가 등 지은이의 분포는 다양하다. 수필을 교과서에 소개하며 수필가의 글이 전체 1/5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양한 분야와 영역의 글을 소개한다는 면도 보이지만, 수필가의 글이 교과서 수필로 크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는 수필가들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기획과 편집진의 의도와 교육과정의 목표와 방향 및 경향에 따른 면도 없지 않다.
4. 고등학교 국어(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작품의 내용
- 다양한 내용과 문학성의 강화
수록 내용과 주제를 살펴보면 가치 추구와 의미 발견, 삶의 자세와 올바른 정신, 예찬과 동경, 인식과 비판, 삶의 예지와 철학, 감정의 표백, 향수와 여정 등 다양한 내용들이 수필 작품 속에 담겨 있다. 또한 비문학인보다는 문학인의 글을 다수 수록함으로써 고등학교 국어(문학)교과서는 중학교 교과서보다 문학적인 가치의 영역을 더 넓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가치와 의미의 형상화
시련을 극복한 인생의 가치와 사물과 현상에 내재한 의미의 발견을 중요한 창작의 모티브로 삼는 글들이 많다, 가치와 의미의 형상화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사물에 내재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주려는 의도이다.
- 삶의 올바른 정신과 자세
지은이의 경험이 체험으로 형상화된 보편적 공감이나 공명을 주는 글들이 많다. 지은이의 체험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배우고 삶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찰하여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을 기르게 하고자 함이다.
- 예찬과 동경
지은이들이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적이며 소중한 가치를 예찬하고 이상적 가치를 동경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나 그리움에 대한 동경, 강인한 생명력, 보편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은 학생들에게 무한한 이상과 꿈을 심어줄 수 있다.
- 인식과 비판
사유수필 쪽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 사물이나 세계에 대한 인식과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식의 태도와 비판적 시각을 길러준다. 속물적 세태, 왜곡된 현실의 비판을 통해 사회 현실에 대한 올바른 비판적 안목과 인식의 역량을 길러주고자 한다.
- 긍정적 시각과 감정의 표백
사물과 현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과 긍정적 눈길을 통해 애정과 예찬, 품위 있는 인간 삶의 모습, 바람직한 언행과 정신, 긍정의 기능과 가치, 소망하는 삶의 모습 을 보여주고 있다.
- 향수와 여정
기행적인 글을 통해 드넓은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많이 다루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원대한 이상과 포부 및 자세를 심어주고 있다.
- 문학인의 글이 다수 점유
중학교 수필에 비해 고등학교 수필은 수필가의 글이 많이 점유하고 있으며, 소설가 시인 등을 합하면 문학인의 글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그외 학자 교육자 화가 종교인의 글도 다수 눈에 띈다.
- 글의 다양한 성격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글이 다수이며 비판적이고 교훈적인 글이 그 다음을 점유라고 있다. 그외 해학적 풍자적 논증적 설득적 비유적인 성격의 글도 자주 눈에 띈다.
- 정서적 향기
교과서 수필은 작품을 읽고 감상해서 얻은 결과를 중요시하고 있다. 즉 교과서 수필은 이제 지식 위주에서 감성 위주의 교육으로 옮아가고 있다. 하여 보편적 글, 생활인의 진정성이 엿보이는 글, 공명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 사유의 분위기가 있는 글, 정서적 향기가 있는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5. 중. 고등 교과서 수필의 일반적인 경향
교과서 수필 작품에는 읽는 이의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학생들이 주목할 수 있는 사건이라든지,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든 격동적이고 다채로운 삶의 상황, 감동적인 담론 등 다양한 내용에서 느끼는 재미들은 적지 않다. 이러한 수필들은 대체적으로 진실하고 감동적인 요소, 소박하고 진솔한 경험, 공명이나 공감을 지닌 소재들이 대부분이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가치 추구
교과서 수필은 청소년의 정신적 건강과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교훈적인 내용의 소재들이 많다. 즉 긍정적인 삶과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를 다룬 내용을 교과서 수필은 요구하고 있다.
- 삶의 진솔한 내용
서사적 줄거리를 갖춘 수필이 많다. 즉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보다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삶의 내용을 줄거리로 하여 담고 있다. 단순 구성이지만 감동적이며 진실한 체험이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교훈성이 있는 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감동적인 일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다룬 글들이 많다.
-진실성과 공감력을 지닌 글
교과서 수필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의식이 문학성보다 더 앞서며 내용이 표현보다는 앞선다. 즉 세련되고 기발한 문장 표현보다는 삶의 진실성과 소통의 공감을 수필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보편적 가치 중시
교과서 수필은 개인의 신변 담론이나 주관적인 경험보다는 보편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가치를 다루고 있는 글들이 많다. 이는 수필이 신변잡사에서 벗어나 인식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인 가치 추구와 체험의 공명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길이는 대체적으로 짧음
길이는 200자 원고지 12매 내외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구성은 대부분 단순 구성이며 상징이나 비유 등 시적 표현이나 기교보다는 보편적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과서에서 수필의 길이는 비교적 갈수록 짧아지는 경향이다.
