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10. 12- 18일 2013년 15면 수록
우리 시대 마지막 순수를 찾아서
-터키 이스탄불 오르한 파무크가 세운 「순수박물관」The Museum of Innocence
권남희 작가(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순수박물관 가는 길 -우리의 고향을 만나다-
우리가 찾은 9월초의 터키 이스탄불은 마침 경주- 이스탄불 세계문화엑스포2013 행사가 한창이었다. 거리마다 태극기와 터키 국기가 함께 펄럭이고 터키인들은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호감을 표시한다. 이슬람주의자의 집권을 반대하는 세속주의 단체의 시위가 열린다는 탁심 광장도 조용하다. 아야소피아박물관 앞 광장에서 우리나라 떡볶이와 컵라면을 들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는 우정도 연출하니 터키의 따뜻함이 밀려든다.
오르한 파묵은 노벨 상을(‘06) 수상한 이후 처음 발표한 소설<순수박물관>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N-TV인터뷰에서 ‘나는 이소설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 케말이 사랑하는 여자 퓌순을 기억하기 박물관을 세운다는 허구를 오르한 파묵이 현실의 박물관으로 확장시킨 문학적 사건을 일으켰다. 소설을 쓸 때부터 박물관건립을 위해 땅을 사들이고 물건을 수집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스탄불 추쿠르 주마 달그츠 측마즈에 위치한 오르한 파묵이 세운 순수박물관 가는 길은 버스는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을 10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박물관은 2012년 4월 개장했는데 당시 유럽언론에만 내부를 소개했고 이후 입장객은 아예 촬영을 할 수 없다. 소설가를 꿈꾸면서 스물 두 살에 건축대학을 그만두어서일까? 박물관 가는 골목길에서 첫사랑 영화 <건축학 개론>이 문득 떠오른다. 사랑은 늘 가슴아프게 하는 구석을 갖고 있다.
골목 양쪽은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상업화된 인사동보다 아직은 순수해보이는 이 골목은 앞으로 오르한 파무크 때문에 살아갈 게 분명해 보인다. 박물관 덕분에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이곳을 찾아오는 누군가, 그들은 오르한 파무크가 응답을 기다리는 순수천사들일 게 분명하다.
한국과 터키국기가 시내마다 걸려있다. 경주터키 문화교류행사가 한창이었다.
박물관가는 골목은 추억으로 함몰되는 길이다. 우리는 오래된 물건들을 잡동사니처럼 모아놓고 파는 정다운 가게들을 걷다가 과거로 돌아간 듯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 오르한 파묵은 이러한 정서적 공간까지 철저하게 생각하여 세월의 그물을 쳐놓지않았나 감탄한다.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담거나 기념품들 전시하는 문학관도 아닌 순수박물관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파묵은 " 소설과 관련없는 당시의 일반적 물건들은 없다." 고 매체에 소개한 바있다.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 『순수박물관』은 순진하고 감상적인 소설가의 전형을 보여주려 하지않았나 짐작해볼 뿐이다.
순수박물관이 가까위지니 “ 사랑은 교통사고다. 질병이다. 사랑과 박물관은 어떤 것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같다” 고 말한 파묵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드디어 3층짜리 목조건물 분홍빛이 섞인 붉은색의 순수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 문은 "사랑의 문은 원래 쉼게 열리는 게 아니라" 고 한 소설속 주인공 케말의 말대로 좁다.
1층 벽에는 퓌순이 피운 담배꽁초 4213개 그 개비마다 당시의 감정이 기록되어 전시되어있고 퓌순의 이음이 새겨진 귀걸이, 립스틱, 양념통, 스푼.... 소설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던 시간대가 오후 2시에서 6시였기에 사랑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멈춰버린 갖가지 모양의 시계 33개도 있다. 또한 소설속 케말의 말대로 순수박물관은 키스할 공간을 찾지못하는 연인을 위해 활짝 열려있을 것"이라고 하여 2층 구석은 키스하는 연인이 있으니...
마치 나의 잃어버린 시대를 찾아낸 듯하다.
