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집

권남희 제 2수필집 '어머니의 남자' 작품세계를 말하다

권남희 후정 2009. 8. 1. 18:29

 

권남희 수필가 1991년 경

1997년 송파구 지원 (표지그림 장완 화백 -표지 '디자인에프엠'

출판기념회 1997년 11월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다     

권남희 제 2 수필집 『어머니의 남자 』작품세계를 말하다

                        박영우 문학박사 .시인 (경기대 교수)


  일상 속에서 우러나는 순수의 미학


모든 글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수필은 자기 고백의 문학이다. 예컨대 소설처럼 어느 정도의 허구로 치장할 수도 없는 , 말하자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성의 문학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수필가는 누구보다도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할 것이며,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적극적이고 과격한 집필 태도를 필요로 한다 하겠다.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권남희는 수필가로서의 기질이 다분하다. 수필가로서의 기질이 다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진솔하고 솔직한 성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식없는 그의 생각이나 행동이 그대로 투명한 유리처럼 명징하게 작품 속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권남희 두 번 째 수필집 『어머니의 남자 』는 또 하나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하겠다.


진한 가족애, 그리고 추체험의 수필

두 번째 수필집의 제목인 『어머니의 남자』가 시사하듯 그의 작품들은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아버지’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에도 그의 의식의 중심부에 무거운 짐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특히 성장기에 느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작품 곳곳에 눈물처럼 배어나고 있다. 작품집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딸을 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라는 작품에 보면


-전략- 나는 보시던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나가셨는데 그 때의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은 뭐랄까, 부끄러움으로 범벅이 된 채 모멸감도 아니고 내가 지독히 미웟다고나 할까. -중략- 나는 아버지로부터 분리가 되지 않는 나와 온통 그를 향해 열려있는 나 때문에 곤혹스러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의식하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신경질을 내곤 했다. -딸을 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부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아버지에게 선뜻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딸의 모습과 사랑하는 그를 향하여 열린 나 사이에서 번민하는 자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역시 아버지를 소재로 쓴 <운동화 그리고 웨딩 드레스 > 에 보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려도 애써 피해 달아나도 내 뒷덜미를 잡은 채 죄책감에 나를 가두는 사진 한 장이 있다. 볼 적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감추고싶은 내 잘못을 누군가에에 들킨 것처럼 화끈거리게 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 한 장은 결혼 사진첩에서 세월을 지키며 때로 나를 질타하고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 머리에 꽃을 꽂고 레이스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손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아버지는 양복을 입으셨지만 운동화를 신고 한 쪽 다리는 바깥으로 펼쳐있는 어색한 자세로 내 손을 잡고 있다.

그곳에는 아버지를 보며 놀라워하는 ‘ 세상에나’하는 단말마를 내뱉듯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아버지의 다리에 시선을 모두 고정시킨 하객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중략-

하객의 웅성거림 속에 절록절룩 걷는 그 길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멀고 고통스러웠을까.

걸음, 걸음마다 진땀나는 시간이었음을 나는 왜 몰랐을까.-운동화 그리고 웨딩드레스‘ 부분


누구에게나 부모에 대한 기억은 소중한 것이지만 권남희라는 수필가의 여린 감성에 비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6.25 때 북쪽에 가족을 남겨둔 채 혈혈단신 남하하셨고 , 설상가상으로 한 쪽 다리를 잃는 부상까지 당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편하게 사셨던 아버지에 대해 성장기에 그가 겪었을 어려움을 이 작품 속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힘들지만 당당하게 딸의 손목을 붙잡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는 어쩌면 가슴 언저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흑백사진처럼 간직했으리라.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무겁고 어두운 수묵화같다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밝은 담채화 같다고 할까. <소리>작품에서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소리는 무조건 좋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내는 소리는 뭐랄 까. 자식을 향해 열어둔 뜨거움이라든지.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겪어낼 수 있다는 단호함이 있다. 무언의 가르침도 묻어있다.  어머니의 소리에는 언제나 안기고픈 포근함이 있어서 날 몽롱하게 만들었다. -소리 -부분


