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포도는 시어지고-
새해가 되면 아는 사람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는다. 전화번호가 살아있는지 확인을 위해 몇 년 만에 거는 사람도 있다. 수첩이나 메모리 카드를 꺼내 지울 사람과 다시 입력해야 할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어쨌든 내 존재가 슬쩍 지워지기보다 새해면 다시 기억나게 하는 사람이니 감동이지 않은가. 새해가 되어도 내 자신은 누구에게나 무심하게 지내는 편이다. 이 고약한 습성은 천성인지, 후천적 요인인지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인지 전화로 안부 묻는 일이 가장 두렵고 힘이 든다. 스스로도 콤플렉스라고 여길 만큼 전화를 하지 못한다. 상대를 직접 만나면 오히려 곰살맞게 대하는 데 돈이 들지 않고 가장 쉬운 ‘전화로 안부 묻기’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소식을 전하지 않는 무심이 가끔 내 약점이 되어 밥을 사고 돈이 들어가는 인사치레를 하며 미안함을 씻어보기도 한다.
굼뜬 내 자신을 잘 알기에 새해가 되면 언제나 다짐을 하는 일이 있었다.
친정어머니에게 안부 전화 드리는 일을 규칙적으로 할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평생을 다 바쳐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욱조이는 죄책감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그런데 정동진으로 달려가 떠오르는 붉은 해를 맞이하며 각오를 한다 해도 나의 결심은 작심삼일도 못 채운다. 매화 소식이 시들해지고 ,동면을 끝낸 개구리가 뛰어다녀도 벚꽃이 다 지도록 결심에서 나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다. 한 여름 뙤약볕에 수박이 터져간들 ,포도가 익다가 시어지도록 미련하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쯤이면 어머니가 기다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해오겠지... 어머니의 불편한 심기를 감지하면서도 내일, 내일로 미루기만 한다. 결국 ‘얼마나 바쁘면 전화 한 통화가 없냐?’ 라든가 , 김장철인데 딸이 제대로 김치를 담그는 것일까 못미더워 거는 전화, 느닷없이 아침 여섯시도 안 되어 걸려오는 어머니의 일갈섞인 전화를 받고야 만다.
그럴 때마다 다음부터는 꼭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결심으로 수십 년을 메우고 나니 어머니는 지난 해 여름 돌아가셨다. 창백한 채 식어버린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후회했던 것은 어머니가 그렇게 원하던 ‘안부전화’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에게 오히려 전화를 받는 딸로 , 무임승차를 했다는 자책이 컸다. 어머니를 위해 소식을 전해야 했던 시간을 단지 내 게으름 때문에 도둑맞고 말았다는 허무함이 몰려들었다.
장례식 장에서 어머니 친구 한 분으로부터 ‘ 멀리 사는 큰 딸을 제일 마음에 걸려했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안장시키며 어머니가 나를 기다렸던 시간도 묻어버리고 유골함을 쌌던 하얀 보자기만 챙겨 돌아섰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날마다 전화통에 매달렸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공부한다고 집을 떠나 하숙하던 나는 어머니 생각이 나면 길을 가다가도 공중전화를 붙잡았고 우체국에 들러 시외전화를 신청하곤 했다.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는 시간은 참 공허하고 쓸쓸하여 전화기만 보면 눈물이 났다. 밀폐되고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죽을 때까지 은둔하며 마지막 몇 년을 옛날 시간을 다시 발견하는데 썼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나 역시 어머니를 떠난 순간부터 옛 시간을 찾아 헤매며 우울증을 앓았다.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때 연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시외전화나 공중전화였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데 아침이면 문득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오늘 어머니에게 전화 올지 모르는데' 그런 착각을 하곤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벌을 서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수첩 속 어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는 그대로인 채 다시 새해가 되었다. 이제 안부전화에 대한 다짐을 하지 않아도 되건만 늦게나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새해첫날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소식 물어주는 일을 하기로 맹세한다.
시간을 놓쳐버리는 기막힌 내 고질병을 버리기 위해 하루에 한 명씩 거르지 않고 일 년을 한다면 365명이 넘지 않을까. -08. 해군본부 신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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