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필집

윤태근수필집 <울보의 향기> 권남희 편집주간 발문 수록

권남희 후정 2013. 10. 21. 16:18

 

윤태근수필가  월간<한국수필> 등단. 제 3회 인산신인수필대상 수상. 명지대학교 졸업 . 중등학교 교사 빛 교장역임.  

 

젊은 예술가의 초상 수필가 윤태근   세상을 구원하는 울보의 향기로 다가들다

                                                     권남희수필가(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초심을 잃지않는 윤태근 수필가

수필가 윤태근은 한눈에도 외유내강형이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단아한 외모에 조용하면서 군더더기없는 함축적 대화까지 선비의 풍모다. 작가는 「죽음을 연습하는 계절」작품 속에서, 우물에 빠진 뒤 2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다보니 총명했던 소년은 간데없고 ‘병약하고 소심한 멍청이가 되었다’고 자신을 평했다. 하지만 영특함 때문에 자칫 웃자라는 것을 막기위한 신의 보호장치였지 않을까 뒤집어 생각한다.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했는데 한 번도 그런 경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인생 2모작을 새롭게 시작한 수필문단에서 늘 초심을 잃지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며 수필공부에 전념할 뿐이다. 풍부한 문학적수사법, 문학형식이나 비평적 체계까지 이론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고 40년 동안 다루어온 문학이지만 조용하고 겸손하기만 하다. 수필문학 안에서는 발전을 위한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사색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간 쌓아온 내공은 그의 수필에서 이미 만만치않은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몇 년 사이에 등단 초기 그가 지닌 관념적 표현법과 형식주의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며 문학의 근저인 서정성과 상상력의 개념을 빠르게 흡수하였다. 물론 모든 내용은 <형식주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작가는 그것까지 감안하여 유기적으로 잘 맺어 단순한 문체로 우아미를 획득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작가의 문학성을 형성해준 근원적인 것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다.

소년기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메꿔지지않아 산같은 그리움으로 남고 내성적인 소년가슴에 죽음은, 독특한 인식의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기에

작가는 평생동안 사고의 틀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판단내렸을 가능성도 보인다.

월간 한국수필에 등단하면서 바로 인산수필 신인대상을 탄 그 저력도 바로 그런 근원적 세계를 향한 자신의 끝없는 물음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 」등단작품은 감동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눈물을 안겨준다.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년의 가슴에 각인된 죽음직전의 빛나는 그 아름다움, 한 인간이 죽음의 문턱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정신력은 무엇이었을까를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날 어머니는 오랜 병석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하늘은 쨍하게 맑았고 뒷산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서럽도록 고운 가을날 오후였다. 이웃집 늙은 수탉의 긴 울음소리만 고즈넉했다. 그날따라 뜬금없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새벽이 아닌 낮이나 초저녁에 우는 수탉은 아주 불길한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도 생각났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어머니는 세숫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얼레빗과 참빗으로 오래도록 머리단장을 한 후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빛 고운 옷을 힘겹게 꺼내 입었다. 거울 속의 어머니는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11살 나는 병에서 다 나은 것 같은 어머니가 미칠 듯 좋았고, 새색시와 같이 변한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눈부셨으나, 왠지 모를 그 숙연함이 싫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내 뺨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열기 있는 손길도 싫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뛰어나가며 아버지를 찾았다. “엄마가 다 나아 일어났는데 아버지는 왜 빨리 오지 않는 거야.”

참으로 모든 것이 이상하고 낯선 가을날이었다. 그날 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더니 그 해 한겨울에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나 버렸다. 어머니는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느라 그 가을 그리도 곱게 머리를 빗어야 했던 것일까? - (2011년 4월 ‘한국수필’ 발표. 등단작품. 2011년 제2회 인산수필 신인대상수상. 2012년 2월 ‘한국문인’ 영작으로 발표)

 

윤태근수필가에게 죽음은 크게 두 가지의 세계관을 형성해주고 있다. 어머니를 비롯한 삼촌 등 친족의 죽음과 자신이 경험한 죽음의 문턱인 것이다. 상실감과 공포이다. 열 한 살의 소년을 늘 사색하게 만들만큼 죽음은 가까이서 맴돌고 있었다. 6.25직후 휴전상태의 우리나라는 곳곳이 포탄과 지뢰밭이었다. 지뢰를 밟거나 터지지 않은 총탄을 가지고 놀다가 동네 어른과 아이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는 그런 현실에서 작가는 생명이 중단되는 공포를 늘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에게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고 죽음은 나무 한그루도 버틸 수 없는 겨울인 것이다.

