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지식경영법 -다산정약용 지음 -정민교수 펴냄

권남희 후정 2007. 8. 19. 11:01

 

 권남희 수필가 정리 -독서논술수업자료( 이곳에는 9장과 10장이 소개되어있습니다 )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김영사)


정민 (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재직중. 

‘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꽃들의 웃음판’ 을 통해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도교적 상상력의 문체를 다룬 ‘초월의 상상’ 새의 기호학적 의미를 문학과 회화 작품을 통해 읽어본 ‘한시 속의 새 . 그림 속의 새 ’ 2책 등 다양한 등 다양한 지적 편력을 보여 주었다. 틈틈이 잠언풍의 청언소품을 모아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내가 사랑하는 삶’ ‘죽비소리’ ‘ 돌 위에 새긴 생각’ 을 펴냈다.  최근에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사유와 지식경영에 관심이 많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와 ‘미쳐야 미친다’ 가 여기서 나왔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이  경험했던 정보화 사회가 21세기 정보화 사회와 본질면에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믿는다.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을 꼼꼼히 살핀 이 책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세상은 변해도 막상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문화는  변화할 뿐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9장  정취를 깃들여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인간적 지식경영

- 정성으로 뜻을 세워 마음을 다잡아라 - 성의병심법

- 아름다운 경관 속에 성품을 길러라 - 득승양성법

- 나날의 일상 속에 운치를 깃들여라 - 일상 득취법

- 한 마디 말에도 깨달음을 드러내라 - 담화시기법

-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 - 속중 득운법

10장 핵심 가치를 잊지마라 -본질을 놓치지 않는 실천적 지식경영

- 위국애민 그 마음을 한시도 놓지 말라 - 비민보세법 

-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 말라 -  간난불최법

-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추구하라 - 실사구시법

-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라 - 오득천조법

-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하라 - 조선 중화법

다산 정약용 선생 저술연보 / 참고서목 

        

481페이지부터 

 부지런히 노력하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다잡아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무슨일 하더라도 정성이 없이는 안 된다. ..정성만 가지고도 안된다. 마음을 확고하게 붙들어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다산의 여러 제자 중에서도 황상 ( 1788- 1863?) 은 다산이  가장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다.  이 둘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사연을 많이 남겼다.  다산이 유배 간 이듬해 주막집 골방에 머물고 있던 1802년 열다섯이던 그는 처음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다산은 이 수줍음 많은  소년의 총명을 대번에 간파했다.


    - 황상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다산이 황상에게 내려준 삼근계 三勤戒 -

내가 황상에게 문사文史를 공부하라고 권했다.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잇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 둘째는 앞 뒤가 꽉 막혔으며 ,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리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나는 동천여사에 머물고 있었다. -황상 ‘임술기’ -치원유고 -

당시 다산이 황상에게 써 준 글이다 . 다산의 문집에는 없고 황상의 문집인 <치원유고>에만 실려있다.      

황상은 신분 때문에 과거를 볼 수도 없었다. 다산은 그래서 그를 학문의 길로 인도하는 대신 문학으로 이끌었다. 시에 대한 황상의 재주는 특별히 남달랐다. 다산은 1805년 4월에 황상에게 날마다 한편씩 부賦를 짓게 했다. 일종의 정과 실천법이다.

4월 1일에 지은 ‘제부’를 시작으로 날마다 한 수씩 지어 4월 30일 ‘주중선부’까지 30수를 지었다. 


성의로 다잡아라    

 정약전의 친필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우연히 한 장 남은 그의 편지는 아우인 다산에게 보낸 것이다. 온통 황상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 모름지기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재주를 이루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인재가 드물어 지금 세상에서는 이 같은 사람을 기다리기 어려우니 , 결단코 마땅히 천 번 먼번 아끼고 보살펴주어야 할  것일세.  ...’


