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편집주간 권남희 /이처르히 기획실장. 서원순 사무국장 / 정기구독 신청 532-8702-3) 도서출판 선우미디어
봄비
鄭 木 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봄비는 아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같고 눈동자 같다. 한 없이 선하고 맑아서 미소가 촉촉이 젖어온다. 간지러운 입김으로 세상 모든 것들의 귀에다 속삭인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기억을 깨우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낸다. 굳어버린 감성을 깨워낸다. 세상에 홀로 떠도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려 준다.
봄비 속엔 세상이 모두 닿아 있다. 먼지처럼 풀풀 흩날리던 존재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깨어 있음을 느낀다. 나뭇잎 밑에 숨은 도토리, 온몸으로 언 땅을 열어 제치는 씨앗들, 나무들 속에서 숨죽이는 곤충의 알들이 봄비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
봄비처럼 거룩하고 은혜로운 배달부가 있을까. 보이지 않은 가방 속엔 신비와 경이의 선물들로 가득 차 있다. 봄비는 천지를 감동시키는 연주자이거나 천상의 시인이다. 가장 부드럽고 나직하게 생명의 찬가를 연주한다. 소리 없이 내리는 이 축복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초록빛으로 천지를 개벽시키는 놀라운 위용이여.
봄비는 단절과 고독 속에 지내던 존재들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편견과 이기의 벽을 허물고 모든 생명체가 함께 연계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풀이 존재하고 있음에 나무가 있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고 있다. 홀로 살 수 없는 개체들임을 알게 해준다.
봄비는 하늘에서 생명의 편지를 갖고 온다. 세상을 깨우고 복음을 전하는 소리 없는 초록의 혁명이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고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전파한다. 생명의 깃발을 들고 함께 나갈 길을 가르쳐 준다.
봄비 속에선 씨앗이고 싶다. 봄비 속에선 곤충의 한 알이고 싶다. 다시금 탄생하고 싶다. 실버들의 잎눈이고 싶고, 땅을 여는 뿌리이고 싶다. 꿈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싶다.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일어서야 한다.
네가 선 자리가 비록 바위나 절벽이라고 할지라도, 우주의 중심이다. 네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없다.지금이 자각의 때이다. ‘봄’이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보이는 것은 평범하고 보통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진실, 우주, 중심, 영혼, 영원, 진리, 마음은 보이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없다. 형체가 없지만 더 없이 귀중하고 고귀하다.
봄비는 따스하다. 생명의 피가 돌고 온기가 전해진다. 무엇이 이처럼 감화와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놀라운 힘이 있을까. 천지조화와 이치를 헤아리는 봄비는 거룩하고 은혜롭다. 천지 만물의 혼백을 깨우는 손길! 땅 위에 굳건히 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힘껏 뻗히고싶다.
봄비 속에서 나는 무엇이 될까. 지금까지 헛되고 쓸데없는 짓거리를 버리고 새 얼굴을 들고 해를 바라보고 싶다. 흙, 물, 공기, 생물-. 모두가 함께 있어야 할 공동체의 숨결을 듣고싶다. 허물을 벗어버리고 싶다. 봄비가 보내온 깨알 같은 편지글엔 사랑의 축복이 가득하다.
깨어나고 싶다. 날개를 달고 싶다. 새롭게,힘차게, 봄비가 보낸 하늘 편지를 읽는다. 생명의 축가를 듣는다. 봄비를 맞고 새잎을 피워내지 못하는 바보가 될 수 없다. 어디에 있든지 잎망울 꽃망울을 달고 싶다. 초롱초롱 초록 잎 새를 피워 내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고 싶다. 나비가 오고 새들이 노래할 게 아닌가.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봄비가 내린다.. 하늘이 새로운 기회를 베풀고 있다. 만물이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다. 다시 깨어나야 한다. 심장을 쿵쿵 울리는 봄비의 초록빛 생명의 말!
'월간 한국수필2'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년 월간 한국수필 5월호 (0) | 2010.05.12 |
---|---|
월간 한국수필 4월호 (창간 40년 맞다) (0) | 2010.04.07 |
2010. 월간 한국수필 2월호 (0) | 2010.02.02 |
2010년 1월호 월간 한국수필 발간 (0) | 2010.01.03 |
2009년 월간 한국수필 12월호 발간 (0) | 200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