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도연초, 호조키 (오시다 겐코. 가모노 조메이 ) 일본수필선

권남희 후정 2013. 10. 27. 13:35

오시다 겐코. 가모노 조메이 수필선

도연초. 호조키 을유문화사 옮긴이 정장식 (청주대 일어일문과 교수, 서울교대와 국제대 일문과 졸업.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고전문학과 일본학전공)

1. 오시다 겐코( 1283-1353) 와카의 대가로 젊어서부터 궁정을 드나들며 와카와 궁정 예법을 익히고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며 문화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30세 전후에 출가하여 세상을 관조하며 쓴 <도연초徒然草>는 한가한 가운데 느낀 자연, 인생, 생활, 정치, 예술 등에 관한 다채로운 내용을 243단의 글에 담은 것이다.

2. 가모노 조메이( 1155-1216)

교토의 神)社 신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 아버지 사후에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불만을 와카에 쏟아 이름을 날렸다. 젊은 시절 갖가지 천재지변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으며 고단한 속세에 회의를 느끼고 50세에 산속에 들어가 <호조키 >를 썼다, 대표 저서로는 <무묘소> <홋신슈>가 있다.

차례

도연초 해설( 도연초와 작자)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약방의 감초같이 꼭 실리는 고전 작품은 <도연초>다. 이것은 <도연초>가 일본문학사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말하며 아울러 <도연초>에서 요시다 겐코가 말하는 영지英智를 일본 고전 문학의 전통으로 지켜 나가려는 의지를 볼 수 있겠다. <도연초>는 243단의 짧은 문장을 후세의 학자가 편의상 구분한 것이며 , 책이름은 서단에서 따 온 것으로 내용은 작자의 견문, 감상, 인생관 등을 자유럽게 써 놓은 것이다. 요시다 겐코는 1283년에서 1353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집안은 대대로 신사의 신관을 지냈으며, 집안 환경 덕분에 그도 귀족적 교양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젊었을 때 조정에서 일한 적있으나 때는 귀족들이 무사에게 밀리는 시대였으므로 그는 30초반 속세를 떠나 출가하였다고 하나 동기는 분명하지 않다. 그 출가라는 것이 오늘날 생각하는 축가와 달리 , 속세의 은자로 자유로운 경지에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 <도연초>는 불교의 불교의 무상관과 상고취미를 진하게 나타내며 교훈적인 내용과 진기한 사건,궁중의 일들을 표현에 구애받지않고 써 내려갔다. 내용을 분류해보면 처세훈 32%, 학문의 고증이나 고사 25% , 취미10%, 여성이나 남녀에 대한 이야기 4%, 무상이나 출가권유 8%, 유머 6%, 진기한 이야기가 5%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의 3분의 2가l 인간적 교양으로 요시다겐코의 귀족적 교양과 깊이 관계가 있는 것들로 이는 그가 어마나 헤이안 귀족사회를 동경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 <도연초> 는 중세에 씌여졌지만 인간성회복을 추구하는 근세사상과 코드가 맞아 에도시대에 들어와 각광을 받게되었다.....또한 독립적인 문학작품으로 읽힌 것은 근대에 들아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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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비단으로 싼 책표지는 빨리 해져서 곤란하다.”라고 라고 어떤 사람이 말하자, 와카를 잘짓는 돈아( 1288-1372) 스님이 “ 얇은 비단으로 싼 책표지는 아래위가 해지고 , 자개로 장식한 족자는 조개 조각이 떨어져야 운치가 있다.” 라고 했다는데 그것은 정말 의외로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몇 권의 야이기책을 한권으로 묶었을 때 , 그 장정이 가지런해야 좋다고 하는데 어떤 스님은 “ 어떤 물건이나 한 벌 쭉 고르게 갖추려는 것은 정취를 모르는 것이다. 고르게 갖추지 않는 것이 보기좋다.” 라고 한 말은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대체로 무엇이나 잘 갖추어진 것은 좋지않다. 약간 덜된대로 두는 것이 흥미롭고 앞으로 더 할 것이 있는 것같아 좋다. “ 궁궐을 지을 때도 반드시 손질할 곳을 남겨두는 법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옛사람들이 쓴 불교나 유교서적에도 장章이나 단段이 빠진 것이 제법 많다.

오조키 해설( 오조키와 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