꾸밈없이 소통하라

다산은 황상을 아껴 나들이를 다닐 때도 늘 그를 데리고 다녔다.

아들 학연이 왔을 때도  그를 데리고 두륜산 정상까지 올라간 이도 황상이었다.

어느날 보은산방에 머물고 있던 황상의 시를 받고 , 그 시에 차운해서 시를 써 주었다. 그 시의 친필 원본이  남아있다. ( 보내온 시가 돈좌기굴해서 내 기호와 꼭 맞는다.  기쁨을 형용할 수가 없구나. 이에 축하하는 말을 적는다. 아울러 스르로 제자 중에서 너를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 기뻐한다- )

황상에 대한 다산의 애정이 이러했다.  이후 다산은 주막집을 떠나 한동안 이청의 집에 머물다가 초당으로 옮겨 , 외가인 해남 윤씨의 자제들이 주축이 된 양반가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신분의 차이도 있고 아버지 황인담이 술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시묘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황상은 합류하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와중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모범이 되는 옛시를 읽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초서하며 지냈다.  황상은 진솔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꾸밀줄 몰랐다.

스승이 유배지에서 풀려나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달리  연락을 취하거나 다른 제자들처럼 서울까지 찾아가지도 않았다.

강진 시절 초기에 함께 배웠던 동생 황지초가 마제로 스승을 찾아갔다.

다산은 그가 돌아가는 편에 황상에게  편지를 전했다.  (서로 헤어진지도 10년이 지났구나.  네 편지를 기다리지만 편지는 이생에서는  없을 것만 같다...내 지내는 모습은  연암이 잘 알테니  , 이제 가거든 자세히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황상은 요령이 없었을 뿐 스승에 대한 진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mr가 마제로 스승을 찾아 온 것은 다산이 강진을 떠난 지 18년 뒤인 1836년 2월이었다. 편지를 받고도 8년을 더 뜸들이다가 스승의 회혼례에  맞춰 상경하였던 것이다. 이 때 다산은 잔치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위중했다.  열 다섯 살 소년으로 처음 만나 쉰을 눈앞에 둔 중늙은이가 되어 다시 만났다.  며칠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을 고할 때 스승은 혼미한 중에도 황상에게 접부채와 피리와 먹을 선물로 주었다.

새로 구한 운서도 주었다. 시공부에 참고하라는 뜻이었다.  

다산은 세상을 떠나고 도중에 부고를 들은 황상은 걸음을 돌려 스승의 장례를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는 상복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후 소식이 끊겼다.

10년 뒤인 스승의 기일에 맞춰  황상은 다시 스승의 무덤 앞에 섰다. 18일을 꼬박 걸어 검게 탄 얼굴에 퉁퉁 부르튼 발로 기별도 없이 문간에 들어선 그를 정학연도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과 황상은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정씨와  황씨 두 집안이 지손 대대로 서로 잊지 말고 왕래하며 오늘 이 아름다운 만남을 기억하자고 문서를 써서 맹세햇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황계첩이다 .


보람을 발견하라

황상은 75세 때 스승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며 <임술기>를 썼다.  스승을 만난 처음 해가  임술년이었다.  


황상의 편지 - 산방에 처 박혀 하는 일이라곤 책읽고 초서鈔書하는 것 뿐입니다. 이를 본 사람은 모두 말리면서 비웃습니다. 하지만 비웃음을 그치게 하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귀양살이 20년 동안에 날마다 저술만 일삼아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났습니다.  제게 삼근의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 .” 몸으로 가르쳐주시고 직접 말씀을 주신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귓가에 쟁쟁합니다.  관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겟습니까?  -황상 <화주 삼로에게 드림 > 치원유고

이것이 전설적인 ‘과골삼천’의 고사다. 다산은 늘 돌부처처럼 앉아 저술에만 매달려 힘쓰다보니 ,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 나중에는 통증 때문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아예 벽에 시렁을 매달아놓고 서서 작업을 계속 했다는 전문도 있다.

