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비가 있는 동지사 대학 입구(유헤자 이사장. 김우종 교수. 정목일 수필가 외
역사 탐방과 수필
김 우 종
1.수필은 왜 역사 영역에서 멀어졌나?
인류 사회가 과거부터 변천하고 흥망을 거듭해온 모습의 기록을 역사라고 말한다. 또 인류만이 아니라 잠자리 한 마리가 수억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온 자취도 모두 역사라고 한다.
한국의 문학단체가 일본에서 세미나를 갖는 것은 이 단체가 새로 만들어 내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고 이것은 또 여기에 참가한 모든 문인의 개인사(개인의 역사)가 된다.
강아지 똥은 요리의 재료가 될 수 없지만 문학에선 그것이 베스트셀러의 원료가 되기도 했으며 이 세상 어떤 것도 문학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 소재도 당연히 중요한 문학의 소재가 된다. 그런데 수필은 다른 장르와 달리 역사적 소재로부터 비교적 많이 거리를 유지해 왔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역사는 무서워서 피하기도 했다.
서구 문학에서 가장 오래 된 대표적인 고전은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이것은 트로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웅대한 서사시다.
한국의 신동엽이 남긴 <금강>은 역사적 서사시다. 1894년 3월에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 저항군이 고부로 쳐들어가는 사건부터 3.1운동을 거쳐서 4.19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4800행으로 엮은 장편 서사시다.
소설에서는 역사소설이 양적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광수 김동인 박종화 현진건등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신문에 연재되어 온 장편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주 많았다. 일부 작가들은 역사가 없었으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필가들은 별로 역사적 소재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재 이유: 수필은
일제 시대에도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있었지만 수필은 그들이나 다른 선비계층들이 여가 시간을 즐기는 수단 정도로 이해 했다. 그래서 대개는 신변적인 소재에 기울었다.
둘째,정치적 배경이 역사적 소재 선택을 어렵게 했다.
일제 말기에 영문학자 김동석은 자신은 수필가라고 공언한 일이 있다. 자기 명함에 시인이나 수필가등의 직함을 밝히고 다니는 지금과 달리 김동석의 이같은 발언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사회 현실에 대하여 침묵하는 문학을 한다는 뜻이었다. 즉 수필가라는 이름은 역사적 현실에 대해서 입을 다무는 문인쯤으로 알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신변 보호를 위해서 이런 고백이 필요했던 것 같다.
수필가라는 이름도 그랬지만 시나 소설등 문학 전반에서 함께 사용했던 “순수문학” 용어도 그런 뜻이었다.
1938년에 평론가 김환태는 <예술의 순수성>에서 순수문학의 특성 세 가지를 주장해 나갔다. 예술성을 지키려면 작품에서 첫째 사상성을 배제하고, 둘째 목적성을 배제하고, 세째 사회성을 배제해야 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문학이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나서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일제 침략자들의 어떤 억압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문학을 뜻했다.
KAPF의 서기장이었던 임화가 해방 후 월북했다가 1953년에 사형 집행 될 때 재판정에서 자신이 일제 말기에 “순수문학”을 했다고 자백한 재판 기록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는 변절자의 문학을 했다고 죄를 자백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제가 중국침략을 서두를 때부터는 모든 장르에 걸쳐서 우리 문인만이 아니라 이본 문일들까지도 군국주의자들의 침략 행위에 대해서 모두 침묵을 강요 당하고 또 다수가 전쟁에 협력했다.
일제는 1931년에 만주를 침략하면서 그 직전에 KAPF 맹원 칠 팔십명을 체포하고 다시 1934년에도 같은 계열 문인 칠 팔 십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이렇게 문인들은 장르 구별 없이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순수문학’이다.
셋째, 국어교과서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일제의 억압이 사라진 해방 후에도 순수문학의 현실 도피적인 방법은 순수성 옹호라
는 잘못된 인식으로 계승되어 나갔으며 여기에는 피천득의 <수필>이 있었다.
해방 직후에 조선교육심의회에서 최현배등과 함께 한글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한 피천득은 일
찌기 국어교과서에 수필로 쓴 수필론인 <수필>을 게재하고 지금에까지 이르게 됨으로써
중등교육을 받은 온 국민은 그의 수필교육을 받게 되었다. 다른 수필가의 수필론은 게재된
바가 없다.
