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필집

박성숙 수필집 < 우엉 캐는 날 >

권남희 후정 2012. 3. 13. 11:51

 

                             박성숙 수필가 ( 충북괴산 출생. 수필과 비평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운현수필 동인 .

                       수요시 동인.   수필집 < 은구비> < 우엉캐는 날>  등 2권 와 공저 다수        

현대인에게 《꿈꿀 권리》를 일깨운 박성숙 수필가

-Gaston Bachelard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선 넘어로-

권남희 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박성숙의 수필세계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소박한 낙원’이다. 온유한 긍정의 힘이 강하게 살아 일단 그의 가슴으로 안기는 물질과 사상과 언어들은 조촐한 낙원을 이룩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의 노래와 함께 사랑받고 향기를 품게 된다.

수필가 박성숙은 수필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거기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기까지 하니 수필쓰기에서 조금이라도 게으름 부리는 태도를 용서하지 않는다. 타인에게는 따뜻한 품성으로 늘 베풀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멀어져가는 시력으로 수필을 위해 판화가처럼 글자를 자판위에 한 자 한자 새겨나간다. 의지 약한 사람은 벌써 핑계대고 포기했을 일이다.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필에 필요한 글자를 찾아내는 장인 박성숙은 인쇄공이 언어들을 찾아 심는 그것처럼 수필적 언어들을 추려내어 글 작업을 한다. 바늘 하나로 웨딩드레스 사업을 해오던 끈기와 정열과 마무리 정신이 수필에서도 살아나 언어의 바늘을 들고 다닌다.

박성숙의 수필 60편에서는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의(1884- 1962) 향기가 풍겨 나온다. 모네의 정원에서 수련을 찾아 물의 이야기로 펼쳐가는 힘 .샤갈의 고향이야기를, 앙리 드 바로키에 조각을 보며 ‘ 인간성의 피가 통하고 있는, 빨갛게 피로 물든 심장이 드러나네’ 같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를 떠올렸던 바슐라르의 감성을 생각하게 한다.

박성숙의 수필 정원에도 물질에 대한 몽상이 있고 풍경의 담론이 있으며 샤갈적 환타지 이미지가 꿈틀거린다. 박성숙의 작품에서 물질들은 새롭게 탄생한다. 그는 일상을 작품으로 조각하는 힘이 강하다. 모네가 그린 그림 ‘수련’이 인상주의 대표 꽃이 되고 그것은 다시 바슐라르의 언어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박성숙의 수필언어로 재탄생하여 아름답게 펼쳐진 일상들은 많다.

박성숙 수필작품에서 본질적 화두는 ‘위로’이다. 위로는 보편적으로 상처받은 타인을 위한 선물이라 판단하지만 자신에게 선물이 되는 위로도 있다. 먹기나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 일, 칭찬, 자신에게 투자하기 등이다. 문득 자신에게 외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간, 사람들은 안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인간의 고민 ‘왜 사는 것인가’ 를 시작하는 것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시작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을 찾아간다. 박성숙 수필가는 위로의 재주도 뛰어나 평생교육원에서의 합창과 글쓰기와 텃밭 가꾸기를 통해 지혜롭게 자신을 보살피고 있었다.

작가는 작품쓰기에서 한 가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장수사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공동제를 던지고 가족해체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위안을 주는 가족사랑 테마글로 ‘가족이 희망이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그는 또한 부엌일이 없어지는 사회 현상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친지 ,동료들과 나누어 먹는 따스한 풍경을 자주 만들어낸다. 음식은 소통을 원하는 언어로 그에게서 편안함을 갖는 것이다. 일본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키친’작품에서 이미 가족이 해체된 일본사회에서 인간이 위로받을 곳은 부엌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그런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외식이나 배달. 간편식. 인스턴트 식품위주로 가고 있는 대세를 막을 수 없다.

