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호
리더스에세이 발행인 에세이
봄볕
전수림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감사)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설레는 사월! 꽃잎이 강바람에 산만하게 흩날린다. 아까웠다. 그날 나는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주로 내려갔다. 그러나 결혼식은 핑계에 불과했다.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곳에 가면 감성이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들어갔다. 햇살이 가득한 창문을 활짝 열자 담벼락으로 담쟁이가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겨우내 마르고 말라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 담벼락에 찰싹 매달려 싹을 틔우려하고 있었다. 담쟁이를 보고 간절한 시를 썼던 어느 시인의 마음이 떠올랐다. 나도 가만히 쳐다봤다. 가파르게 기어오르다 볕을 만나고, 봄비에 입술과 목을 축이고, 무엇인지 모를 것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치고. 또 그렇게 천천히 올라가다가 벗도 만나고 사랑도 만나고, 죽기 살기로 살아야할 이유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봄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물어다 주는 생명인 것인지도.
한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아직은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병환중이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이 일었다.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춥고 볕에 나가 앉아 봐도 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쳐도 구렁텅이 같은 곳으로 자꾸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꽃잎이 흩날리던 날 꿈처럼 봄 같은 사람이 내게 찾아왔다. 그를 만나고 겨울햇살 같던 봄볕이 뜨거운 여름 볕이 되었고, 잘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으며 잘살아 할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랑은 내게 생명수 같은 봄볕이 되었다. 나는 그 길 끝에서 내가 가야할 길을 찾는 힘을 얻었다. 지금도 사월의 볕이 쏟아지면 봄같이 찾아온 그 사랑이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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