작가가 쌓은 문학계의 업적을 기대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 두명의 큐레이터와 수십명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순수박물관은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속 주인공 케말의 표현대로 전시관이 아닌, 자긍심의 박물관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오르한 파묵 집필실
순수박물관 방문을 준비하며 한국수필가협회는 조심스럽게 오르한 파묵의 만남을 타진했다. 예상대로 집필 때문에 힘들다는 답을 받았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와 잡지사, 매체들이 찾아왔을까 생각하니 그의 작업시간을 방해하지않기 위해 조용히 지나가기로 한다. 터키어에 ‘바늘로 우물파기’란 말이 있는데 파묵의 글쓰기 작업이 이렇듯 공을 들인다고 들었다. 하루에 0.7매를 쓰는데 10시간을 앉아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생각에 잠긴다. 파묵도 이스탄불 어느 섬에 있는 여름 집필실에서 돌아왔을 것이다. 순수박물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그의 시내 집필실에서 이곳 해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지 않을까. 파묵이 아무리 세계적인 작가라해도 그는 이스탄불을 벗어날 수 없다.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고 할만큼 숙명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스탄불에 예속된 작가이다. 터키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 작가로 다 알려져있는 오르한 파묵,.......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그 작품의 화두인 ‘비애감’을 이해하려면 그의 에세이집 『이스탄불』을 읽어야 한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이 이스탄불에 영향을 주듯 상실감이 파묵의 집안에도 찾아들어 대가족이 헤체되는 시간을 만나게 된다. 대가족들이 파묵아파트라는 문패를 단 이스탄불 아파트에서 살다가 아버지와 삼촌의 파산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작가자신도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고 했다. 화려했던 오스만제국에서 가난한 변방으로 고립된 변화는 불행감을 주고 우울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돌마 바흐체 궁전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며 문득 파묵은 행복한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아직도 이스탄불 중심가에 살고 있고 『눈』을 제외한『내 이름은 빨강』『검은책』등 여덟편의 장편 소설 배경이 모두 이스탄불이고 노벨문학상도 받았지 않았는가. 그가 다니는 레스토랑도 보스포루스해협이 보이는 곳이다.
파묵이 있어 꿈을 먹고사는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하루는 애잔((이슬람신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으로부터 열리는 듯하다. 숙소에서 듣는 그 굴곡있는 느린 곡조는 이스탄불 전체에 퍼지고 터키 어디를 가나 울린다. 새벽부터 하루 5번 울리는 애잔 ..... 어딜가나 언제나 피할 수 없이 듣는 이 소리에서 작가는 어떤 신호처럼 터키의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터키인들이 애잔에서 벗어날 수 없듯 나 역시 이스탄불 어디를 가나 오르한 파묵의 마음을 따라가듯 작가 생각을 하고 만다. 어느 시간대 분명 그는 거리를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지만....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날 야경을 보기위해 부두에 들러 석류 쥬스 한 잔을 마신다. 아무 것도 섞지않고 석류를 반으로 잘라 짜기만 하면 붉은 쥬스가 한 컵 채워지는 순수함도 마지막이다.
뒤 3층 붉은 목조건물 이 순수박물관
이스탄불 거리 어디에선가 청년 오르한 파묵도 방황했을 것이고 석류 쥬스를 마셨을 지도 모른다. < 새로운 인생>소설은 공학도로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이스탄불 밤거리를 헤매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투영시켜 썼던 작품이다.
파묵에게 있어 이스탄불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이스탄불』 작품에 수백번 등장하는 한 단어 비애 ( 우울, 슬픔, 우울, 우수 등) 이다. 이난아 외국어대 교수는 이 단어의 번역을 놓고 무척 고심했다고 했다. 우리의 恨(한)처럼 파묵도 무언가 이스탄불에 정체된 우울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여행자들도 느끼지만 터키는 발길에 차이는 게 유적이다. 오래된 목조건물도 많이 보이고 관리도 안된 채 뒹구는 유적, 길거리에 있는 부서진 성곽, 고양이의 서식지가 된 유적지, 덩치 큰 개들이 유적지기처럼 어슬렁거리는 풍경이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것이다. 터키=낙후된 고국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역사를 일으키고싶은 지식인으로서의 욕망이 분출할수 있다 .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구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뉴욕이나 파리를 능가하는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런 도시가 세계의 변방이 된 채 상처로 남아 작가의 자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자신의 집을 짓기위해 유적지의 돌을 빼가는 국민들을 보며 자존심이 상하고 마으밍 아픈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 우리 시대 마지막 순수를 발견하고 돌아보며 어쩌면 작가로서 같은 핏줄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보수적이었던 결혼풍습, 시위와 군사 쿠테타, 계엄령,통행금지, 장발단속등 공통의 문화를 갖고 있어서이다.
상실감을 앓고 글쓰느라 앓고 있는 파묵의 집필장소가 있는 이스탄불에서 오히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어가며 다시 한번 찾아보고싶은 도시임을 확인한다.
'권남희 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남희수필가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수필 선집 <내 마음의 나무> 시선사 (0) | 2013.12.27 |
---|---|
1987년 4월 월간문학 수필 당선후 (권남희 수필가) 연말 시상식 사진 한장 귀한 자료가 되었네요 (0) | 2013.12.25 |
윤동주문학관 (종로구 부암동) (0) | 2013.10.08 |
권남희 한국수필 편집주간 수필발표 <수필과 비평> 9월호 (0) | 2013.09.05 |
권남희 편집주간 에세이21 가을호 수록원고 <포도알의 수를 기억해야 하는가> (0) | 2013.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