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기행 畵帖紀行1권
예의 길을 걷다 -김병종 (효형출판)
김병종 : 1953년 전북 남원 출생.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 전공 / 서울,파리,시카고, 브뤼셀, 바젤, 베를린 등에서 열여덟 번의 개인전 가짐/ 5백여 회의 국내외 기획전 참여 / 대영 박물관, 온타리오 미술관, 서울 국립 현대 미술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대한민국 문학상 받음 / 유가예술 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 서울대 미대 학잠/ 서울대 조형 연구소장 역임/ 서울대 미대 교수 / 서울대 미술관장
차례
* 책을 내면서
* 개정판을 내면서
1. 이난영과 목포 ( 이난영의 목포는 울지 않는다 )
2. 진도소리와 진도 ( 노래여, 옥주 산천 들노래여)
3. 강도근과 남원( 지리산 첫잠 깨우는 ‘동편제 탯자리’ )
4.서정주와 고창 ( 선운사 동백 꽃에 미당 시가 타오르네 )
5. 허소치와 해남 ( 조선 남화의 길따라 )
6. 이매창과 부안 ( 이화우 흩날릴 제 ‘ 매창뜸’에 서서 )
7. 윤선도와 보길도( 수국에 들려오는 어부의 가을노래 )
8. 운주사와 화순 ( 천년의 바람이여, 운주의 넋이여)
9. 임방울과 광산 ( 낡은 소리북 하나로 남은 명창 )
10. 김삿갓과 영월 ( 노루목 누워서도 잠들지 않은 시혼)
11.아리랑과 정선 ( 아우라지 뱃사공아, 내 한마저 건너주게 )
12. 나운규와 서울 ( 어둠 속에 치솟은 한국 영화의 혼불 )
13. 김명순과 서울 ( 도시의 허공에 펄럭이는 찢겨진 시 )
14. 정지용과 옥천 ( 얼룩백이 황소울음...꿈엔들 잊힐리야 )
15. 나혜석과 수원 ( 못다 핀 화혼은 서호西湖에 서리고 )
16. 이건창과 강화 ( 어둠의 역사 밝힌 강도江都의 애국시 )
17. 김동리와 하동 ( 저문 화개장터에 ‘역마’는 매어있고 )
18. 별신굿 탈놀이와 안동 하회( 유림은 모른다네, 한풀이 탈춤)
19. 이인성과 대구 ( 낡은 화폭에 남은 달구벌 )
20. 남인수와 진주 ( 남강에 번지는 애수의 소야곡 )
21. 박세환과 경주 ( 서라벌 향해 귀거래사 부르는 광대)
22. 문장원과 동래 ( 언제 다시 한바탕 동래춤을 춰볼꼬)
23. 임각화와 언양( 대곡천 비경에 펼쳐진 선사 미술관 )
24. 이중섭과 제주( 지금도 살아있는 , 바다 위에 그린 그림 )
25. 김정희와 제주( 탐라의 하늘에 걸린 <세한도> 한 폭)
도시의 허공에 펄럭이는 찢겨진 시
-김명순과 서울 -
대부분의 예술가는 단순하다. 그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땅에서라면 한 잔의 커피와 한 조각의 쿠키에도 행복해지는 존재다. 1920, 30년 대에는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때 이 나라는 아직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허다한 빛나는 재능의 예술가들이 다른 나라를 유리流離하거나 좌절 끝에 죽음의 길로 내몰려졌다. 특히 그 시절 이나라는 여성 예술가들에게 가혹했다. 그들에게는 잘해야 ‘내놓은 여자’이거나 심지어 ‘화냥년’ 비슷한 편견까지 가졌다. 자유연애의 불길도 이런 편견에 한몫했다. 작가 김명순도 그렇게 내 몰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여자 이상이라고까지 불렸던 김명순은 예정된 경로처럼 어두운 생의 질곡을 간다.
조선아 / 내가 너를 영결할 제 / 죽은 시체에게라도 학대해다구/ 그래도 부족하거든 /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 나더라도 /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를 해 보아라 / ...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 / 김명순 - 유언- 중에서
시인 김명순은 이렇게 분노했다 . 자신을 둘러 싼 현실과 그 어둠에 대해서 .
( 서울아 쓰러져라 / 부모 형제야 너희가 악마 - 시 ‘ 외로움의 변조’ )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다 그녀는 까미유 클로델처럼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어갔다.
김명순, 1920년대의 근대 예술사를 건너 올 때면 만나게 되는 발광체 . 어떤 소설로도 따라잡기 어렵게 극적인 생애를 살다가 간 여인이었다. 이 나라 여성사에 기록될 만한 근대적 자각의 한 상징체였지만 갑자기 떠올랐다 흔적없이 사라진 밤하늘 우성처럼 짙은 어둠에 묻혀버린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 한국 현대 소설사상 최초의 여류 작가-김우종-” 라거나 “ 한국 현대 시 최초의 여류 시인 -김해성- ” 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이제는 희미한 안개 저 편으로 사라져버려 흔적 하나 찾을 길이 없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서 이미 “생장生葬되는 답답함을 어찌하랴 - 시 ‘유리관 속에- ’ 했던 것처럼 사후에는 더더욱 그 이름이 가려지고 매장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남성 위주의 한국 문학사 속에서 말이다.