494쪽-495쪽 : 제주도 귀양지에서  황상의 시를 읽어본 추사 김정희도 그의 시에 감동했다. 유배에서 풀려나 뭍에 오른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황상의 집이엇다. 추사 형제는 만년의 황상과 교유하며 ‘치원유고’에 형제가 나란히 서문을 써주기까지 했다. 신분이 미천하여 세도가의 곤핍을 당할까 염려하던 정약전의 기우는 우려였다.  ...

다산은 말한다. 부지런히 노력해라. 성심으로 노력해라. 복사뼈가 세 번 구멍나고 벼루가 여러 개 밑창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묻지마라.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책을 안 읽고  무슨 일을 하겟느냐? 백년도 못되는 인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겠느냐?


496쪽부터 -아름다운 경관 속에 성품을 길러라

- 미리 깨어 준비하라 ( 다산은 공부만 하는 샌님이 아니었다. 풍류를 즐길줄도 알았고 운치도 있었다.  젊은 시절 그가 쓴 기행문에서 우리는 특히 자연 속에서 삶의 행간을 읽고 소통하는 인상적인 장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세검정에서 노닌 기 ’

-탈출을 감행하라 ( ‘천진암에서 노닌 기 ’마지막 구절  -이렇게 사흘을 놀다가 서울로 돌아오니 , 무릇 얻은 시가 20여 수였다. 먹어 본 산나물은 냉이와 도라지, 고비와 고사리, 그리고 두릅 따위 대 여섯 종류였다.  -     

-기회를 활용하라( 춘궁기의 백성들에게 창고의 곡식을 풀어벅이기 위해 다산은 여러 창고를 돌며 곡식을 나눠주는 순창巡倉을 떠났다. 이 때의 여정을 기록 한 것이  <곡산북방 산수기 >다 )

-사물을 투시하라 (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려운 글을 줄줄 읽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물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507쪽 마지막 구절- 다산은 말한다 .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성품을 기르고 자연과 마주해서 마음을 닦아라. 조이기만 하고 풀줄 모르면 마침내는 부러진다. 이완이 잇어야 긴장할 수 있다. 늘 눌려만 있으면  용수철은 튀어오를 힘을 잃는다. 책만 책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다 책이다. 툭 트인 생각, 걸림없는 마음은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

나날의 일상 속에 운치를 깃들여라

- 선 자리를 사랑하라 (  일상득취법-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다산은 귀양지에서도 자신이 처한 공간을 정성껏 꾸몄다 )

-의미를 찾아가라 (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가기 전 한 동안 장기로 귀양가 있었다.

대놓고 백안시하는 마을사람들 때문에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때 마을을 벗어나 시냇가로 들판으로 산책하며 시를 썼다. 다시 강진으로 귀양 간 후  다산팔경을 정하고 다산팔경사를 지었다 ( 불장소도 , 박렴낭서, 난일문치, 세우사어, 풍전금석, 국조방지, 일조죽취, 만학송도) 담장을 스치는 작은 복숭아나무 , 주렴에 부딪히는 버들솜, 따뜻한 봄날 들려오는 꿩울음소리. 보슬비 속에 물고기 밥주기, 단풍나무 뿌리로 칭칭감김 비단 바위, 네모난 연못에 비친 국화 , 대나무 푸른 언덕 , 골짝으로 불어오는 파도소리같은  솔바람 소리

-공간을 경영하라 ( 1812년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에 다산이 꾸민 풍광이 잘 나타나있다 )  2천권의 책도 나누어 쌓아놓았다.

-일상을 만끽하라 (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마라. 명승지를 찾아다닌 것도 없다. 내가 사는 공간에 정성을 쏟아라 .

