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10년 8월호 월간함국수필

권남희 후정 2010. 8. 6. 15:08

 

발행인 정목일 / 편집주간 권남희 / 사무국장 서원순 정기구독 02-532-8702/기획싱잘 이철희

특집 고 조경희 수필가 추모 5주기 특집/ 해외세미나 신청받습니다 (뉴욕워싱턴 6박7일 )

 

 

  발행인 에세이

                   한 예술가의 초상

                                                            鄭 木 日(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그는 자신의 삶을 불태워버렸다.

삶을 활활 불태워버린 한 예술가의 무덤을 바라본다.

일생의 궤적과 표정, 예술가의 초상을 보고 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 소외되고 무명이었던 사람, 그의 삶은 극열했고 참혹했다.

선천성 간질을 앓았고 혼자선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던 부 적응자였다.

결혼을 했으나 가정은 파탄됐고 독신자로 살아야 했다.

그의 창작혼은 화산이 폭발하여 붉은 용암이 넘쳐흐르는 듯 들끓었다.

작열하는 태양의 정신과 피를 지니고 있었다.

해바라기처럼 지글지글 타올랐다.

격정의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마침내 미쳐버렸다.

정신착란을 일으켜 한쪽 귀를 짤라버렸다.

그 귀를 종이에 싸서 창녀에게 선물했다.

그는 발작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세상과 격리되었지만 화가로서 결코 붓을 놓지 않았다.

하늘과 해를 향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생명의 불길, 생명의 본질, 생명의 아름다움을 혼신을 기울여 그려갔다.

생전에 그림 한 점도 팔지 못했던 소외와 천대 속에 잊혀진 무명 화가였다.

자화상을 자주 그렸다.

누구보다 자신과 대화를 많이 나눈 사람이었다.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순수한 영혼은 깨어있었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쏘았다. 

가슴에 총을 쏘고도 죽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와 이틀이나 고통을 겪은 후에라야 숨을 거둘 수 있었다.

37세였다.

마지막 치료와 정양을 위해 머물었던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담장 밑에 중간쯤, 평범한 무덤이 되어 해골을 눕혔다.

왼 편엔 형을 위해 뒷바라지하며 돌봐준 동생의 무덤이 나란히 놓였다.

두 무덤의 석곽을 담쟁이 넝쿨이 뒤덮어 영혼을 감싸주고 있었다.

그에게 동생이 없었다면 서른일곱  살까지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생은 외롭고 처절했다.

정신착란으로 신음했고, 따돌림과 무관심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20kg이 넘는 화구를 등에 지고 들판에 나가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다.

밀밭, 해바라기, 교회당, 들판-.

그림 속의 풍경들은 생명성으로 꿈틀거렸다.

사물들의 기운 펄펄 살아서 빛을 내고 말을 토해냈다.

빛깔은 강열하고, 숨결이 들리고, 하늘과 땅이 일체가 돼 호응하고 있었다.

삶은 짧았지만 존재의 빛깔은 강렬했다.

살아선 무명이였지만, 죽어선 천재였고 최고의 유명인사가 됐다.

미쳐서 발광하여 스스로 귀를 짜르고 권총으로 자살했지만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생전은 초라하고 남루했지만 사후는 값지고 찬란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일생을 생각하면 처연해진다.

격정적이고 처절하여 전율을 일으킨다.

그를 생각하면 불꽃처럼 심장이 쿵쿵 뛰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포착한 순간의 빛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수척한 얼굴에 깊고 불타는 눈, 스스로 잘라버린 귀, 붓을 든 손을 생각한다.

숙명처럼 화구를 등에 지고 태양빛을 받으며 걸어가던 그의 고독을 본다.


나는 2010년 6월 23일, 파리의 즐비한 미술관과 관광명소를 뒤에 두고, 고호가 마지막 머물다 숨진 곳, 오베르 쉬르와즈 마을에 찾아와서 무덤 앞에 서있다.

유월의 뙤약볕이 작열하는 시골 마을의 평범한 공동묘지 구석, 한 예술가의 무덤에 묵념하며 경배를 바친다.

오, 그의 삶은 미미하고 초라했지만, 사후는 누구보다 휘황하고 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