한 여자가 돌 속에 묻혔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 떠나갔네 /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 이성복 <남해금산) 중에서
김명순은 ‘돌 속에 묻혀서 ’ 풍화되어 버린 작가였다. 생가도 무덤도 한 점 혈육도 찾을 수가 없다, 몇 편의 글과 이름 석자만 남아있을 뿐이다. 짧은 생애 동안 60여 편의 저항적 , 실험적인 시에 10여 편의 소설 그리고 평론과 희곡에 이르기까지 괴력怪力으로 문학의 전 장르를 섭렵해 갔던 여자였다. 작가뿐 아니라 신문기자와 배우로까지 눈부시게 활동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감했던 그녀는 당시 들불처럼 번졌던 ‘자유연애’에 불나비처럼 허망하게 몸을 던져 자신을 망가뜨리고 만다.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끝내 아비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아이를 낳아 비난의 돌팔매를 맞았고 , 정신착란으로 부랑자처럼 도시를 헤매다 정신병원에 갇혀 거기서 홀로 죽어간 기구한 삶이었다. 세상은 그녀의 남성편력을 비난했을 뿐, 그녀를 농락한 남성들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그녀를 모댈로 쓴 김동인 소설 < 김연실전 >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유감스럽게도 그 작품을 당시 나돌던 <꿀단지> 류의 포르노 소설로 잘못 이해했을 만큼 내게 ‘김연실’이라는 여류 소설가의 남성편력과 성애의 세계는 충격적이었다.소설은 자유 연애를 넘어 여주인공을 프리섹스주의자로 그리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중학생 소년은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왔다.
김명순은 문학을 통해 살아있는 동안 내내 여성을 억압하는 온갖 종류의 모순된 구조와 전사처럼 싸운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도처에 꽃향기 대신 피냄새가 진동했다. 문학적 침착성이나 완성도 없이 자전적 얘기가 먼저 튀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문학 밖에 없어서였을 것이다.
연전에 그녀의 베일에 싸인 생애 한토막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일본에 유학 보내 작가의 길을 걷게 햇던 K화백의 자제인 원로 화가 한 분을 파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K화백은 김동인의 친구이자 김명순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문학적 후원자로 알려졌던 사람, 평양 대지주의 아들로 넥타이 하나를 고르기 위해 긴자 거리에 나타나곤 했다는 멋쟁이 화가였다. 퐁피두 근처의 ‘보브르’라는 오래된 호텔에 우연히 함께 투숙하여 그 호텔 지하 식당에서 식은 커피잔을 앞에 놓고 나는 선생으로부터 밤이 이슥하도록 한국 근.현대 예술의 생생하고 흥미로운 이면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선생의 선친과 김명순에 얽힌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나 역시 물을 수가 없었다.
K화백과 헤어져 다음날 나는 파리 제6구의 셍제르맹데프레에 있는 ‘되마고’라는 우서깊은 카페에 갔다. 사르트르나 카뮈같은 프랑스 시인, 소설가들이 자주 들러서 명소가 된 카페다. 여기는 시인 아무개, 화가 아무개가 자주 앉았던 자리라는 명패가 탁자마다 붙어있다. 심지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어릴 적에 자주 찾았던 자기 아버지의 고향 ‘알리에’는 프루스트 탄생 1백주년이 되던 1971년 그 이름을 아예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콩브레’라고 바꾸기까지 했다. 일본에서는 <실락원>이라는 대중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이 소설과 영화 속에서 다녔던 곳을 개발하여 관광 명소로 개발하였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우리는 언제...’ 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비단 김명순의 경우만이 아니라 나는 이 나라 근. 현대 선배 예술가들의 생애를 좇다가 맥이 풀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천지간에 어디 대고 물어 볼 곳 하나 없었고 뒤져 볼 자료 하나 없기 다반사였다. 김명순의 경우는 신문기자로서 비교적 활발히 활동했음에도 그 생애의 흔적이 오리무중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명순 생전 서울에서의 주활동 무대는 태평로였다. 도쿄 여자 전문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그녀가 기자로 재직했던 매일신보 사옥은 지금의 중구 태평로 1가에 있었다. 광화문과 서울 시청을 끼고 있는 이 거리는 권부權府와 言府의 심장이어서 이 일대와 종로통은 문학인과 언론인으로서 그녀의 지적, 모더니스트적 학습장이기도 했던 셈이다.
-석양은 지금 황금 빛깔에 ... 서울 종로 네거리에 뜨겁게 내리비친다. (......) 종로 경찰서 지붕 위에 독일 병정의 모자같은 시계가 바로 네시를 가리켰을 때이다 .- 소설 ‘ 탄실이와 주영이’ -
그러나 서울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녀는 �기듯 다시 도쿄로 가서 거기서 생애를 마친다. 김명순뿐 아니라 허다한 예술가들이 마지막 출구처럼 도쿄로 내몰리곤 했지만 당시 그곳은 생애 종착역이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출구는 못 되었다.
언젠가 광화문 육교 위를 걷다가 나비를 본 적이 있다. 충격이었다. 빌딩 숲과 탁한 대기를 뚫고 그 여리디 여린 생명체는 어떻게 그곳까지 날아왔던 것일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흰 생명체가 자동차의 물결 위로 휴지처럼 떠가는 것을 보았다. 문득 태양이 검어지고 한낮의 거리가 흔들릴만큼 생명의 조종弔鐘이 난타되는 것을 보았다. 김명순도 길 잃은 나비처럼 그렇게 이 도시를 헤매다 사라져갔을 것이다. 억센 철근과 콘크리트와 남성 지배의 ‘세속도시’를 향해 ‘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원망하면서.
김명순 ( 1986년 -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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