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필집

조은해 수필집 분홍감옥

권남희 후정 2016. 6. 3. 16:18

 

 

조은해수필가  월간 한국수필등단. 한국수필가협회회원; 리더스에세이 편집위원   등  

 

따스함을 탐하다

 

 

조 은해

 

툇마루 끄트머리에 햇살이 쏟아집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쏟아지는 햇살이 좋아서 마루에 비스듬히 누워 낮잠을 청해봅니다. 연약하고 조그마한 계집아이의 몸뚱아리 위로 달콤한 햇살이 그대로 내려앉습니다. 햇살은 아이에게 간지럼을 태우고 아이는 엷은 졸음 속으로 빠져듭니다. 온 몸이 노곤해지면서 부드러운 햇살의 감촉이 아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나는 그렇게 햇살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햇살의 따스함을 사랑하는 아이였습니다. 

그의 손은 따스했습니다.

11월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맞선을 보고 무엇에 끌렸는지 서둘러 올린 결혼식이 끝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제주도는 남쪽이라 따뜻할 거라는 지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곳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고 바람도 몹시 차가웠습니다. 추워서 움츠러드는 나의 어깨를 감싸주기도 하고 빨개진 내 손을 꼬옥 잡고 문질러 주던 그의 손은 아주 따스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손이 따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언제나 따스함을 탐하기를 즐겼습니다.

초겨울, 남향 아파트의 거실로 해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시간 즈음에는 조용히 앉아서 책 읽기를 좋아했지요. 등을 창 쪽으로 돌려대고 앉아서 책 속에 있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등짝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면 티셔츠 등 쪽의 색깔이 다 바랠 지경이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의 갈피에서 더러더러 줍게 되는 삶의 지혜가 등짝에 쏟아지는 햇볕을 받고 자라나서 내 영혼의 양식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이 따스해 지는 시간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등은 한 없이 넓었습니다.

철없던 새색시 시절엔 걸핏하면 울기를 잘했습니다. 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서 울고, 친정에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울고, 친정식구들만큼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시댁식구들이 섭섭해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그는 등을 돌려대며 업히라고 했지요. 그의 등은 넓고도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아무 이유도 없이 업어달라고 졸라보기도 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따스한 그의 등과의 만남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찬바람이 가슴 속을 후비고 들어오려고 하는 초겨울이 되면 아줌마가 된 그 아이는 따뜻한 국을 끓입니다. 배추된장국을 끓여 저녁상을 준비합니다. 배추의 단 맛이 배어나온 된장국은 구수하고도 달큰한 것이 퇴근길에 얼얼해진 그의 가슴을 녹이기에 충분합니다. 따뜻한 된장국을 훌훌 들이마시면 뱃속이 다 뜨끈해 지는 것이 온 종일 직장에서 완전군장상태로 굳어 있던 그의 몸을 무장해제 시켜버립니다.

된장국의 따스함이 그 어떤 강력한 무기도 이길 수 있음입니다.

 

창밖의 바람소리가 더욱 매서워지기 시작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서로의 체온을 보태어 따스함을 탐해봅니다. 부부는 분리된 한 몸인 것처럼 심장과 심장이 맞닿아 숨소리와 따스함을 나눕니다. 아담과 이브의 설화가 마냥 고맙게만 느껴지는 따뜻한 겨울밤을 보내고 또 하나의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은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한 겨울에 받아보는 따스한 아침 햇살 한 줄기는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의 뜨거움 그 이상입니다.

나는 그렇게 따스한 몸과 몸의 만남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따스함을 갈망합니다.

때로는 살아간다는 일이 녹록치 않습니다. 이제 가을이 깊어져 거리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면 우리는 어딘가 따스함이 있는 곳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따뜻한 안식처를 찾지 못한 상황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따스함이 아닐까요.

그 누군가의 따스함이 되어주는 우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