44.한마디 말에도 깨달음을 드러내라 (담화시기법)

-중심을 잡아라 ( 깨달음은 먼 데 있지 않다 . 듣고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데 막상 찾으려 하면 숨어버린다. 문심혜두가 꽉 막힌 까닭이다. 다산은 실없는 농담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볕을 받는 곳은 저녁에 그늘이 먼저 든다.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지는 법이다. 풍차처럼 돌고 도는 것이 운명이다.  큰 마음을 품고 가을 매가 창공을 박차고 나는 듯한 기상을 품어야 한다. 몸뚱이를 위해 사는 소인과 정신을 기르는 대인 가운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각성을 유도하라 ( 부용당기-황해도관찰사 이의준의 초청을 받아 다녀온 후  쓴글

-여유를 잊지마라 ( 재물을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 ‘ 남에게 베풀어라’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단단히 잡으려 들면  들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 나간다 토지를 믿는 것은 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 100년사이에 주인이 대 여섯번은 바뀌는 토지나 남자를 여러번 바꾸는 창기를 어찌 내게 있어서만 수절할 것을 바라겠는가.

-이치를 관조하라 .보아 넘기지 말고 이치로 따져 음미하라 (다산의 머피의 법칙 ‘ 재주있는 젊은이는 그 재주를 한 번도 펼필 기회를 못만나기가 쉽다 . 아비가 구두쇠 소리를 들어가며 한 푼 두푼 모은 재산은 방탕한 자식이 하룻밤 노름으로 다 날려 버린다. 왜 똑똑한 여자는 멍청한 사내에게 시집가는가 . 보름밤에 달 구경 약속을 잡아놓았으면 그날 밤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45.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속중득운법 )

-품위를 유지하라 ( 다산은 공부를 핑계로 온 식구를 배곯리며 저 혼자 고고한 체하는 학문을 가장 혐오했다 . 부모봉양도 도외시하고 온 집안 식구를 괴롭히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저만 좋자고 공부하면 서 입만 열면 인의를 말하고 효제를 논한다면 이것보다 가증스러움 일은 없다.

-운치를 깃들여라 ( 다산은 자급자족할 만큼의 경제활동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기한 과일을 심는 ‘원’과 좋은 채소를 기르는 ‘포’ -원포경영과 누에치기를 강조했다.

-서울을 지켜라 ( 다산은 폐족이 되었 다고 서울을 등지고  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멀고 먼 외딴 곳으로 숨어드는  것은 결국 자손을 노루나 토끼처럼 만들어버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선비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생각은 없고 실재하지도 않는 낙원을 찾아 제 몸을 괴롭히고 나아가 집안을 그르치는 행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맑은 꿈을 간직하라 ( 마음 속에서 속된 기운을 걷어내라. 하지만 새오할을 외면하는 것을 고고한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무능에서 나온 적빈과 군자의 맑은 청빈은 전혀 같지가 않다. 경제를 생각하되 운치를 잃어서는 안된다 )

    

    10장 핵심가치를 잊지 마라


46. 위국애민  그 마음을 한시도 놓치지 마라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며 큰 도를 듣지 못하여, 임금에게 미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없이는  학문도 문학도 의미가 없다. )


-애민의 뜻을 펴라 ( 자기과시의 현학취미 ,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 상아탑의 엄숙주의 이런 것들을 다산은 혐오했다 , ... 그저 음풍영월이나  하며 자기과시에 힘쓰는 시를 그는 철저히 배격했다. )

-현실을 고발하라( 쑥을 캐서 죽을 쑤어 먹는 유랑민들, 마른 모를 뽑아버리며 통곡하는 농부들 , 자식을 하나 죽여서라도 비나 한 번 쏟아졌으면 하는 쑥대머니 아낙,조정에서 나누주라 한 메밀종자는 주지않고 백성들에게 형벌을 내리며 빨리 심으라고만 닦달하는 현령,   ,겨반, 모래반으로 연명하는 백성들, 관가의 포학을 못이기고 전부 달아나 텅 비어버린 마을, 자식 둘을 길에다 내버리고 달아난 어미, 이 피눈물나는 정경을 다산은 분노와 슬픔을 담아 노래했다. )

