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민음사 ) 황병하 옮김
차례
1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서문
*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 *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 원형의 폐허들
* 바빌로니아의 복권 / *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 바벨의 도서관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2부 기교들
서문 / 1956년의 후기
* 기억의 천재 푸네스 / * 칼의 형상
* 배신자와 영웅에 대한 논고 / * 죽음과 나침반
* 비밀의 기적 / *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 끝 / * 불사조 교과 / * 남부
작품해설 / 작가연보 / 작품연보
작품해설
마치 20세기의 대명사와도 같은 보르헤스 문학의 본령은 그의 두 번째 소설집 <픽션들>로부터 시발된다. 이 작품집은 1941년에 발표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나오는 여덟 개의 단편들에 <기교들>이라는 소제목 아래 여섯 개의 단편들을 첨가해 1944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픽션들>이라 알고 있는 작품집은 1944년에 다시, <끝> , <불사조교파>, <남부>와 같은 세 개의 단편을 첨가해 1956년에 발행한 2판을 가리킨다. 이 작품집을 통해 세계의 독자들은 이제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경이롭고 총격적인 그런 미학의 세계와 조우한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열 일곱 개의 단편들은 크게 < 문학이론>을 소설화시키고 있는 두 범주로 나뉜다.
우선 문학 이론을 소설화시키고 있는 작품들로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기억의 천재, 푸네스> , < 배신자와 영웅에 대한 논고> , <비밀의 기적>, < 끝> 등이며 나머지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형이상학적 문제를 내러티브 속에 융해시켜 놓고 있는 그런 구조를 노정하고 있다. 어찌보면 범성하기 그지없을 듯 해 보이는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보르헤스 문학이 전 세계의 주목을 맏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을 풀어가는 보르헤스 문학의 매우 특수한 형식 구조와 독특한 관점에 있다.
먼저 문학이론을 소설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간략하게 일별해보기로 하자.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작품들 중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은 아마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일 것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작가 삐에르 메나르(허구적 인물)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 제 1부 9장과 38장 그리고 22장의 일부를 위대한 한 자 틀리지 않게 베껴 썼음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 >를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되는 희한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소위 20세기 후반 문학연구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 중의 하나였던 수용미학, 현상학, 독자반응이론, 후기구조주의 등이 제기한 ‘읽기’의 문제가 벌써 보르헤스에게서 본격적으로 문학적인 문제화가 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는 소위 현시대 문학에서 가장 실험적인 분야로 일컬어지고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문제가 예언되고 있다. 하이퍼 텍스트란 컴퓨터 텍스트 문학을 말한다. 이 문학 양식은 기존의 활자문학에서는 불가능한 매우 의미 심장한 텍스트 도출을 가능케 해 주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죽었다는 것으로 어떤 작품이 시작된다고 하자. 이 경우 기존의 활자 매체 문학은 단일 이야기 구성을 추적해야 하는 공간적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컴퓨터에서는 이 여자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이야기의 가지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는 유춘이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미완성의 매우 혼돈적인 작품이다. 예를 들어, 한 군대가 전쟁에 나가는데 그들이 전쟁에 나가는 과정에 대한 상반된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제대로 구성이 되지 않는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텍스트는 마치 이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듯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져 그 끝은 무한에 이르게 된다.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허버트 쾌인이 쓴 < April March> 라는 작품은 총 열 세장으로 되어 있다. 첫 장은 길거리에서의 어떤 낯선 두 사람의 대화를 다룬다. 제 2장은 그 전날의 어떤 사건을, 제 3장 역시 제 2장에서 다룬 사건과 다르게 일어날 수 있는 전날의 어떤 사건, 제 4장 역시 앞의 두 장에서 다룬 사건과 다르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사건을 다룬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아홉 개의 전혀 다른 소설들이 들어있는 매우 혁명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생략......
소위 상호텍스트적 글쓰기, 또는 책에 대한 책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수행된 이러한 그의 존재론적 탐구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의문의 해소가 아닌 영원히 순환하는 ‘의문의 회구’에 침윤된다. 이러한 페시미즘적 결론 앞에서 보르헤스가 도출해내는 상징이 바로 미로이다.
<알모따심에로의 접근>에서 주인공은 찾아나선 ‘피난처를 찾는자’라는 뜻을 가진 ‘알모따심’을 끝내 찾지 못한다. 마치 한 순례자가 다른 순례자를 찾아다니는 끊임없는 순환적 추적만이 존재한다.
<바벨의 도서관> 에서도 유사한 내러티브가 등장한다. 우주, 또는 세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 어디엔가 존재하는 모든 책들의 가이드 같은 <책 중의 책>이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한다. 이처럼 보르헤스의 존재론적 탐구가 미로라는 해답 아닌 해답에 이르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 서구의 정신사를 지배해왔던 신의 선험적 존재를 부정했던 니체, 쇼펜하우어 등과 같은 우기 칸트 학파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생략......
앞에서 언급한 대로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거의 모두가 <책에 대한 책 쓰기> 라는 상호텍스트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책에 대한 책쓰기>는 단순히 기존해 있는 책에 대한 책쓰기의 ‘전향적 복사’의 형태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놀라웁게도 그러한 상호텍스트성을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책에 대한 책 쓰기>로 비약해 간다. 그 대표적 작품들이 바로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 대한 연구 >.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 <비밀의 기적>, <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이다. ......생략......
죽음, 영원, 시간, 심지어 관념 그 자체까지를 구상화 시키기 위해 보르헤스가 창안해 낸 기법들은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가짜 사실주의’ , 가짜 각주, 가짜 참고문헌 제시 , 가짜 전기 등이다.
첫 번째 것인 가짜 사실주의가 탁월하게 이룩된 작품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이다. 이 작품은 ‘절대관념’으로 표상되는 ‘틀뢴’이라는 가상적 세계를 찾게되는 과정을 중심 줄거리로 가지고 있다. ......생략......
보르헤스는 이러한 관념적 사유의 과정을 이야기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고안해 낸다. 관념의 세계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도록 하기 위해‘브리태니커 사전’이라는 실제로 있는 물건을 이용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데 실재에 대한 가장 정확한 증거인 ‘백과사전’을 내세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미백과사전’에 그러한 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거기에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작가인 비오이 까사레스와 같은 실존 인물들과 실제 지명들을 삽입시켜 마치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면서 그러한 허구적 사실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가짜 각주와 참고문헌 제시의 예, 허구적 작가의 연보를 제시하여 실제인물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바로 이제까지 그러한 유의 문학 장르가 가지고 있던 고답성, 지리함, 사변성, 방만성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충격, 흥미, 미학성, 압축성 등과 같은 극도로 향상된 새로운 문학적 성격들이다. 작금에 들어 아무도 20세기 후반의 모든 새로운 지성 사조인 독자반응 이론, 후기구조주의 , 포스트 모더니즘이 보르헤스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푸코,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옥따비오 빠스, 존 바스 등의 머못거리지 않는 단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보르헤스는 이 작품집 <픽션>들을 가지고 20세기 후반을 창조해 낸 것이다. -황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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