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子의 음식
권남희
복날이 돌아오면 보신탕을 먹으라고 권장하는 노랫말이 있다. 교훈적 내용이 많은 농가월령가에 수록되어 있다. 보릿고개 이상으로 먹거리가 부족한 절기인 복중에 이식위천( 以食爲天) ‘먹기가 곧 하늘이다’하면서 보신거리로 개고기를 권유하였다. 특히 다른 색깔, 검은 빛이나 하얀 빛깔보다 황구가 몸을 보신하는데 으뜸이라는 내용이 명나라 때 「본초강목」에도 기록되어 있다. 「예기」에도 천자(天子)는 가을이면 개고기를 먹게 되어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자의 음식이기에 개고기의 존재이유를 찾았다면 억지논리일까.
복날 황구를 먹어야 하는 기회를 한두 번 만난다. 여름이면 평범한 모임에서도 더위를 물리치는 의식을 치르듯 보양식을 찾아 나선다. 그럴 때마다 곤혹스러운 일은 본의 아니게 내숭을 떨고 있는 자신 때문이다. 왜 소고기나 생선회처럼 드러내놓고 즐기지 못하는 걸까. 누가 보신탕을 절대 먹지 말라고 못 박은 것도 아니고 ‘여자가 보신탕을 먹냐?’고 따돌리는 분위기도 아니다. 더더욱 나는 불교신자도 아니다. 다만 자격지심으로 생각과 몸이 따로 놀고 있어 스스로 불편한 것이다. ‘프랑스인이 말고기를 먹는 것도 안 되지만 한국인의 개고기는 절대 안 된다.’ 며 대통령을 면담하겠다고 김영삼 前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던 프랑스 여배우 B. B를 의식하면서 보신거리를 바라본다. 내 나라 안에서 토속 음식 시켜놓고 남의 나라 눈치를 보고 있는 일도 우습다. 말고기, 다람쥐고기, 원숭이 생골 등을 먹는 저들이 더 우습지 않은가. 프랑스에서도 오래 전 개고기를 파는 상점에 대한 사진자료가 났기에 먹거리로 우월함과 열등함을 가르며 거드름을 피울 이유는 없다고 본다. 개를 먹는 야만의 나라에서 월드컵을 치를 수 없다며 문화적 오만과 편견을 드러냈던 유럽 국가들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약용이나 제사 음식으로 개고기를 올렸다.
프랑스 철학자 장그르니에는 ‘사람을 멀리하려는 마음이 클 때 다른 대상과의 친화력이 강해진다’ 라고 했다. 사람은 멀리하면서 고독을 달래 줄 동물에 매달린 채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고 전용 호텔에, 애완동물 납골당을 세우는 사회를 장 그르니에는 양심을 편하게 만들려는 하나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 ‘사람이 개를 물다’라는 문구로 개를 식용으로 삼는 한국인을 고발하여 한국인 이민 2세들을 갈등하게 만든 워너 브러더스 방송사 태도는 참 불쾌했다. 미국인도 개과의 코요테를 먹는다는데 무엇이 다른가. 모든 한국인이 날마다 미국인들이 주식으로 삼는 소고기처럼 개고기를 양식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채식주의처럼 보신주의 음식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개를 사랑하지 않는 민족인가. 개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지명에 개와 연결 지어 있는 이름이 2천 4백 14개나 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람과 짐승사이에는 간격이 있다고 생각하여 당연히 개를 식용으로 보신했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왼쪽 다리에 의족을 끼운, 남보다 불리한 신체조건으로 농사를 짓고 자식 넷을 길러야 했던 아버지에게 체력은 목숨이었다. 늘 두세 마리의 개를 키웠는데 돼지, 닭, 토끼 들도 필요할 때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 했다. 특히 개는 여름을 위한 식용으로 길러져서 복날이 돌아오면 동네 아저씨들과 아버지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개를 데리고 동네에서 떨어진 숲속으로 가던 들뜬 몸짓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 분위기를 짚어보면, 개는 햇볕이 작열하는 여름의 남자들끼리 벌이는 보신 파티 제물이었다. 복날 여자들은 주로 닭을 삶아 백숙을 해 먹지만 남자들은 그들만의 제물을 나누어 먹고 결속을 다지는 축제를 즐기며 포만감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맏아들만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불만이었던 둘째 남동생은 개에게 정성을 쏟고 사랑했다. 때문에 사람들이 개를 식용으로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소, 돼지. 오리, 닭 등 널린 게 고기인데 왜 개를 먹어야 하냐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했다.
동생이 생각하는 개는 가족이었다. 개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누곤 했으니 감수성 예민했던 동생이 받은 상처도 컸다고 생각한다. 자기와 같은 존재로 여기며 사랑을 주었기에 지금까지도 절대 개를 식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분신을 먹는 식인문화로 여길 수도 있다.
끊이지 않는 시비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 소, 닭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육류가 개고기라는 몇 년 전 통계도 있다. 88올림픽 때는 개고기로 열세에 몰려 부끄럽게 여기며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만이라도 감추자고 했던 우리가 2002년 월드컵을 치른 이 후 성숙한 태도와 함께 당당해졌다. 핵무기는 없지만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 , GNP도 올라 서유럽으로부터 음식문화에 대해 공격받을 이유가 줄어들었다.
한때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 그 희생적 이미지를 먹을 때 인간은 보상받는 충만감을 갖는 것일까. 한 사회에 희생할 제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만과 보상의 이중성을 내포한다. 제물은, 기득권을 향한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완충지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는 중국의 보신음식문화가 동물애호단체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 문제로 시끄럽다. 대륙답게 제물을 같이 나눠먹고 축제에 참여시키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 2008. 여름 계절문학 ( 사.한국문인협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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