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Give me my father's body )

권남희 후정 2007. 6. 27. 16:44

 

 

 

뉴욕 에스키모 -청어람 미디어 -

 미닉의 일생  - 켄 하퍼 지음 ( 1945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생 . 캐나다 노스웨스트 테리토리 에스키모 거주 지역 누나부트에서 교사생활시작. 백인 아내와 이혼 . 캐나다 정부의 영어전용정책에 의분을 갖고 에스키모 언어인  이눅티투트를 배움, 에스키모들로부터 ‘키다리선생’ 이라는 별명을 얻음  1974년 교직 은퇴후 북극만에 서점개업. 에스키모 문화에 대한 집필활동 시작. 1933년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미닉의 아버지 키수크 및 다른 에스키모 유골반환.

차례 

* 옮긴이의 글 / 추천의 글 / 들어가는 글

1. 피어리의 사람들  2. 철의 산  3. 미국에 도착하다 4. 뉴욕의 에스키모 고아소년  5. 미국인 미닉

6. 월래스 사건 7. 사기사건 8. 눈물가득한 삶이 찾아오다 9. 우리 아빠를 돌려주세요

10. 과학의 이름으로 11. 불쌍하기 짝이없는 미닉이야기 12. 희망없는유배 13. 북극계획 14. 탈출

15. 철갑협정 16. 그린란드로 돌아오다 17. 다시 에스키모가 되다 18. 땅끝마을 기지 19. 새빨간 거짓말쟁이 우이사카사크 20. 지명수배, 죽든, 살든 상관없음   21. 크로커랜드 탐사대 22. 다시 브로드웨이에 서다

23. 북쪽 나라

* 에필로그

* 나가는 글 

 

이렇게 상상해보자 !  만일 당신이 경복궁에  붙어있는 민속박물관 한 귀퉁이에서 , 당신이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해골과 마주쳤다고 .

당신은 분명히 그 어릴 적 돌아가신 분이 꽃상여를 타고 가 묻힌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신의 눈앞 쇼윈도우에는 돌아가신 그 분이 철사로 얼키설키 엮어놓은 뼛조각으로 변해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옮긴 이 박종인의 글 중 -


미닉 월레스는 1897년 그 이름도 유명한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뉴욕으로 데리고 온 북극 에스키모들 가운데 가장 어린 소년이었다. 미닉의 아버지를 비롯한 네명은 곧 죽었다. 미닉의 인생도 서서히 표류해갔다.

북극 정복에 정신이 팔려잇던 피어리와 미국 자연사 박무로간 관리들( 이곳 인류학부는 에스키모 표본연구를 위해 피어리에게 이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 그리고 미닉을 데려와 입양까지 했지만 끝내 경제적은 곤란과 개인적인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윌리엄월레스, 이들이 미닉을 방황하게 만든 사람들이다.  뉴욕에 도착한 후 몇년 만에 미닉은 에스키모 언어를 잊어버렸고 교육은 더 이상 받지 못했다.  툭하면 찾아오는 폐렴으로 건강도 잃었다.  미닉은 가족도 없이 혼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중략

세상의 북쪽 끝에서 온 소년은 20세기에 갓 접어든 뉴욕의 부귀와 권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하지만 에스키모에 대한 문명인들의 호기심은 금세 사라졌다. 미닉은 곧 미국의 다른 얼굴과 마주쳤다. 자부심과 오만, 그리고 피부색이 야기했을 법한 차가운 무관심이었다. ... 중략

미닉의 동족,  그의 언어와 단정되고 세상에 대한 소속감마져 잃어버렸지만 , 그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정당한 매장을 위해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겠다는 요구도, 그리고 자기가 제대로 설명만 하면 사람들이 이해를하고  도와주리라는 신념도 그대로였다. 10대 소면은 마침내 피어리의 후원자들에게 굴욕감을 주며 귀향선을 탔다.

귀향 후 얼마동안 미닉은 에스키모 말을 다시 배우고 숙달된 사냥꾼으로 변해 백인 탐험가들의  통역자와 안내자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두 세계 틈새에 끼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영어로 말하고 싶어했다. 그가 느끼고 있는 것 가운데 일부는 백인들하고만 소통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자신의 일부는 북극의 오로라보다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불빛을 선망하고 있다는 것을.

운명적으로 미닉은 다시 뉴욕으로의 또 다른 귀향을 선택했다.  그에게 고향은 없었다.

자기 세계에서 강제로 떠나게 되었고 다른 세계에서는 완전히 환영받지 못한 채 영원히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매도록 저주받은 것이다.  에스키모( 생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뜻)

1916년 미국은 북극에 관심이 없었다. 유럽에서 진행중이던 전쟁이 관심사였다. 미닉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어린이가 아니라 다 자라난 성인이었다. 10년 전 자기 아빠의 뼈를 박물관 전시실에서 발견하면서 받았던 깊은 상처는 오직 미닉만 기억 할 뿐 , 사람들은 거의 잊어버렸다.

1918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형 유행성 감기가 벌목장을 휩쓸었다. 미닉은 10월 29일 폐렴으로 사망한다.

         캐빈 스페이시 (영화배우) 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