 

“너희들 여기서 장난하지 마라. 우물에 빠질라. 쯧쯧 이렇게 위험해서야.”

어느 여름 한낮이다. 친구들과 탄피 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우물에 가서 등목하기로 했다. 뜀박질을 했다. 맨 앞에서 달렸다. 신이 났다. ‘저기쯤 우물이다.’ 더 빨리 달렸다. 바로 우물이 보이는 비탈길에서 석이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 의식을 잃고 말았다. 머리부터 우물 안으로 떨어졌단다. 정신을 차린 곳은 병실 안, 보름 만에 깨어났으나 그 후유증은 청소년기 내내 괴롭혔다. 제법 똘똘하다는 소리를 듣던 나는 병약하고 소심한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투병생활 2년간은 기억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 내 삶에서 지워진 백지가 된 것이다. 최초로 마주했던 죽음의 인식은 전쟁, 가난, 공포와 함께 상실의 아픔으로 지금까지 내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것은 생명활동이 중지된 겨울과도 같은 기간이었다. -죽음을 연습하는 계절-

 

울보, 그 치명적 매력

 

좋은 글은 ,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향기나는 글은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 감동을 주며 울리고 웃기는 글이다. 바로 윤태근 수필가의 글이 그렇다. 그의 인간성을 특징짓는 대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울보 바오로」를 들겠다. 독자를 웃다가 울게 하는 수필 한편이다. 독자는 그의 가식없고 투명한 심성에 끌려들어가 무장해제를 당한 채 같이 울면서 웃고 다시 또 읽으며 웃고 만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된 후 눈물을 참아야 한다고 다잡으며 살아간다. 특히 남자들은 일생동안 세 번 운다는 관념에 갇혀 실컷 울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작가 또한 그런 인식이 가슴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는데 미사를 드리다가 울고 . <울지마, 톤즈>를 보다가 참을 수 없어 소리내어 흐느끼게 된 것이다. 수십년 뭉쳐두었던 자각의 아픔이 슬픔을 보면서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고 만다.

의학에 ‘울음치료’가 있는데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치료를 받은 셈이다. 자의식이 강하여 좀처럼 내면이 허물어지지 않으려니 여기고 있다가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무너져 흐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만만하고 인간적인가. 작가의 아내는 횡재를 했다. 심성고운 남자를 평생 동지로 두었으니 사랑하면서 가끔씩 잘 울게 하면 될 일이다.

울보로 불리게 된 결정적 일이 생기고 말았다. ‘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신부’의 일생을 그린 다큐영화다. 48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해 헌신적 생을 바친 신부님의 실천적 사랑이 큰 감동으로 가슴을 흔들었다. 내 생각에는 ‘울지마, 톤즈’가 아니라 ‘울어라, 톤즈’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영화관의 관객 대부분이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눈가를 훔치는 아내와 달리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소리 내어 흐느끼는 내 어깨를 꼬집으며 아내는 ‘창피해서 못 살아.’ 빠르게 속삭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날 이후 바오로는 울보가 된 것이다. -울보 바오로-

 

울보 바오로지만 그는 단호할 때는 결정도 잘 내리고 지혜로운 남자다. 모든 가장들이 겪는 퇴직 후의 가족들. 특히 배우자로부터 받는 소외와 부당한 대접이라는 갈등을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 작가의 ,문제를 덧들리지않고 차근차근 생각하여 실천으로 풀어갈 줄 아는 현명함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헤나로진 미국여성 작가가 쓴

『남자의 종말』에서도 미국남자도 별반 다를게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동서양이 비슷한것인지 여자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는데 미국에서도 100년 동안 변하지않는 종족이 남자라고 정의했다.

