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작가
머리글
다시 태어나다
잊었던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 가슴에서 차오르는 문학의 열정 때문이었지요. 수필을 쓰는 일은 그렇게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가슴 밑바닥에 개운치 못한 크고 작은 침전물들이 사라져가는 변화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생의 값진 수확입니다. 더불어 세상을 향한 긍정의 시선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수필 속에는 묘한 매력이 스미어 있었습니다. 지루한 영혼을 활기차게 바꾸어 놓았고 동시에 바쁜 일상으로 들어서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멈출 수 없는 목표가 되어서 가슴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이것은 언제나 수필과 가까이 하며 살아가겠노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재 되어 있던 영혼의 짐을 수필이 대신 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혼자가 아닙니다. 나눌 수 있는 진실한 벗이 생겨난 것과 같은 기쁨입니다.
부족하고 서툴지만 여기 한 권의 수필집을 선보입니다. 한 편 벌거벗은 심정이기도 합니다. 흡족하지는 않아도 가슴에서 씨앗처럼 자라났던 글쓰기의 열망을 나름대로 꽃피웠다고 자부하렵니다.
수필에 대한 열정이 늘 깨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글쓰기로 찾은 행복을 맘껏 누리며 살아갈 때에 내 영혼은 더 맑아지리라 믿습니다. 한낮의 이글대던 태양이 다른 무게를 지닌 저녁노을로 아름답게 다가오듯, 나머지의 내 삶도 그리 닮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수필의 길로 이끌어주신 반숙자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보다 우선 사람이 따뜻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그 말씀은 내 안에서 밑거름이 되고 수필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준 가족에게도 지금의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2018년 10월 김기자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김기자의 삶과 문학
반숙자 수필가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예술로 표현될지는 창작자의 선택이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한 분야에 평생을 투신하는 예술가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결과물의 가치를 떠나 순수한 몰입과 거기서 얻는 그만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그릇에 맞는 장르를 선택해 독자 없는 글이라도 치열하게 매달리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어서다. 외로워도 좋다. 힘들어도 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작가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글을 쓰게 하는 요인 중 결핍에 대한 깨달음과 상처에 대한 깨달음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첫수필집을 상재하는 김기자의 작품을 읽으며 느낀 소회가 바로 그것이다.
김기자는 우리 수필교실의 회원이다. 사는 곳은 달라도 수필이라는 둥지 안에 입적해 그만의 글을 쓰는 작가다. 수필교실을 찾는 그의 행보는 남다르다. 생활에 묻혀 마모되어가는 감성을 깨우는 행위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물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수필교실을 찾는 작가를 보면 수필은 작가에게 무엇인가를 자문할 때가 많다. 그 세월이 어언 십 년이다. 육십 리 밖에서 눈이오나 비가 오나 고운 미소로 찾아오는 시간, 그의 눈빛은 진지하다.
엄밀히 말하면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표현이고 특히 수필은 작가의 삶의 총체적 표현이기 때문에 바로 작가의 인격이고 인생관의 표현이다. 하여 나는 수강생들에게 문명을 날리거나 사회에서 존경받고 싶은 욕구나 외적인 성취보다 글을 쓰므로 해서 스스로 행복한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김기자의 작품에 의미를 두는 것은 이미 이 작가는 그 행복의 의미를 알아낸 작가라는 점이다. 어떤 대상을 만나든 간에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해법을 찾는다. 그 안에 통찰과 사유와 성찰이 있고 작가의 내밀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은 공범의 보람으로 여긴다.
김기자는 수필을 관통하는 지류는 첫째 자아를 찾고자 하는 작가다. 무엇 때문에 시간을 쪼개 살면서 글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사람이 글에 매달리는가. 미진한 의문이었다. 가정으로는 성실하게 살아 집안경제를 탄탄대로에 올려놓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책임을 다하는 다복한 생활인이다. 그는 낮에는 일터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늦은 밤 귀가하면 꼭 컴퓨터에 앉아 글을 다듬거나 창작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렇게 습작해서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는가 하면 각종 백일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을 쌓았다. 하루 중 그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자아를 만나는 깊은 밤이다. 인간 김기자만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글을 쓸 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삶 전체의 의미를 부과하는 이 행위야 말로 행복한 글쓰기의 전범이다. 작품 〈껍데기〉, 〈거울 앞에서〉, 〈하얀 거짓말〉,이 그 예다.