여기서 그는 ‘수필은 독백이다“라고 했다.”수필가는 언제나 차알즈 램이면 된다. 그리고 수
필은 “가로수가 늘어진 페이브먼트”이며 항상“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고도 했고, 수필은 ”숲으로 난 평탄하고 조용한 길“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수필은 정열
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문학이 가장 신변적인 소재에 머무는 문학임을 말한 것이다. 신변적인 것이라도 역
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사람의 신변도 있지만 개도 짖지 않는 조용한 주택가 같은 수
필이나 정열도 심오한 지성도 필요치 않은 문학이라면 그 속에는 역사는 없다. 적어도 일
제 총독부가 관리하는 식민지 백성의 아픔을 말하는 역사적 현실이나 해방 후 분단된 조국
땅의 피맺힌 역사는 없는 것이 이런 수필이다. 그냥 남이 귀담아 듣거나 말거나 자기 독백
적인 비좁은 울타리 안에 자폐증 환자처럼 옹크리고 있는 것이 수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물론 피천득 개인의 수필의 지론을 말한 것이지만 국정 교과서로 반세기 동안 중
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교육을 받았고 이와 다른 수필론은 교과서에 없었기 때
문에 우리 수필가들은 당연히 이렇게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 가장 수필다운 수필을 쓰는 작
법이라고 처음부터 세뇌당한 것이다.
그러나 수필이 그 협소한 자기 독백적 신변적 울타리를 벗어나면 수필의 문학성 예술성을
잃는다고 보는 것은 전연 근거가 없다.
문학의 소재는 다양하게 광역화 될수록 그 가치는 상승된다. 마치 맛있는 김치는 육지에서
배추와 무와 고춧가루 외에도 바다에 나가서 새우와 낙지와 동태까지도 잡아와야 더
맛있고 영양가가 높아지는 것과 같다.
넷째, 수필의 본래적 특성과 해방 후의 정치적 배경
그런데 자폐증은 표면적인 인상일 수도 있다. 수필의 태생적 특성을 고려하면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역사적 소재로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가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시와 소설은 태생적으로 상상의 세계다. 김소월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지만 실
제로는 엄마나 누누조차 없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말 문학이 아니다.
소설도 허구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남정현의 <분지>가 반공법으로 기소되었을 때 주인
공이 미군에게 보복한 내용은 실제가 아닌 허구일 뿐이라고 맞설 수 있었으며 소설에서는
그것이 실제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수필은 다르다. 변호사 한승헌이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될 때 공안 검사가 그의 수
필 한 장면에서 법적 증거를 찾으려고 한 것은 수필이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한승
헌의 한 의뢰인이 사형되던 날 그가 잔뜩 찌프린 하늘을 바라보며 죽음을 동정하는 장면에
대해서 검사는 그 날이 자기가 의심하는 간첩의 사형일과 일치하는지를 알아 보았다. 그
러기 위해서 그는 기상대에 그날 기상상황을 알아 봤다. 날자가 같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간
첩의 죽음을 동정했다는 것으로써 반공법 위반의 증거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수필은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의 세계가 아니고 실제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므로 시인
이나 소설가와 달리 진술된 내용에 대한 도의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
러므로 수필이 사회적 역사적 현실적 소재 접근이 부족한 것을 시나 소설과 비교해서 가 탓
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있다.
70년대의 유신체제 하에서는 한승헌 만이 아니라 필자의 에세이집
도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판매 배포 금지조치 되었고 평론집도 같은 조치를 당했다.
상상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문학은 때때로 그만큼 작자 본인의 험한 운명과도 직결 되므
로 수필은 그런 특성상 역사적 소재 접근이 매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그 대신 .그만큼 때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직접 맞서는 위험을 무릅쓰는 수필은
우회적 수단으로 위험을 피하는 장르보다 더 사회적 역사적 기여도가 높은 문학이 될 수
있다.