6. 타 장르 작가 시인 및 비문학인들이 쓴 산문(수필)의 영향
우리나라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교사가 제시하는 ‘시, 소설, 수필, 희곡’이라는 4분법적인 문학의 장르 구분에 의해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수필을 문학의 한 장르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 실제로 수필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면 ‘수필 제재’는 문학 영역의 교육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제재라기보다는 다른 영역, 특히 읽기 영역의 제재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제재가 수필교육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학교육의 제재는 교과서를 벗어나 더욱 확장되고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교과서가 교사와 학생에게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점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과서 수필의 선택은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타 장르 작가 시인 및 비문학인들의 산문이 청소년 수필 교육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신변적인 경험담을 단순 서사 구조로만 보여준다든가, 허약한 신변잡사에 머문 글이 걸러지지 않고 수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소설과 시를 쓴 후 여기나 후일담 정도로 쓴 산문(수필)이 서점에 범람하거나 출판사의 기획 출판으로 홍보돼 학생들이 그게 수필의 본질인양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일부 소설가 시인 및 비문학인들의 산문(수필)은 우려스럽다. 이런 산문(수필)을 읽고 학생들이 수필 장르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에 큰 서점들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비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산문(수필)집들에는 산문 정신에 위배되어 있는 것이 꽤 여럿 있는데, 그 책들은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에게나, 성인 독자들에게 무엇인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하나 공허한 내용이 많다. 마치 우리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무관한 내용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는 타 장르 작가 시인 및 비문학인들의 산문(수필)들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미문으로 우리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으며, 그 언어에는 현실적인 삶의 냄새가 별로 배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어떤 변화의 계기도 마련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잠 못 이루는 밤’에 사람들을 잠시 감상적인 환상의 세계로 이끌지만, 현실과 마주하면 독자들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고독, 방황, 우수, 낭만, 출발, 여행, 사색, 그리움, 사랑, 고뇌, 연애 등 추상적인 이미지들만의 나열로 인간이 없는 글, 구체적인 삶과 생활이 없는 글, 화려한 수사적 잔치들만 난무한 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 미화된 체험의 과잉 포장, 시적인 추상성에 급급하거나 화려한 미문에 그친 글, 철철 넘치는 미숙한 감상과 서정, 분해된 사고나 이미지의 파편이나 조잡한 모음 등으로 인해 문학적 분별력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이 적지 않다. 이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정통수필이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7. 교과서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수필은 진주를 찾기 위해 그 주변을 털어내는 일이지, 진주 위에 보자기를 씌우는 작업은 아니다. 즉 치장이나 덧칠보다는 간결하고 진솔한 체험적 감동이 보편화되었을 때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 수필로서 합당하다. 교육과정의 기본방향에 맞추어 교과서 수필이 되기 위해서 검토해 보아야 할 요소로는
1. 우리말을 잘 부려 썼으며 어휘가 적절하고 어법은 정확한가.
2. 생활이나 체험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의미 전달이 명징하고 평이한가.
3. 구성이나 형식에 무리가 없고, 주제와 제재의 연결이 긴밀하게 통일성을 이루 고 있는가.
4. 지은이의 삶의 태도와 자세가 청소년에게 유익하고 적합한 내용인가.
5. 제재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주제는 선명한가.
6. 수필의 정신과 태도(유머와 위트, 비판정신, 자기 성찰 등)가 잘 드러나고 있 는가.
7. 내용이 진실하며 올바른 가치와 건전한 비판 및 긍정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가.
8. 내용이 지은이의 깊은 통찰력에 나온 것이며 일반화된 보편적 가치인가.
9. 소재가 일상생활에서 취한 것이며 가치 있는 삶의 자세를 유발할 수 있는가.
10. 국어(문학) 교육의 기본방향을 잘 반영한 내용인가 등이다.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교과서 수필은 수많은 글 중 가려 뽑은 글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효용론적인 관점에서도 사회적으로 문학적으로 지명도 있는 지은이의 삶의 자세와 체험이 제재가 된 글이기에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삶을 꾸려 가는데 많은 유익함을 줄 것이다. 본고에서 중. 고등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작품 전체를 소개하지 못하고, 초등 국어교과서와 대학 교양국어에 실린 수필 작품을 다루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누구든 진실한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들이 알아볼 것이고, 편집자들의 눈에 띄어 교과서 수필의 지은이가 될 것이다. 더불어 교과서를 만드는 기획. 편집 필진들도 좋은 수필을 가려 뽑는 신중한 수고와 문학적 안목 또한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만이 수필의 전범이라고 여기거나 문학적으로 성공한 글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교과서 밖의 수필일지라도 문학적. 교육적 가치가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보다 더 좋은 글들이 도처에 많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
약력
‘月刊文學’(98년)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협 회원
수필문우회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
광주문학상 대표에세이문학상 수상
저서: ‘동행’ ‘목마른 계절’ 외
참고 문헌
1. 중.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교사용 지침서’(교육인적자원부)
2. 중학생을 위한 ‘수필교과서’(주/ 교학사)
3. 고등학교 ‘현대 산문의 모든 것’(주/ 꿈을 담는 틀)
참고 사항
본 원고는 대표에세이문학회 2010년 하계 문학세미나 발제용인데, 원본 분량이 길어서 수필 작품 소개는 생략하였으며, 원본 내용을 보고자 하는 분은 ‘한국디지털도서관’ 검색란에서 ‘정태헌’을 치면 홈페이지로 연결돼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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