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편액 박사 김일두 수필가
일시 : 2009년 9. 10. 목 오후 세시부터
장소 : 김일두 변호사 집무실(충무로 극동빌딩 613호 )
대담 :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정리: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사진 : 김혜숙 사진기자.수필가
검사장을 역임한 김일두 수필가의 사무실을 들어선 순간 탄성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30년의 검사 재직 동안 ‘타협이 통하지 않는 원칙론자’로 알려져 있고 1970년대 영부인 육영수 여사 총격사건의 수사본부장을 맡았던 깐깐한 이미지를 깨트리는 순간이었다. 그가 이룩한 60여 년 동안의 법률자문과 문학 활동, 사진관련 동호회 , 수석 , 그림 등 자료들이 어우러져 바닥부터 천장을 향하여 쌓인 채로 그 시간의 퇴적물 속에 김일두 수필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목일 : 먼저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독특하게도 사찰편액연구로 2009년 1월에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1979년 사찰편액과 주련으로 논문을 쓰셨는데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일두 : 보통 우리들이 산에 가서 절을 볼 때 건물이나 어우러진 경치만 보고 오게 되지요. 절문에 이르면 절 이름을 써놓은 현판이나 四天王問들의 현판들은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문화재급 글씨들을 나라도 정리하여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판글씨는 과연 누가 쓴 글씨일까 궁금했지요. 거의 목판에 현각이지만 대웅전이나 사찰 현각에는 불교의 오묘한 사상과 禪的인 경지가 담겨있습니다. 사실 1975년부터 공민왕, 세조, 영친왕, 시인묵객이나 대서예가들(최치원, 추사 김정희 등)이 사찰에 남겨둔 편액을 답사하여 감상의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은 암자까지 9,000여 곳이나 되어 체계적으로 정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지만 전국에 흩어놓은 한국서예사의 실물자료를 새로운 정립의 계기로 삼고 싶었습니다. 불교단체나 불교 공부를 한 사람이나 누구하나 그런 자료를 공부하여 낸 일이 없는데 김일두가 냈다하니 연합단체에서 출판기념회 자리를 성대하게 마련해주었습니다.
정 : 등산, 분재, 서예, 한국화 모으기, 사진촬영 외에도 수석에도 조예가 깊어 愛石활동을 30년 넘게 쉬지 않고 해오시면서 한국수석인 협회 초대회장을 지내시고 <石耆苑> 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문화 활동에는 열정 못지않게 끈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년 마다 출판하는『石壽 萬年 』책을 또 이번 가을에 내셨는데 무엇이든 시작하면 학구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놓는 탐구력에 존경심을 감출 수 없습니다. 법조인이면서 취미활동을 쉬지 않고 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한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 : 취미는 삶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양식의 하나라고 해야겠지요? 『취미와 인생 산책』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은 생명의 존속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는 재미는 바로 취미생활에서 얻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오직 건전하고 참다운 것에 심취하여 생의 마지막 날까지 지속할 것입니다. 수석은 내 딱딱한 직업에 윤활유가 되었고 활력넘치는 정서생활을 누리게 해주었다고 봅니다. 남농 허건 화백과도 수석으로 인연을 맺기도 했는데 그분은 평생 모아들인 수석으로 박물관을 남겼고 시인 박두진 선생은 愛石생활의 내적 체험을 시집으로 묶어냈으니 수석미학의 문학적 형상화라고 해야겠습니다. 한국원로 수석인들이 모여 처음 냈던 문집이 『돌과 더불어 한평생』이었는데 정말 한평생을 돌과 지내면서 올바른 愛石觀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석이 갖고 있는 뛰어난 예술성 때문이고, 순수성, 돌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우정 이 세 가지 때문입니다.
정 : 수필을 쓰시게 된 동기를 다시 한 번 들려 주셨으면 합니다.