부엌은 고독감과 향수병을 치유해줄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품성이 따뜻한 박성숙수필가는 이미 그러한 아픔을 진단하면서 손 맛의 부엌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 초상화가 있는 창작의 텃밭

「우엉캐는 날」은 20여년이 넘은 그의 수필쓰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는 듯하다. 텃밭을 가꾼 지 20여년이 되어가는데 끊임없이 배워야하는 농사일에 대한 애환은 즐거운 고민이다. 엔돌핀 도는 글쓰기나 농사나 이제 ‘꾼’ 을 자처해도 될 만한 세월을 보냈지만 겸손한 그는 서툰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진심을 토로하고 있다. 끼적인다고 문학수필이 되지 않는 것처럼 심는다고 모두 농작물로 자라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전문작가 활동에 모험을 걸지 않는 문학 활동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귀농이 아닌, 텃밭 보살피는 도시인으로의 초상화는 우리의 모습이다. 절기를 놓치지 않는 시작과 추수까지 마무리를 해야 농사꾼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우엉 캐기에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른 봄 멋모르고 심어놓은 우엉을 캐는 작업이 이렇게 힘이 들고 공사가 커질 줄 몰랐다. 파들어 갈수록 땅이 굳어있어 몇 시간 째 땀을 뻘뻘 흘리며 파내고 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엉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 거두어들일 때를 생각 못했으니 텃밭에 농작물 가꾸는 일이 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진다. --중략--

텃밭을 가꾼 지 20여 년이 넘어간다. 작물 가까이 비료를 주어서 죽어버린 때도 있었고 거들 때를 몰라 다 키운 채소를 모두 뽑아버린 적도 있었다.-중략-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명년에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 어느새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농사는 힘들지만 참으로 매력은 있다. -우엉 캐는날-

농사짓는 일, 수필을 쓰는 일, 출산하는 일 모두 생각보다 쉽지 않고 때로 끔찍한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까맣게 잊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괴테도 말했다. “ 시인과 아기를 낳는 여자들은 같다. 여자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나면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면서 또 출산을 반복하는 것이나 시를 완성한 시인이 절대로 시를 쓰지 않겠다고 해놓고 다시 붓을 드는 것이 그렇다 .”

어떤 일이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결실도 크다고 본다. 등산을 보면 알 수 있다. 제 아무리 힘든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해도 알아주는 등반가는 따로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난코스를 스스로 개발하여 목숨을 내놓은 채 그 길로 등정을 마쳐야 인정을 해준다. 이미 남들이 지나간 길로 따라 올라가는 등반코스는 죽은 길인 것이다. 예술창작은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는 일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혼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박성숙 수필가는 3관왕이다. 몇 번 출산의 고통을 통과했고 창작의 고통을 받아들여 벌써 두 번째 수필집을 내고 있고 농사를 지어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수확의 기쁨까지 누렸기 때문이다.「일을 벌려놓고」「최후의 한 잎까지」「밭이랑에도」「강낭콩」등의 작품에서 느끼는 작가의 농작물 관리 애로사항은 예술가의 창작의지로 겪는 어려움과 똑같다. 화가는 잃어버린 고향을 캔버스에 건설하고 작가는 자신의 텃밭에, 원고지에 부모가 살았던 그 따스한 정서를 되찾고 싶어 수없이 고행을 하는 것이다.

곧은 심지의 등불 켜는 수필가

박성숙의 내면세계 중심에는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의 곧은 심지가 등잔불을 밝히는 것처럼 생의 한 가운데 심어져 있다. 맏손녀 사랑이 각별했던 할아버지의 정신은 늘 박성숙 수필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릴 적에 받은 영향은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의 부지런함과 곧은 품성, 너그러움 등이 그것들이다. 일제치하의 할아버지가 대처하는 느긋하며 당당한 자세나 곰방대를 만들어주기를 단칼에 거절하여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기보다 지혜롭게 시간을 벌면서 물리치는 방법 등 할아버지는 어찌 보면 우상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으로 온 동네 어른으로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기에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을 쓸고 동네를 쓸면서 무언의 가르침을 주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일상에서 아이들은 보고 듣고 느끼며 자라난다. 걸음에서, 눈빛에서,기침소리로, 존재함으로 할아버지는 집안의 큰바위 얼굴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대추나무 곰방대는 일본순사들이 가장 탐을 냈다. 공연히 술도 사오고 담배도 사나르며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병을 고쳐주고도 술 한잔을 마다하는 할아버지가 일본순사들이 놓고가는 물건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몇 달을 오가고 나면 영락없이 마도로스 파이프(곰방대)를 하나 만들어 달라 굽실거렸다.하지만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들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고운 빛깔의 대추나무가 없다면서 늘 대답을 회피했다. --중략----

얼마 안 있어 해방의 함성이 들리고 일본 순사들은 모두 쫒겨갔다. 할아버지께서는 다시는 곰방대를 깎지 않았다. 물고 다니시던 곰방대도 소죽 끓이는 아궁이에 깊이 던져 버렸다.

