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백숙에 담긴 사랑
권남희
닭백숙을 세 번 정도 먹으면 최고로 행복하게 여름을 날 수 있었던 것 같다.그 때는 집집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집안 큰일이나 생일 때 먹을 수 있었으니 닭고기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셈이다.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은 있는지도 몰랐던 내 어릴 적 여름 더위는 한차례 겪고 지나야 할 외통수일 뿐이었다. 한낮에 수박 한 통 잘라서 먹거나 펌프 앞에 엎드려 물세례를 받는 등목이 몇 가지 안 되는 피서방법의 하나였고 아이들은 땀띠나지 않으며 여름을 잘나는 일들이 중요한 행사였다. 더위를 피할 높은 건물도 없던 때라 한나절 걷다보면 땡볕에 노출되어 일사병에 걸리기도 했다. 여름 더위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월 대보름날 자기 더위를 떠넘기는 풍속이 있었을까. 오곡밥을 먹은 다음은 가족이라도 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 대꾸하지 말아야 했다. 혹시라도 대답하면 ‘내 더위’하면서 한여름 겪을 더위를 미리 팔아넘기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대보름날이면 경고하듯 꼭 일러주곤 했다. “누가 부르면 절대 대답하지 마라, 남의 더위까지 덤으로 먹는다.” 좀 어리숙한 편인 나는 남동생 더위까지 덤으로 사는 일을 당하곤 했지만 여름은 늘 닭백숙 몇 번 먹는 재미로 잘 견디었다. 제법 큰 닭에 물을 붓고 대추와 마늘만 넣고 끓인 백숙은 순전히 쫄깃한 고기맛과 마늘이 우러난 국물 맛으로 먹었다. 구수하면서 시원한 맛이 목을 타고 넘을 때의 살맛나는 기분이란....... 선풍기도 없었던 때 남동생들은 웃통 벗고 땀 흘리면서 백숙을 먹었다. 먹 거리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토종처럼 자란 닭의 고기 맛을 대량생산하여 공장에서 처리하는 요즘 닭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한 여름 강가에서 먹었던 닭백숙 맛도 별미였다.
몇 번인가, 아버지 계모임을 따라 집에서 한 시간 거리 강가로 걸어서 피서를 갔는데 남자들이 큰 솥을 걸어주면 여자들은 닭 몇 마리를 삶아 백숙을 먹고 국물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우리 집에는 항상 개와 닭 몇 마리와 돼지 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많고 고기 한 번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던 시절이니 여름 내내 땀 흘려 맥을 못추는 자식들 보신용으로 키워야했다. 몇 달 길러서 아버지가 직접 닭을 잡으면 우리는 곁에서 뜨거운 물을 뿌려 털 뽑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당시 시장에 가면 닭을 파는 집이 있었는데 닭을 직접 골라서 그 자리에서 털을 뽑고 잡았다. 80년 초반에도 시장에 가면 닭장에는 날개를 퍼덕이는 닭들이 몇 마리 있었고 즉석에서 닭을 죽여 원통에 넣고 돌려 털을 뽑은 다음 용도에 맞게 팔았다. 그 현장이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야만적이고 비위생적이라며 88올림픽 전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여름이다. 복날이 지나갔는지, 언제인지도 잘 모른 채 사는 지금의 내 생활과 비교하면, 중요한 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닭백숙을 끓였던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자책한다. 오직 가족을 생각하는 열성이었고 정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을 나려면 자의반 타의반 한 두 번은 삼계탕을 사 먹는다. 굳이 땀 흘리고 먹지 않아도 된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동시에 돌아가는 식당에서 뚝배기에 담겨 펄펄 끓는 삼계탕을 먹는 일이 큰 일이 되었다. 이름난 삼계탕 집 앞에 줄을 서서 사 먹어야 만족을 느끼고 돌아오는 세태이다.
가끔 집에서 끓여보지만 나의 정성은, 갈수록 건강 보조 식품과 의학 식품으로 진화하는 삼계탕 앞에서 주눅들고 맥을 못 춘다. 살림에 서툰 사림이나 혼자 사는 사람 살기 좋도록 요즘은 일인용 삼계탕 재료를 수삼과 황기 등 약초, 때로는 장뇌삼까지 세트로 넣어 팔기도 한다. 정성을 돈으로 사려하니 자연스럽지 못하게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과대 포장되는 부분도 있다. 솔직히 고기 맛이 없으니 국물에 집착을 해야 한다. 약간은 서글프다. 건강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닭 한 마리에 추가하여 본질보다 약을 먹는다는 효과에 기대를 건다.
물 한잔을 먹어도 사랑이 담긴 자체가 보양이 되고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시간이 사라진 느낌이다. 어머니와 떨어져 힘들게 살았던 날 , 냉면 대접으로 수북하게 밥을 쌓아 먹어도 허기를 느끼고 살이 찌지 않았던 때가 내게 있었다. 이제 어디를 가건 먹 거리는 풍성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낀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끓여주었던 그 닭백숙의 사랑을 지금 찾는다는 건 억지일까.
정수리에 꽂히는 햇살 아래서
어머니가 끓여주었던 마늘 닭백숙을 추억한다. -경향잡지 09-7 월호
권남희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현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MBC롯데잠실 목요수필. 덕성여대. 분당 홈플러스, 강의
한국문인협회 문단사 편찬위원 .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문학의집.서울 회원.
후정문학상제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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