알면서도 달라지는 것이 두려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마초남도 못되면서 화만 내는 비겁한 가장들도 많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태근수필가의

인식의 범위는 좁지않고 아주 합리적이며 정신이 건강한 가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자라 제 가정을 이루고 떠난 어느 가을날 황혼 무렵. 문득 아주 낯선 얼굴의 초라한 아내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내 모습이기도 했다. 허허로운 빈 둥지 안에서 파삭한 초로의 두 얼굴은 서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서로는 생활을 위한 필요 존재일 뿐이었다. 왜, 무엇을 위해 사나 싶었다. 삭막하게 살다가 남남인 채로 그렇게 늙어 죽어갈 우리 부부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빤히 보였다. 이렇게 삶을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했다. 돌파구가 절실했다. 그러다가 혼수품이었던 금침 속에서 내가 보낸 연서를 되찾게 된 것이다. 만사를 제쳐 놓고 외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내는 들뜬 표정으로 마치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듯했다. 일상에서 일탈(逸脫)한 해방감은 자유였다. 그리고 자유는 여유였다. 인간이 향유하는 세월이란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가. 이국의 거리에서나 해변에서, 아내는 수십 년을 거슬러 신혼으로 되돌아 간 듯했다. 대담한 의상, 탄력 있는 걸음걸이, 즐거운 웃음소리 모두가 상쾌한 젊음 그때와 같았다. 호텔방에서 오랜만에 아내를 품으며 지난 세월을 잊고 다시 연인이 되어 보자고, 다시 신혼으로 돌아가자고 서로 굳게 약속을 했다. -나에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

 

뗏목을 타고 강물에 뛰어든 윤태근 수필가

그는 이제 새로움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문학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로 수필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성실하면서도 열정적이어서 그 모습은 마치 마크 트웨인의 모험 소설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나오는 십대 소년 두명이 위험한 미시시피강을 뗏목을 타고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그 필사의 노력을 닮아있다.

헤밍웨이는 “모든 현대 미국문학은 마크트웨인이 쓴 『허클베리핀의 모험』 으로 나온다”고 했다. 마찬가지 맥락으로 모든 현대 한국수필문학은 피천득의 「수필」과 「인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피천득의 그늘은 너무나 커서 오히려 그의 그늘에 안주하며 이름만 얹으려하는 수필가도 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같은 그 강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필가는 모두 끊임없이 피천득의 「수필」과 「인연」을 쓸 수 밖에 없다. 윤태근 수필가는 그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지금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의 뗏목은 때로 뒤집히고 물에 가라앉는 위험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시간을 투자하고 고생한만큼 이름을 얻으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작가의 화두는 늘 ‘수필쓰기에서의 실험적인 사고키우기’였다. 다양한 문체를 위해 쓰고 버린 원고만 해도 한 트럭은 되지않을까. 우리는 모두 그의 모험정신을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참선에 든 스님들은 죽비공양(竹篦供養)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죽비의 공양을 톡톡히 받은 셈이 된다.

오늘도 서너 방 늘씬하게 맞는다. 열 번이나 넘게 퇴고를 했으나 여전히 허점은 있었나 보다. 이곳저곳 붉은 펜으로 수정된 원고가 영락없이 상처입고 비틀거리는 내 모습이다. 그러나 기분은 좋다. 맞을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상 알기 때문이다. 무릇 뻣뻣한 것, 더러운 것, 군더더기 있는 것, 구김살 있는 것, 삐뚤어진 것일수록 방망이를 필요로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인가, 동인들의 합평은 늘 기대감 속에 긴장이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지적당한 곳마다 첨삭 수정해가는 동안 내 얼굴은 붉게 변했고, 원고는 난자당한 누더기처럼 변했다. 등에서 진땀이 흘렀다. 엉뚱하게도 가학적인 신참례(新參禮)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인이 된 것이 후회가 됐다. - 죽비(竹篦)로 공양을 받다 -

 

윤태근 수필가에게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제임스 조이스의 귀환을 본다.

최후에 얻어지는 꽃의 열매 ‘씨눈’을 위해 태풍과 폭염과 추운 시간을 견디듯 윤태근 수필가는 문학의 씨눈을 얻기 위해 구겨진 자존심과 싸웠고 ‘그래도 내가 국문학자였는데’라는 자부심을 버란 채 스무살 문학청년의 초상으로 돌아왔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문소설 1위에 오른 『 율리시즈』를 쓴 제임스조이스(Joyce James) 의 귀환만큼이나 기대가 크다. 관념을 거부하고 모더니스트로, 철저한 언어적 실험으로 현대의 서사시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 조이스는 어려서부터 카톨릭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 조이스 어머니는 그에게 사제가 되기를 원했지만 임시교사를 지내다가 파리로 건너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제임스조이스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진 윤태근 수필가의 역량을 기대한다.

예로부터 문학인들은 역사가였고 문화의 해석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폭넓게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가리라 믿는다. 울보 바오로의 첫 번 째 수필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