- 대추나무 곰방대-

쓰레질 소리는 어려서부터 귀에 익은 소리다. 그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할아버지의 비질 소리는 부드러워 빨리 일어나라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흙길을 쓸고 계셨으니 그 느낌이 포장된 시멘트 길을 쓰는 것과는 달랐다. 안마당에서부터 시작해 바깥마당을 쓸었고 산모롱이까지 말끔히 쓰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할아버지의 비질 솜씨는 그림같았다. - 쓰레질 소리-

태어나면서 탄생목을 갖는다는 것은 큰 행복을 선물받는 일이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이사를 해야 하는 현대인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아이의 나무는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 결혼을 할 때쯤 가구목으로 변신을 하면서 그 또한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 집 떠난 두려움이나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고독감을 탄생목으로 만든 가구를 보면서 일생동안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나무를 받는 마지막 세대였지 모르는 박성숙 수필가에게 할아버지가 심어둔 오동나무는 일생동안의 선물로 힘이 되어주었던 게 분명하다. 누군가 나를 지켜준다는 든든함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오동나무는 사라졌지만 상징적인 존재로 박성숙 수필가의 내면에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또 자라 꿈을 주게 된다. 꿈의 나무는 아이에게 대물림하면서 사랑으로 키워지게 된다.

맏손녀인 내가 테어나자 할아버지는 탄생목으로 오동나무 한 씽을 심었다. 손녀 시집보낼 때 장롱을 만들어줄 생각이었으니 키우면서 오죽이나 공을 들였겠는가.- 중략-

힐아버지는 집을 팔며 오동나무 때문에 망설이다가 이 삼년만 더 키워달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떠나오는 날도 새 주인에게 다시 부탁하고 꼭 자식을 떼어놓고 온 마음이라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한숨지으셨다. -중략- 서울에 와서도 오동나무를 잊지 못하셨다. 빨리 시집을 가라며 성화셨다. 이사 온 지 3년 쯤 되었을 때 동문회가 있어 고향을 갔다가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우리 옛집이 주인이 바뀌어 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도 그 때 베어냈다는 것이다. 나는 무섬증에 내 목을 감쌌다. 할아버지가 떠올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탄생목 오동나무-

결코 마르지 않는 샤갈적 환타지의 샘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박성숙 수필가에게 가족을 위한 사랑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 늘 애틋하고 안쓰럽기만 해 골고루 듬뿍 사랑을 얹어주고 싶어 마음을 쓰느라 분주하다. 수필작품「손가락점」「엄마는 엄마다」「혹 떼려다가」「신선한 선물」에는 손자손녀와 얽힌 다감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중 더욱 주목받을 만한 수필은「누구의 집인가」이다.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 내려왔다가 마루 신발장 겨울 털신에 새끼를 친 할미새 가족을 발견하는 작가와 남편은 새의 가족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뒷문으로 드나든다. 음식을 하려다가도, 냉장고 문을 열 때도 어미새가 없을 때 열 정도로 새의 가족을 염려하는 그의 고운 마음이 문장에 녹아있다. 우리 집인가? 할미새 집인가? 묻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를 하고 있는 작품은 가슴 뭉클하게 하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요란하게 내색하지 않아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아이들도 알아챈다. 일 때문에 어머니의 모성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막내아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작가는 아픔을 견디고 교수가 되어 정체성을 확립한 아들을 한없이 고마워하고 있다. ‘ 행복한 눈물’인 것이다 .

눈물이 흐른다. 자꾸 흐른다. 그래 실컷 울어봐. 눈물을 흘려도 좋을만큼 기쁜 날이니까.

“엄마 나 교수됐어. 부산 H대학에.” 막내 아들이 알려준 소식에 눈물부터 앞섰다. 막내의 학창시절은 암담하기만 했으니 오늘같은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중략- .