-감싸안아 보듬어라 ( 가뭄 이듬 해인  1810년에는 파리떼가 찰궐하여 구름처럼 새까맣게 몰려 다녔다. 다산은 이 파리떼야말로 극심한 가뭄과 혹한에 굶주려 죽은 자의 시체에서나나온  구더기가 변한 것으로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이니 잡지말고 오히려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파리를 조문하는 글’로 그 사연을 밝혔다. )

-분노하고 규탄하라 ( ‘고양이 노래’ 에서는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는 안잡고 엉뚱하게 고기와 술과 양식을 훔쳐먹는 정황을 노래해 위정자의 탐학을 고발했다.       

47.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말라

-역경에 담대하라 ( 간난불최 - 사람의 그릇은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  시련 앞에 쉬 좌절하는 사람은 대부분 작은 성취에 금세 교만해진다.

-절망을 딛고서라 (폐족으로 배우지않으면 마침내 패려궂고 비루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물건이 되어 세상에서 버림받게 된다.  귀양생활 8년 만에 왼팔이 마비되고, 시력은 떨어져 돋보기없이는 책도 읽을 수  없게 된 다산은 그 와중에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전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근검으로 일어서라(  가난에 찌들어 뜻을 잃지말고 근검을 체질화하여 뜻을

       붙들어 세우라 했다.

48,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지향하라 (실사구시법)

-실용을 우선하라 ( 무슨 일이든지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

-살상을 파악하라 ( 표를 작성해서 한 눈에 알아보도록 자료를 장악하는데 뛰어났다 )

-쓸모에 맞게하라 ( <상례사전>, <상기별>을 따로 두어 무려 21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총정리하였지만 연구용으로밖에 쓸모가 없어 다시 간편하게 <상례사전>을 한 권으로 간추려 < 상의절요>라 하였다.

49.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라 (오득천조법)

- 장점을 강화하라 (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일을 이룬다 .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개성을 추구하라 (다산은 암행어사를  나갔을 때도 가차없이  시시비비를 가려 보고서를 제출하여 원한을 품은 사람이 적지않았을 만큼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 이러한 성격이 끝내 자신의 학문적 개성으로 만들어 삶과 학문을 일관된 질서로 꿰뚫었다. )

-잘하는 일을 하라 ( 다산초당에서의 작업은 분수득의법에서 본 것처럼 (36절) 여러 제자가 카드작업과 받아쓰기, 정리및 필사 , 교정 및 대조 . 제본과 검토 등 역할을 분담하는 집체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작업에 투입되는 제자들에게 맡긴 역할도 제각각 달랐다. 사실 다산이 한 것은 기획과 작업방법을 제시한 것 뿐이고 실제조사와 정리는 제자들의 협동으로 이루어졌다.

-독창성을 지녀라 (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

50. ‘지금 여기’ 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하라 -조선중화법

- ‘여기’에 바탕하라 ( 조선중화란, 조선을 문화적 선진인 중화로 여긴다는 뜻이다 . 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을 지녀 남을 추종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 것을 중시하라 (차라리 형식을 버릴 망정 눈앞의 진실을 노래하겠다 

-변화를 긍정하라 ( 조종의 법은 창업초기에 만든 것이 많다. 당시에는 천명을 훤히 알 수가 없고 인심도 크게 안정되지 않아 으뜸가는 공을 세운  장상들은 거칠고 드센 무부가 많았고 백관과 사졸에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간사한 자들이 많았다. < 방례초본>= <경세유표><목민심서> < 흠흠신서>등 을 편찬

-주체성을 잃지 말라 ( 다산은 중국이라는 관념의 허구성을 해체하고 나선다. “중국은 없다. 어디나 중국이고 누구나 중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