아버지를 소재로 쓴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한결 느낌이 다르다 .아버지가 불안과 초조함을 안겨주는 어둠의 존재였다면 어머니는 그 불안과 초조함을 해소시켜주는 빛과 같은 존재이다. 그에게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대문여는 소리’ ‘한복자락 스치는 소리’ 등 어머니가 그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결국 순수한 열정과 생명이 묻어나게하는 힘을 주었고 그 어떤 ‘음악 보다도 더 음악적인 , 이 세상 어떤 사랑보다도 더 감동적인 소리’로 다가온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부모나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고리가 핏줄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부정할 수 없는 진한 혈육의 정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작품을 쓰게 만드는 중요한 자양분 역할을 했다 하겠다.


일상과 소품 속에서 찾아내는 삶의 의미


흔히 수필을 신변잡기라 하지만  권남희의 사물을 보는 눈은 예리하다. 무심히 지나치거나 흔히 사용하는 주변의 소품들이 그에게는 소중한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독자들에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진리를 깨우쳐 준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거창한 주제나 특별한 사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음악을 듣는 것처럼 부담을 주지 않아 좋다.

<의자>< 거울> < 낙서> <모자>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비유와 인용 그리고 때로는 시적 상상을 통해 독자들 몫으로 성찰의 여운을 남겨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울은 자기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신을 비추어보는 마음의 거울이다. -중략-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벽걸이 거울은 정직한 충고자다. 숨길 수 없는 나일 수 밖에 없는, 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내게 따끔한 지적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같다.-거울 -부분


의자를 보니 내 생활이 엿보인다.

귀족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 늘 뭔가에 쫓겨 마음은  초조하고 허둥지둥 덜렁거리며 집안 일을 해내고 있는 내게 아무리 값비싼 의자, 황후가 앉았던 의자가 주어진들 마음 편하게 앉아 여유를 누릴수 없다. -의자- 부분

    

자기 성찰의 길

모름지기 문학의 길이란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질문과 대답은 언제나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문학이라는 큰 산 속으로 구법순례의 길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수필가 권남희도 그 구법순례의 길에 나선 사람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는 이제 『어머니의 남자 』라는 수필집으로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 그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들이 그의 투명한 성품처럼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997년 만추에 박영우


작품목차 

1장  빨래터 ( 딸을 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 운동화 그리고 웨딩드레스/ 봄바람서울바람 / 탈출을 꿈꿨던 그 해 봄처럼 / 마당이 있는 풍경 / 빨래터 )

2장 어머니의 남자 ( 소리/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남자 / 영애 / 하이힐이모 / 산자와 죽은 자의 자리 /

3장 정쌓기( 의자 / 낙서 / 거울/ 여행예찬 / 길 / 모자

4장  대통령 만들기 ( 거짓말 / 정쌓기 / 두 개의 거울 / 크레임 안 받는 문화 / 비밀번호 홍수 시대 / 창의력 키워주는 놀이마당 필요할 때 / 식탁에서 깨우치는 부모 섬기는 마음 / 책읽지 못하는 아이들 / 글쓰기 교육 문제 있다/ 전철 부인 / 대통령 만들기

5장 사랑할 때와 떠날 때

길 속의 또 다른 길 / 부치지 못한 편지 / 그 선택적 삶 앞에서 / 사랑할 때와 떠날 때

무색에서 묻어나는 아름다움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잘 참아내는 것에 대한 분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길에서 주운 한 장의 종이에 감동하여 대문호가 된 마크트웨인처럼 / 멀리나는 새 날개를 접을 때 / 말은 못해야 매력있다 / 튀는 미시가 낫다 / 10년만 늙어봐라 / 아름다운 약속 / 송파에 살으리랏다 / 홀로서기에 좋은 땅

얹는 글 - 고향돌아보기와 시간 (권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