한술 더 떠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는 들르지도 않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가끔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나갔다. 집주변을 살피는 형사들이 자주 보였다. 어떤 날은 새벽부터 형사들이 쳐들어왔다. 오는 전화는 모두 자기들이 받았다. 아들이 어디있는지 말하라고 협박까지 하고 있으니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중략-

지난 해 과학의 날 <젊은 공학도상>이란 큰 상을 받았을 때 나는 기쁜 나머지 “그렇게 밖으로만 돌더니 ” 라는 말을 무심코 했다. “엄마가 집에 없었으니까” 거침없이 대답하는 아들을 보며 그 때서야 모두 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눈물-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눈물은 본능적이어서 자식의 아픔이나 행복 앞에는 눈물이 솟구치고 때로 눈물은 한없이 흐른다. 자녀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폐부를 찌르고 자식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으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결코 혼자 행복할 수 없는 모성본능은 여성 개인에게는 가혹한 것이다. 모든 잘못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깨달아야하는 존재가 어머니다. 어머니는 신이 아니건만 신이 함께 할 수 없어 이 세상에 어머니를 보냈다니 어머니는 인간이 아닌 외계인인가.

박성숙수필가의 심성에는 늘 부드러운 봄바람이 분다. 그가 있으면 주변은 늘 아늑해진다. 시골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 친구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텃밭에서 즉석 안주거리를 찾아 장만하는 재주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지 하나만으로도 안주를 튀겨내어 분위기를 정답게 만들어내는 그의 가지음식에 환상이 입혀지는 것이다. 가지 튀김 하나에 그날 밤 친구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추억을 그려내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에게 친근했던 화가 샤갈적 환타지가 박성숙의 수필에 되살아나 그가 없다면 가지는 그저 텃밭의 가지로 늙어 외면당할 수도 있다.

박성숙 수필가가 길러내는 농작물 이야기와 그가 만들어내는 음식관련 글을 읽으면 바슐라르의 <물질과 손> 을 떠올린다. “물질은 일을 하는 손 밑에 존재한다.”고 한 바슐라르의 말처럼 박성숙 수필가의 손 밑에서 형상을 이루는 요리들은 그 어떤 예술가의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을 품고 있다. 「새로운 장맛처럼」「그 느낌 그 감촉 」「시골밥상 」「한 해의 마무리」「어머니의 추석준비」등 음식 문화 글을 통해 시대정신이 빛나고 맛이 살아나고 사랑이 묻어난다.

샤갈은 눈으로, 기억으로 담아두었던 것들을 빛깔로 입혀 창조했고 박성숙 수필가 역시 손으로 이루어내는 것들의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을 음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때는 가지가 너무 많이 달려 썰어서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먹을 양으로 한 바구니나 되는 것을 막 썰고 있는데 이웃 술 친구들이 들어왔다. 급한 김에 썰고 있던 가지를 넓적하게 썰러 튀김가루를 입혀 튀겨내어 상에 올렸다. 모두들 이 맛있는 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생선이냐, 서울서 만들어온 음식이냐며 무척 궁금해했다. 몇 접시째 들여놓았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바삭하게 튀긴 가지는 나물믈 해 복을 때와는 다른 맛을 냈다. -중략- 가지가 오늘은 큰 일을 해냈다. .....오늘 하찮은 가지가 큰 역할을 했듯 우리 허술한 시골집도 친구들에게 그런 쉼터가 되었으면 한다.- 가지부침 - ,

화가는 일상에서 건져 낸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예술적 형태를 이루어내고 작가는 언어의 체로 일상을 걸러내어 바람의 소리를, 새의 날개 짓을, 사랑을 표현해낸다.

작가나 화가나 모두 창조적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 났지만 창조적 운명의 비밀은 자신의 작품에 영혼과 육체를 바친다는 것이라 했다.

박성숙 수필가의 운명은 어느 날 그가 문학의 아궁이에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는 데 있다. 그의 아궁이는 늘 불씨가 사라지지 않아 온기가 남아 있을 테고 끝까지 그의 문학성은 타오를 것이다.

박성숙 수필가의 단순 명쾌한 문장, 꾸미지 않은 듯 담백함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의 수필 생명력은 오래갈 것이다. 스티브잡스의 말처럼 ‘버리고 또 버리라’는 것에서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