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계간 문학나무 봄호 권남희 수필 < 아파트 숲속의 밤나무>

권남희 후정 2010. 1. 31. 17:28


도시에서 숲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권남희의 <도시 속의 밤나무 숲> 의 공간적 원형은 자연친화적 숲이다. ‘숲은 고향처럼 인간을 불러들이고 인간은 어머니의 품처럼 숲을 그리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사람이라면 숲과 정원이 당면한 생태적 위기를 외면하지 못한다. 권남희도 “한 쪽으로 밀쳐진 초라한 보따리”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숲을 지켜보면서 위기감을 절감한다. 다만 관찰이라는 시각에서 펼쳐지므로 묘사는 논리가 아니라 이미지 기법을 따르게 된다. 밤알에 얽힌 다채로운 이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각 이미지로 ‘소시지엮듯 실로 꿴 포만감’ ‘설탕에 조린 밤’ ‘애인과 쏘다니며 먹던 군밤’ 후각 이미지로는 ‘밤꽃향기’ 시각 이미지는 ‘주렁주렁 달린 밤’ 그리고 청각이미지는 ‘수런거리는 숲바람’ ‘두들겨 따는 밤’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동물들의 먹이마저 쓸어가는 밤털이꾼의 반생태적 몰이해를 고발하는 효과를 지닌다.

화자는 이 사실을 아파트 단지의 밤나무 숲에서 절실하게 체감한다. 이 글의 한계는 생태적 자각이 심미적  상상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독자수용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

 계간 문학나무 월평  박양근 수필가 . 부경대 교수 . 월간 에세이 등단       

 

아파트 숲 밤나무

                                         권남희 수필가

                                                    

밤나무 숲속  산책길은 이른 아침부터  활기가 돈다.

늦가을 나그네처럼  도시를 떠나온, 은퇴자가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로 밤나무 숲의  바람은 쉬지않고  불어와 교감을 나누곤 한다. 산을 깎아서 지은 아파트 사이로 겨우  살아남은  밤나무 숲  한 덩어리는  도시를 떠나온 사람들을 머물게하는 큰 이유가 되고있다. 인간은  원래 숲속에서 살아왔기에 숲은 고향처럼 인간을 불러들이고 인간은 어머니의 품처럼 숲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신이 하강하는 통로이고 천상으로 연결되는 성스러운 장소라고 믿어왔던   숲은 이제 울창해지는 일보다  소멸되기를 선택해버린 듯하다.   계림鷄林처럼 역사나 문화적 배경이었던  마을 숲을 많이 없앤  일제의   벌목과 육이오 전쟁 때 잃은 지리산과 낙동강 주변의 마을 숲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미신타파라 하여 마을 입구에 심은 당목堂木이나 당숲을  베어낸 일을 슬퍼하지 않는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한 쪽으로   초라한   보따리처럼 놓인  숲은 영험함을 잃은 채 전원생활을 그리다 찾아든   도시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일로 만족해야 한다. 

 밤나무 숲 길을 즐겨걸으며 밤을 상상하고 밤을 추억하곤 한다. 밤나무 아래서만은  갖가지의 상상이  피어나는지  산책하는 사람들은 유독 밤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유쾌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어릴 적 소풍이라도 가는 날은 삶은 밤을 소시지 엮듯 실에 꿰어가져가며 포만감을 느끼지않았던가.  노인들에게는 잘 깎아서 설탕에 조린 밤을 겨울 간식으로  드렸던 것같다. 겨울이면 애인과 이리저리 거리를 쏘다니다가 으레 군밤을 사서 먹으며 둘만의 사랑을 낭만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하얗게 피어있는 밤꽃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은 봄 길을 걷는 내내 밤이 열리는 가을을 기다리게 한다.   꽃은 어찌됐든 꿈을 주어 더 아름답게 보인다. 게다가 초록가시를 달고 떨어진 풋밤을 밟아보며  추억을 성급하게 터뜨리는 여름날은 후끈짜릿하다.     

 가을이면  길은 새소리보다 더 높아진  사람들 목소리로 분주해진다. 그들 모두 주인없는 밤나무 아래서 주렁주렁 달린 밤들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곤한다.    그러나 밤이 여물어가는 것을 보는  행복도 잠시  초조해진 사람들이 들꾀는   밤나무 숲은 바람까지도 수런거린다.  산책을 미룬 그들  손에는  모두 까만 비닐 봉지가 들렸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밤나무 밑을 열심히 헤쳐낸다. 

밤나무 숲은 밤송이와 겨루어 끝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11월이 깊어갈수록  숲길은  밤을 골라내고 버린 가시껍질들이  낭자한 채 을씨년스럽다.  누군가 나무 밑에 떨어진 밤줍기로는  신통치 않았던지  밤마다  나무가지를 흔들고 두드려댄 게 분명하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낙엽들과 껍질만 남은 밤가시들이 길을 덮고 있다.

아름답게 깊어가던  가을은 밤마다  두드려맞고 흔들리고 벗겨지고 파헤쳐진 흔적으로  멈칫거린다. 

밤나무 숲을 사랑하던  이웃들, 다람쥐처럼 겨울 양식을 장만하는 일도 아닐 바에야 그들에게  밤 몇송이는  무엇이 되고 있을까.

 그들이 털어갔을  밤을 상상한다. 돈으로 계산해도 얼마 되지않을 것이 분명하고 등산용

베낭 한 귀퉁이도  못채웠을 조금의 밤을 가지고 공짜로 얻은 맛에 취해 깎고 삶아 먹으며 행복해하리라. 그들이 가진 대형 냉장고에는 한 달 내내 들락거려도 남을 먹거리가 쌓여있고  더러 다 먹지 못해 상해서 버리고마는 고기나 야채도 있다. 김치 냉장고에는 몇달치의 김치와 과일이 저장되어 있지않을까. ‘시민 불복종’을 써서 세계역사를 바꾼 27권의 책에 오른 에세이스트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고향 콩코드 강가 통나무 집에서  2년 여를  낚시하고 월귤나무 열매를 따서 먹으며  느꼈던 소박한 행복 , 단지 그것이었을까 .  

이웃들의 밤사냥에서 나는 내 어린 날을 떠올린다.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그 때

다람쥐처럼  동네 언니들을 따라 폴짝대며   이삭줍기에  행복해했다.

수확이  끝난 밭을 뒤지고 다니면 고구마나 감자를 얻어 군것질로 충분했던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동물들을 위해 도토리나 밤을 주워가지 말아달라’는 팻말까지 세웠지만 

베낭을 짊어진 사람들의 밤털고 줍기와 도토리 채집은  세월이 흘러도 멈추지 않을 것같다. 

 겨우살이를 견디지 못한  동물들이 굶어 죽은 겨울이 지나 다시    

 밤꽃이 피어나는 계절,  숲속 동물들의 외침을 듣는다. 

     

      꽃들처럼 생각은 하루에

      백가지도 넘게 피어난다.

      꽃피게 놔둬! 그냥 그렇게 놔둬!

      이득을 묻지말고 ! -헤르만 헤세의 ‘만개’ 에서 부분 발췌   

                  -계간 문학나무 (황충상 발행인 )  2006.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