2,역사적 소재와 문학성 문제
역사적 소재에 대한 영역확대는 문학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수필은 사실의 세계일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은 1인칭의 체험적 사실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
체험적인 수필은 자신의 감정표현이 풍부한 문학이 되고 이야기 전개가 쉬우며 특별한 플
롯 없이도 잘 풀려 나간다. 그래서 남의 얘기보다 문장도 좋아지고 표현에 무리가 없고 성
공률이 높아진다. 소설가가 자기와 유사한 분신을 등장시키고 1인칭 형태로 써 나갈 때 가
장 쉽게 잘 써나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박경리의 초기 소설이 거의 그렇고 박완서도 그런
1인칭 소설일 때가 잘 써진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러나 수필이 그런 자기 독백 형태일 때 신나게 플롯 설정도 없이 잘 풀릴 때도있는 것
은 사실이지만 그래야만 문학성이 유지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소설가도 초기 단계
에는 수필가와 마찬가지로 다분히 자기 분신을 등장시켜서 독백적인 작품을 쓰다가 훗날
이같은 자기 울타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성숙한 작품세계로 도달하듯이 수필가도 좀더
바깥 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자기 독백적 울타리를 극복할 때 더욱 높은 문학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가 역사적 소재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3.역사적 소재의 실제
역사 탐방은 역사적 소재 접근의 첫 단계가 된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며 그런 발자취를 탐
방하고 이를 소재로 해서 작품을 쓰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그 소재의 의미를 살린 문학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고 말할 때만 역사적 소재 선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일본 교토에는 이총(귀 부덤)이 있다. 비총(코 무덤)이라고도 한다. 16세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토기요마사와 고니시유키나가 등에게 명하여 저지른 한국민중 학살 사건의 끔찍한 자취다. 조선 민중의 끈질긴 저항에 부딛혀서 패퇴하며 저지른 것이라고 일본어와 우리말로 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곳을 탐방하면 수필 소재를 얻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의식을 갖고 쓰는 수필과 그냥 희한한 구경거리로 보고 쓴 것은 다르다.
또 역사적 영역 확대는 먼데까지 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마당의 화단에 장식으로 올려 놓은 맷돌 하나도 그냥 멋으로만 보면 역사는 없다. 그렇지만 예전에 그 집에 며느리로 온 할머니가 맷돌을 갈며 얼마나 힘들게 살았었는지를 상상하며 쓴 수필은 역사를 담은 수필이 된다.
역사는 사물을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관찰하고 미래로 이어나가는 시간적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식이며 수필의 역사적 소재는 역사의식으로 본 소재라야 된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를 탐방한다면 윤동주가 옥사할 당시의 한일관계를 보고, 그가 중국 연변에서 거기까지 흘러 간 필연적 운명의 길을 찾아내고 왜 그를 지금도 기억해야 되는지등을 따지는 것이 역사의식이며 그것이 그 수필의 주제가 되며 그것이 수필가에게 필요한 . 역사 탐방의 의미다.
모든 사물은 이 같은 종적 시간의 축(역사의식)과 횡적 공간적 축(사회의식) 속에서 바라봄으로써 그의 좌표가 확실히 밝혀진다.
수필은 이 같은 영역으로 소재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이 사회에서 사회적 역사적 기능이 확대되고 “수필가‘라는 이름은 진정으로 명예로운 것이 된다.
4. 역사 수필은 재미있고 멋있는 문학이다.
역사 소설이 있다면 당연히 “역사 수필”이 있고 “역사 수필가”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개인적 신변적 울타리에서 나와야 한다. 즉 “나의 독백”에서 “우리들의 합창”으로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역사도 있지만 가치 있는 역사의 탐구는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역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엔 너무도 재미있고 풍부한 소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사적 소재에 매달리는 소설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 소재 접근이 항상 위험한 것은 아니다. 위험했던 것은 과거이며 지금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오늘의 현실과 가장 밀착된 한국의 현대사는 10 년 전까지만 해도 위험지대였다.
지금의 2000년대에 진입하기 전까지도 대학에는 현대사 전공교수가 없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대 등이 모두 그랬다. 연구자는 자료를 얻는 과정에서부터 실정법에 의한 수사기관의 제재를 받았고, 대학당국이 연구자를 받아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위험은 거의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학적 접근법이 무엇이냐만 남아 있다. 여행가의 일반적 기행문과 문학은 다르다.
수필은 실제적 체험적 사실의 문학이지만 그 체험은 직간접의 구별이 필요 없다. 다만 모든 문학은 상상적 사고의 형태로 문학성을 살릴 수 있는 기법이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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