<껍데기>라는 작품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는 수필로 알맹이로 산 세월과 껍데기로 살아야 하는 세월을 유추한 공감을 주는 글이다. 여기서 껍데기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상징성 또한 깊다. <거울 앞에서>는 화장을 하면서 겉면의 티는 화장술로 가릴 수 있으나 내면의 티는 지울 수 없다는 성찰이 주제의 의미화에 성공했다. <하얀 거짓말>에서는 결혼생활 삼십년이 지나도록 남편에게 어떤 선물도 받아보지 못한 이야기로 무관심한 상대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자신에게 포상의 의미로 선물을 하는 사고의 전환이 매력이다. 이것이 김기자가 감추어둔 저력이며 아량이어서 읽는 내내 상쾌했다. 작가는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깊은 지혜에 다다르고 있는 중이다.
“내가 껍질이라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 안의 알맹이들은 이런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내가 알맹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스스로 껍데기의 역할에 자랑을 싣는다. ” <중략>
수필 <껍데기> 에서
작가는 껍데기로 사라져가는 인생의 슬픔 대신 내려놓음으로써 가벼워지는 방법을 터득한다.
두 번째로 김기자는 결핍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결핍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수가 있지만 작가는 그 아픈 결핍의 기억을 재생하여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끝내는 트라우마를 화해로 승화시킨다. 그의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싸한 아픔이 밀려오는 것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모정결핍이 평생 동안 그늘로 덮여있어서다. 다음 작품을 보면 생모에 대한 애정결핍이 애증으로 점철됐던 새어머니와의 해후로 끝을 맺는다.
“ 엄마는 소금이 되어 돌아오셨다. 몸은 비록 마른 낙엽처럼 되셨지만 깨끗하고 보송한 소금으로 내 마음의 항아리에 담기셨다. 짠맛의 효과까지 알게 해 주셨다. 소금은 짠맛만 내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이 필요로 하는 단맛도 더불어 알게 하셨다. 그것은 가슴에서 절로 우러나는 엄마와 딸과의 관계, 그 안에 서린 사랑의 맛이었다. 생활에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는 소금처럼 새엄마였지만 나에게 충분히 귀한 분이었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는지 미안한 마음이다.” <중략> ―수필 <소금에서>―
작가는 어느 명절에 친정엘 간다. 시설에 계시는 어머니를 명절에 모셔온 가족 틈에서 장독대를 둘러보다가 소금항아리를 발견한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소금을 담아오면서 소금의 맛을 인생의 고락이라는 의미를 창출해 낸다. 어려서 그토록 목말라 했던 사랑의 갈증이 의미가 담긴 소금으로 해소되는 것 같다는 작가의 통찰이 고맙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 〈원근감〉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라는 자동차 사이드 밀러에 적힌 글이 동기를 유발한 이 글은 역시 유년의 기억이다. 작가가 중학교 시절 교복을 세탁하러 새어머니가 아끼는 것인 줄도 모르고 하얀 세탁비누를 가지고 빨래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순간 아버지가 교복을 뺏어 마당에 내동댕이치고 마구 짓밟았다.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작가의 가슴에 충격으로 남아있다. 작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빨래비누만 보면 그때 일이 떠오르고 상처가 되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한 연유로 아버지는 늘 먼 곳에 계시는 분이었다. 새로 얻은 아내와 전실의 딸이라는 어설픈 구도를 생각하면 그날의 정황이 짐작된다는 작가는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스스로 터득한 화해의 기술이었다. 어느 날 문득 자동차의 사이드밀러에 적힌 문구가 이렇게 마음을 움직여 줄 줄은 몰랐다. 나이 드는 것만큼이나 운전의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멀게만 느꼈던 내 아버지,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깝게 다가오는 그 어떤 끈끈한 느낌, 바로 생명을 주신 아버지가 내게도 계셨다는 사실이 기쁘다.”<중략> 수필 <원근감>에서
이렇게 서술하는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가슴에 모신 뒤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혈연의 관계다. 아무리 큰 상처를 준 분이라 해도 결국에는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바로 혈연의 진실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결핍과 아픔의 유년을 보냈다 해도 그것이 글의 자양분이 되어 창작을 깊게 도와준다. 그것은 생생한 체험이 뒷받침 되어야 생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세 번 째 지류는 김기자는 연민을 가슴에 품은 작가다. <철도원> 이라는 소설을 쓴 일본의 작가 아사다 지로는 “ 인간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려는 눈물겨운 믿음으로 글을 쓰자. 어디에도 악인은 없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글을 쓰자”고 했다. 따스한 눈, 측은이 여기는 마음은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민들레의 미소>, <호박고지>,< 까치집>이 그런 연민의 시선이 녹아 있다.