김 : 들어보셨겠지만 1963년에 金廷漢, 허천(국제신문 논설위원), 박문하(의사), 장성만(목사. 국회의원), 鄭信得(여고 교장) 씨와 부산수필동인회를 결성하고 계간동인지 ‘수필’이라는 수필집을 냈습니다. 수필가가 되려고 한 때 생각을 했고, 검사생활 30년을 하는 동안 사건에 관련되는 단상을 쓴 것이 수필로 연결이 되었지요. 사건별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쓴 직무상의 수기가 수필이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12권을 냈습니다. 사실 검사라는 딱딱한 직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정 : 월당 조경희 선생과의 인연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 조경희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내가 수석을 하면서 88 올림픽 때 대한민국 수석대전을 가졌습다. 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 63빌딩에서 세계적인 수석대전을 열었을 때 조경희 선생을 개막식에 초청하면서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그 때부터 한국수필가협회와 연결이 되었고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 해 온 것입니다. 사람 좋아하고 여장부였던 조경희선생도 고인이 되었고 이제 정목일 선생이 짐을 짊어지게 되었는데 협회를 위해 욕심없이 돕는 독지가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정 : 우리리라에서 가장 많은, 800건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기록 보유자로도 유명하십니다. 2000년 12월 세계 인권 선언일에 법무부로부터 대한민국최고의 영예인 무궁화 훈장을 받으시고 인권변호사 호칭도 얻으셨습니다. 그러한 휴머니즘이 선생님의 예술성과 관련이 있다고 믿습니다.
김: 범죄자들도 인간이기에 인간 탐구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죄판결은 1992년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우유배달부의 사연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사건이었는데 만약 무죄를 받을 사람이 유죄를 받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무죄를 받아냈는데 기적같은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칫 젊은 법조인들은 법전에 오로지 기준을 맞추어 판가름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활동은 법조인에게 더욱 절실한 분야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예술과 법률은 완전히 그 분야가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예술가와 법조인은 각각 별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지요. 표면상으로는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상호간의 함수관계는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법률과 예술에 있어서 그 목적이나 가치 등은 밀접한 관련성을 띠고 있지요. 법률은 정의에 실현 목적이 있고 예술은 眞.善.美 를 표현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정의’라는 말 자체가 진.선을 뜻하는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동일한 이정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정: 후배작가들을 위해 한국수필가협회의 미래를 전망해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 : 내가 보기에는 정목일 선생이 맡았으니 잘 되었고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오로지 한국수필가협회의 발전을 위해 전 방위로 노력을 기울이고 또 세계적으로도 우리 협회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희망합니다.
정 : 선생님은 여러모로 국가적 원로이십니다. 인생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나의 좌우명은 ‘자기가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낸다’ 입니다. 포기는 없다고 봅니다. 60대에는 인생은 60부터, 70대는 인생은 70부터......이렇게 생각하면서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평생교육이 왜 평생교육입니까?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지요.
내년에 내가 88세, 미수인데 8자로 된 제목으로 책을 냅니다. ‘ 인생은 남기고 가야’입니다. 40대에는 네 글자 , 오십대는 다섯 글자, 60대는 여섯 글자의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배우고 알게 된 것을 혼자만 안고 가면 안됩니다. 인생은 남기고 가야하는 것이지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지금도 라이온스에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돈, 시간, 노력이 들어가는데 아깝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야 하늘이 돕고 일생동안 남을 도와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취미생활에 전념하시면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일두 약력
호 天山 .고려대학교 졸업. 동방대학교 사찰편액박사학위 취득.
한국수필가협회 고문, 1948년 제2회 조선 변호사 시험 합격. 검사생활 30년 검사장 퇴직. 현역 변호사. 한국 8미리동인회회장 역임. 石耆苑 苑長 . 수석인 문집을 5년마다 출간하고 있음.
수필집 『구름을 헤치고』『알몸인간』『세계가 부르는 인권 』『낙조는 불탄다』등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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