<민들레의 미소>는 하수도 맨홀 뚜껑 옆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를 통하여 힘없는 사람들, 고달픈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로 의미확대를 한다. 그것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세상을 향한 깊은 연민에서 출발한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제몫을 다하는 민들레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대치시키며 글의 완성도를 높였다.
“ 오늘도 민들레꽃은 여전하다. 길가에서 그 많은 시달림을 이겨내고도 곱기가 그지없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나 아닌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꽃잎에 투영되고 있다.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일지라도 그 영혼의 세계가 무한할 만큼 신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저만큼 낮은 곳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한 평화가 피어날 수 있는 까닭이다.” <중략>
수필< 민들레의 미소> 중에서
무릇 모든 작가들은 세상만물을 연민의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좋은 글을 끌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가 사랑하는 곳에서 소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는 말도 거기에 근거한 말일 아닐까 싶다. 그것은 문학은 세상을 향한 위로요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여야 한다는 책임이 있어서다.
<빈방은> 아들과 딸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고 지금은 빈방인 방에 들어가서 자식들의 존재를 실감하며 쓴 글이다. 자식들은 성장하여 날개를 달고 집을 떠났지만 집을 찾을 그날을 위해 빈방으로 두며 자신의 마음에도 누군가 와서 쉬어갈 빈방 하나를 마련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작가는 이처럼 느긋한 기다림과 포용성을 갖춘 넉넉한 심성의 소유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본다.
끝으로 <시간의 박물관에서>는 독특한 소재로 쓴 글이다 정동진에 가서 시간의 박물관에 들러 ”시계의 역사관“을 느끼며 작가는 의문을 품는다. 시간과 시계라는 두 단어가 상응하는 관계는 어떤 모양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정신을 발휘한다. 이것이 글 쓰는 이들이 갖춰야할 기본이다. 왜? 라는 의문을 많이 품을수록 글은 풍성해지고 사유가 깊어지고 철학적 접근도 가능해져서다.
“ 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인형이 있었다. 인형이 톱니바퀴의 힘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오르는 거였다. 어찌나 애처롭던지 한참을 바라보아야 했다. 바로 그것이 우리 현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끝내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따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같았다.” <중략>
― 수필 <시간의 박물관> 에서―
여기서 나의 탐구는 끝난다. 김기자는 미완의 작가다. 스스로 미완이라 생각하고 노력하는 작가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한다. 미완을 가슴에 품은 사람에게 미완은 어느 날 완성이라는 성취를 안긴다. 처음의 물음 앞에 다시 선다. 수필은 김기자에게 무엇인가. 그 해답은 육십 편 글 속에 있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며 독자에게 묻는다. 그대는 평안하신가 하고.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을 다스려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언표다. 나는 믿는다. 묵묵히 자기 글을 쓰며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살아내리 라는 것을, 한걸음 더 나아가 수필의 길을 완주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 첫 수필집으로 전존재를 드러낸 김기자 작가의 앞날에 대성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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